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토론문화를 망치는 주범들

<100분토론>의 의도는 성공했다

지난 4년 간, 인터넷 및 포털 관련 크고 작은 토론회만 60회 이상 나가다 보니, 섭외된 패널의 명단만 봐도, 대충 이번 토론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우스개 소리로 내가 말할 것들은 물론, 상대 측 패널이 발언할 내용까지 외워버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KBS <심야토론>에서 인터넷 규제 관련 주제를 다루었을 때 사회자 정관용씨는 “구체적인 정책은 없고 추상적 수준에서 규제냐 자율이냐의 논란에만 그쳐 아쉽다”며 토론을 마무리지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역시 정관용씨가 진행하는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을 때, 그는 작심한 듯 세세한 정책적 실무까지 따져물었다. 상대 패널은 인터넷미디어협회와는 늘 정책적으로 찬반토론을 해온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한창민 사무국장이었다.

양 협회는 포털 규제에 대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하도 자주 의견을 교환하다보니, 최소한 서로 세부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공유를 하며 토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양 협회는 그 어떤 단체보다도 해당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인터넷 관련 토론을 할 때 인미협과 인기협이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토론의 질이 결정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 <100분토론> 제작진이 인기협의 한창민 국장만 섭외하고, 인미협을 배제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기협을 상대로 심층 토론을 할 수 있는 민간단체는 인미협밖에 없다. 실제로 한창민 국장의 발언에 반대 측 패널 아무도 제대로 된 반론을 하지 못했다.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은 섭외 권한 하나만으로도 토론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고, 바로 <100분토론> 제작진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100분토론>의 확장판, <끝장토론>

XTM 백지연의 <끝장토론>이 방영되면서, 토론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끝장토론>의 특징인 클로우즈업이 중심이 되는 현란한 카메라 워킹, 마치 길거리 싸움을 방불케하는 방청객 토론, 그리고 패널이 발언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박수 등등 형식의 파괴를 추구한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박수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패널의 발언이 끝나면 마치 스포츠 응원단처럼 방청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상대 측에 한방 제대로 먹였다” 뭐 이런 뜻인 것 같다. 과감한 카메라 워킹, 방청객의 싸움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박수 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토론의 패널로 참여한다는 것은 상대 측 패널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제3의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차분히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얼마 전 꽤나 존경하는 교수 한분이 <끝장토론>에 나간다 해서, 왜 나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쌓인 게 많아 화끈하게 떠들기 위해서”라 답했다. 실제로 그는 <끝장토론>에서 그 동안 쌓였던 울분을 마음껏 토했다.

나에게도 <끝장토론>에서 섭외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인터넷 파퓰리즘에 관한 것이었는데 “학술적으로 토론해도 끝이 없는 주제를 <끝장토론>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렵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다 나는 그간 토론 프로그램에서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보수인사가 같은 측 패널로 섭외된 것을 알고 <끝장토론> 제작진에 “한 사람을 괜히 서커스 무대에 올려 매장시키려는 기획은 하지 말라”고 비판하며, 섭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섭외하려던 작가에게 미안하다. <끝장토론>은 어차피 그렇게 기획된 프로그램이고, 대부분의 패널들이 서슴없이 나가고 있는데, 어차피 안 나갈 사람이 다른 패널의 섭외까지 시비건다는 것은 예의를 넘어섰다. <끝장토론>이 기획될 수 있었던 데에는 KBS, SBS, MBC 등 지상파 토론프로그램이 은근히 추구하던 끝장싸움을 아예 드러내놓고 상품화해보자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즉 <끝장토론>은 그간 지상파 토론회의 맹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려낸 것이고, 패널들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토론 선진국이었다면 KBS <심야토론>과 XTM <끝장토론>의 패널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똑같다. 즉 KBS<심야토론>이나 XTM의 <끝장토론>이나 패널 입장에서나 시청자 입장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장토론>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최소한 염두에 둬야할 것이 있다. 지식인들은 합리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끝장토론>에서 패널이 발언이 끝나고 터져오나오는 박수 만큼은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싸우러 나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치꾼들이 제작하고 있는 <100분토론>

<끝장토론>이 가장 많이 연구한 토론프로그램은 아마도 <100분토론>일 것이다. <100분토론>은 KBS의 <심야토론>, SBS의 <시시비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토론프로그램이다. 더구나 <끝장토론>과 달리 기획단계부터 특정 정치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편파성까지 띄고 있다. 토론프로그램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모두 다하고 있는 셈이다.

