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전략(戰略)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智略)이 많음에 있느니라" (잠언 24장 6절)

신생국가 대한민국과 패전국가 일본의 초대 통치자가 이승만과 요시다 시게루이다. 두 정치가는 닮은 점이 많았다. 우선 둘 다 영어에 능통하였고 국제 정세에 밝았고 전략적인 감각이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신생 독립국가인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패전 후에 새로 시작하는 나라 일본의 초대 수상이 되었다.

이렇게 같은 점이 많은 두 정치가였으나 치명적으로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이 다른 두 가지가 한 사람은 불행으로 끝나고 한 사람은 명예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였다.
요시다 시게루는 자신의 한계를 알아 제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승만은 늘 민주주의를 말하였음에도 비민주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연장하려다가 불행하게 되었다.

두 번째 다른 점이 더 치명적인 다른 점이다. 이승만은 후계자를 기를 줄 몰랐다. 턱도 없이 아첨배 이기붕에 업혀 미련한 통치를 계속하다 모두가 불행케 되었다. 그러나 요시다 시게루는 달랐다. 그는 권좌에 있는 동안에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눈여겨 살폈다. 젊은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들 중에 유능한 국장급들 중에서 국가관이 분명하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유능한 젊은 인재들 20여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는 매주 토요일마다 조찬에 그들을 수상 관저로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며 국가경영, 세계정세, 미국과 소련, 중국과 유럽의 움직임 등을 토론하였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 차례로 일본을 이끌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지도자 수업을 이끌었다. 이 모임을 요시다의 정치학교라 부른다. 이 모임에서 요시다의 뒤를 잇는 수상들이 배출되었다. 미끼, 이께다, 오오히라, 다나까 등이 이 모임 소속으로 차례로 수상이 되어 자민당이 중심이 되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지나간 세월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승만의 전략적 능력에 요시다 시게루의 후계자를 기르는 전략까지 겸하였더라면 이 나라의 역사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 정치가들의 헤매는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이승만과 요시다 수상을 다시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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