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10회]

(어제 1부에서 이어집니다.)
다섯번째 그의 리더쉽 비밀은 스피드이다.
마차로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년이 걸리던 것을 생각하면 중원을 점령하는 2년여의 세월은 거의 말을 달리는 속도로 영토를 점령해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먼저 의사결정의 스피드주의를 보자. 원정군들은 온갖 작전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낭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정보와 판단을 요구하는 결정임에도 그들은 철저한 임장주의(臨場主義)를 선택하였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현장주의인데, 탁상공론으로 세월을 보내 봤자 소용이 없고 '저 산을 넘어 가 보아야 그곳이 산일지 바다일지를 안다'는 모토로 일단 대원칙을 먼저 세우고 행동에 옮기며 상황을 보아가며 세부적인 사항을 그때 가서 결정한다는 방식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을테지만 이는 모르고 내린 결정보다 안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무모한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조직이 기동력에서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몽고말과 손에 익은 작은 칼, 그리고 사냥터에서 갈고 닦은 그들의 활솜씨는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한 중세 서양의 병정들은 양철 허수아비와 같이 다루기 편한 연습상대에 불과했다.

중후장대가 아니라 경박단소가 세계를 점령한 것이다.  직관적 감각과 선이 굵은 대원칙 주의, 빨리 빨리를 노래하는 우리의 스피드광 기질은 언뜻 보아도 칭기즈칸의 리더쉽에 걸맞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여섯번째 비밀은 그의 통합적 패러다임에 있다.
일단 전쟁을 벌인 적국이라 할지라도 전쟁이 끝난 뒤 제국의 일원으로 충성을 맹약하기만 하면 이러 저러한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재산은 물론, 왕권, 심지어 종교까지 자율권을 부여했다. 각 국가가 가진 고유의 특수성(개체성)을 보존하는 것은 보편성(전체성)을 의미하는 제국에 대한 충성 하나로 허용됐던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얘기되는  Global Standard가 어떠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정치적으로 자국에 도움을 주는 약소국에게까지 압박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칭기즈칸을 생각해내고 그 회포를 풀었으리라. '야야 칭기즈칸의 반만 닮아 봐라' 하고 말이다. 

과거 아시아 지배의 야심을 불태웠던 일본의 작태에서도 한참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주장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천황,  종교를 섬기도록 강요하고 언어사용을 강요한 것을 보면 일본은 역시 아시아 조차도 지배 할 만한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지 못한 섬나라로서의 한계를 지녔다 할 것이다.

일곱번째는 현대인의 생각을 앞지를 정도의 성개방 의식에 있었다.
아울러 자손을 번영시키는 근본으로서의 여성 지위를 무척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의 아내는 자신의 부락이 공격을 받을 때 적국에게 납치되어  2년여를 적의 장수에게 잡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아내를 되찾았을 때는 이미 그의 아내는 적국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천하에 그 사실을 알리고 나의 아내가 낳은 아이는 나의 자식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대몽골족의 장손으로 남아 그의 아버지 위업을 이어 받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국사에서 배운바와 같은 고려시대의 공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해가 빠릅니다. 궁녀로 끌려간 조선의 아녀자들은 그들의 원래 가문의 등급에 따라 대접을 받게 되는데, 공녀 위씨는 나중에 원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징기즈칸의 행동을 보고 리더쉽의 본질을 잘 헤아려서 참 리더가 되는 지혜로운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내일은 3부로 이어집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