<100분토론>이 전례가 없는 사전 질문 공세를 통해, 자신들과 반대 의견을 가진 패널의 실력을 검증한 뒤, 구성안 절반을 누락시킨 사례는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이 사례로 보건데, <100분토론>은 패널을 섭외할 때마다 사전 검증하여, 그의 전문성이나 말의 논리력이 워낙 뛰어나면 배제시키는 일을 자주 했을 법하다. <100분토론>에서 보수 측 패널들이 대부분 진보 측 패널에 밀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보수 측에는 꼭 전문성없이 막말을 퍼붓는 패널을 배치시킨다.

<100분토론>만이 운영하는 시민논객제도 문제가 많다. 어차피 시민논객들의 질의도 <100분토론>제작진이 모두 사전 검열한다. 그런데 꼭 시민논객의 질의 중에는 주제와 관련없는 패널에 대한 인신공격이 포함되어있다. 나에 대해서도 “당신은 언론인의 자격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한 바 있는데, 이것이 인터넷 정책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는 말이다.

또한 사회자 손석희씨의 자질 부족도 토론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한몫 한다. 손석희씨가 권위주의를 파괴해야하는 시절에는 명 사회자였을지 몰라도, 2008년의 시점에서는 말장난이나 거드는 낡은 방식을 고집하는 진행자에 불과하다. 손석희씨는 패널의 발언을 시청자들이 보다 더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가 하는 일은 <100분토론>이 무찌르고자 하는 반대 측 패널의 발언을 교묘하게 공격하며 맥을 끊는 역할만 하고 있다.

또한 <100분토론>과 서로 짜고 치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여론조작용으로 기획된 토론이 끝나면, 오마이뉴스, 데일리서프 등 어용언론들의 공격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토론의 쟁점을 정리해줘야할 언론의 기본원칙을 버리고, 무조건 “우리가 너희를 때려잡았다”라는 승전보형 기사만을 내보낸다. 그리고 역시 편파 포털의 대명사인 미디어다음은 이런 어용언론들의 기사를 메인에 배치한다. 여기까지가 <100분토론>이 기획하는 토론의 승리 법칙이다.

사실, <100분토론>의 이런 의도를 몰랐던 것이 아니기에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놀란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100분토론> 제작진에 해명할 것을 요구했을 때, 그들이 아예 이를 무시해버렸던 일이다.

일반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30초짜리 멘트를 따주어도,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 제작진은 해명을 해준다. 자신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준 것에 대한 제작진의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100분짜리 토론에 참여해준 패널이 진행 상의 문제점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데도 CP와 PD 작가들이 똘똘 뭉쳐 이를 무시한다는 것에, 경이로움까지 느낄 정도이다.

즉 PD가 해명을 하지 말라 그래도 직접 섭외를 담당한 작가라면 “여러가지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이렇게 개인적으로라도 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송 제작진의 태도이다. 반대로 작가가 무시한다면, CP가 전화로 양해를 구하는 것도 도리이다.

그런데 <100분토론> 제작진들은 사회자 손석희씨부터, CP, PD, 작가 모두 일치단결하여 정당한 패널의 해명요구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이들은 정상적인 방송인들이 아니라, 정치투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저지르는 정치꾼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인미협에서는 MBC 전체 뿐 아니라 <100분토론>의 사회자, PD와 작가 개개인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묻고자 한다.

<100분토론>과 <끝장토론>은 한국 지식인의 수준

이런 수준의 방송인들이 조작과 왜곡을 서슴지 않으며 매주 100분짜리 토론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국의 토론문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리고 바로 XTM의 <끝장토론>은 <100분토론>이 추구하는 바를 더 화끈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100분토론> 제작진들이 기회만 주어졌다면 <끝자옽론>보다 훨씬 더 선정적인 토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단 아직까지는 <끝장토론>이 <100분토론>처럼 특정 정치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계략을 짜고 있다는 징후는 찾지 못했다.

이런 토론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보니, 전문적 실력은 없고 인신공격만 퍼부어대는 사이비 논객들이 판을 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논객들이 토론 문화를 망치는데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즉, 아무리 토론프로그램이 조작과 왜곡을 하고, 선정적으로 기획해도, 결국 패널이 없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이런 토론프로그램에 패널들이 손발을 맞춰주고 있기 때문에 기획이 가능한 것이다.

그 점에서 토론 기획자들보다도, 패널에 참여하는 지식인들부터 우선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대체 토론에 왜 나가며, 나가서 누구를 대상으로 발언을 하는 것인지부터 곰곰이 성찰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답을 찾으면 우선 <끝장토론>의 박수부터 없애라 요구하고, <100분토론>의 정치꾼들이 사죄할 때까지, 웬만하면 참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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