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누구나 한 번 씩은 앓는 병 중에 형이상학적 병(形而上學的 病)이 있다. 이 병 이름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그것도 대학교 철학과에 다니던 시절 내가 나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하여 붙인 이름이다. 대학 시절 나는 유달리 고민이 많았고 방황이 찐하였다.
병원에 가도 밝혀지지 못하는 병이요, 약국에 가도 약이 없는 병이기에 스스로 이름을 붙이기를 형이상학적 병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대학 상급반 시절 신약성경 중의 로마서를 읽다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고뇌에 대하여 쓴 구절을 읽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이런 병을 나만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같은 영적 거인도 앓고 있었구나 하는 위로이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구해 내겠습니까?" (쿰란출판사의 원문성경 번역 중에서)

"나야말로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겠습니까?" (박창환 박사의 신약성경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개역개정판에서)


2차 대전 이후 참혹하였던 전쟁에서 충격을 받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전개하였던 새로운 풍조의 철학이 있었다. 실존주의(實存主義)이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타적이어서 문명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대전을 치르면서 인간이 그렇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비합리적이요 충동적이요 자기 파괴적임이 전쟁을 통하여 드러났다. 그래서 일어난 철학사조가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 내면에 깃들인 이런 고뇌를 일컬어 실존적 고뇌(實存的 苦惱)라 불렀다. 나는 대학시절 병아리 철학도로서 앓고 있는 실존적 고뇌를 거치면서 형이상학적 병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당시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청량리 뇌병원의 최신해 박사였다. 나는 우정 서울로 와서 최신해 박사께 특진을 받았다. 내가 정신적 질환이 있는 것 같아 진료를 받으러 왔노라 하였더니 최신해 박사께서 진찰을 마친 후에 일러 주었다.

"자네는 아주 정상적인 상태일세. 몸도 정신도 정상적인 사람이니 다른 생각하지 마시게."

청량리 뇌병원을 떠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앓고 있는 지독한 이 병은 무슨 병이란 말인가? 그래서 대구로 오는 열차에서 스스로 붙인 병명이 <형이상학적 병> 이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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