후계자들을 기르지 않은 과오에 대하여는 3김 시대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를 3김 시대라 한다. 3김 시대는 무려 40여 년 계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3김씨들 모두가 다음 대를 거쳐 국가경영 내지 민족경영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을 기르지 않았다. 사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기르지 않았던 것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유능한 후계자가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은 감마저 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손으로 죽은 후에 민주화 시대가 올 것으로 모두들 기대하였다. 우리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고문도 받고 옥살이도 하고 수년간 도피생활을 하였던 동지들은 박정희가 죽은 후 영등포 어느 중국 요릿집에 모여 큰 축제를 벌었다. 중국 술 빼갈잔으로 건배를 하며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축하하며 축제를 열었다.

그때는 전두환 같은 사이비 지도자가 설마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그러나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신군부가 등장하고 광주 사태가 일어나고 전두환이 등장하였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런 격동기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단결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막았어야 하는데 서로 자기가 먼저 청와대로 들어가겠다고 분열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소용돌이가 지금에 와서 우리나라가 철 늦은 이념 투쟁에 빠져들게 된 원인이 되었다. 나는 그 시대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자신이 먼저 청와대를 차지하려 욕심을 내다가 전두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어준 이래로 너무나 실망하여 그 후로는 김영삼을 장로라 부르지 아니하고 김대중을 선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부르기에는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치렀던 희생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였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이 오늘의 우리 사회의 갈등을 낳게 된 원인이라 나는 판단한다. 그 시절 신군부의 폭정에 눌린 민주화 운동이 지하로 숨어들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청춘을 투자하였던 70년대까지의 민주화 운동이 반미친북성향으로 기울어지는 행보를 걷게 되었다. 반미가 극성을 떨게 된 것은 미국이 광주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을 억제 내지 금지하지 아니하고 편을 들어 주었거나 용인 내지 묵인하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15)] 김진홍의 아침묵상
동두천 두레마을 약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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