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교자다. 30세 되던 해에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47년간 설교자로 살아 왔다. 그간 옥살이하던 2년 이외에는 어느 한 주도 빠짐없이 설교하였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름대로 설교관이 생기고 설교하는 요령이 생기고 설교자로서의 자부심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나는 설교를 준비해서 마치는 데까지의 전체 과정에 5가지 기준이 있다. 처음엔 설교에 관한 5가지 기준이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설교만이 아니라 인생살이 전체에 이 기준이 두루 통함을 깨닫게 되었다. 후학들에게 나의 설교관을 소개하는 것은 특히 젊은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진지하게 신앙생활하려는 성도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첫째는 ‘쉽게’ 한다.

나는 설교할 때에 듣는 이들의 눈높이에서 노인과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하려고 마음 쓴다. 내가 설교를 쉽게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졸업 후 모교에서 조교로 남아 교수님들을 돕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후 신학교로 가게 되었다. 신학교 2학년 학생 때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가 활빈교회(活貧敎會)란 이름으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개척 초기에 문제가 생겼다. 얼마 모이지 않는 교인들이지만 교인들이 내가 설교를 시작하면 모두들 조는 것이었다. 아예 어떤 교인은 코를 골면서 졸기까지 하였다. 처음엔 친하지 않은 사이여서 그냥 참고 지냈는데 6개월 쯤 지나 조금 친해진 후에 하루는 교인들을 나무랐다.

"여러분 교회가 여관방이에요, 왜 설교만 하면 자는 거예요? 헌금 좀 낸 것이 여관비 내신 겁니까? 그간 많이 잤으니 이젠 예배 시간에 그만 자고 예배를 제대로 드립시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내 말을 듣고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우리들이 존다고 나무라는 거 같은데 젊은 사람이 참 딱하시요. 우리를 재우면서 존다고 나무라면 어쩐다요?"

나는 할머니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재운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내가 자장가라도 부른 것입니까, 왜 재운다고 하세요?"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내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씀하였다.

"재우는기 아니라구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게시리 해 줘야지 방언이 따로 있는 기 아니라요."

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도전을 받았다. 내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대학에서 조교로 있었기에, 빈민촌으로 들어가 설교를 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설교한 것이다, 그래서 껌팔이 하고, 단무지 장사하고, 넝마주이 하는 분들에게는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은 거다.

나는 그날 밤 할머니의 지적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교인들의 눈높이에서 설교를 쉽게 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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