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숭고한 빛이 탄생하고 되돌아가는 과정을 매 순간 반복합니다.
새 생명의 빛을 맞이하는 축복을 다른 한쪽에서는 생을 마감하는 빛을 되돌려 보내며 슬픔과 상실감으로 감정이 요동칩니다. 본래 자성이 밝게 빛나는 생명의 빛은 어느 곳 누구에게 잉태 되든지 위대하고 성스러운 빛을 발합니다. 인연 따라 온 이 빛의 다른 이름은 “영혼”이라 불립니다. 그 빛은 어디에서 왜 왔을까요?

몇 천만 겁 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세에 윤회하게 될 빛은 어둠에 물들어 혼탁해짐과 선행을 하여 더 밝게 빛을 발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빛은 악행과 선행으로 업장을 짓고 무수한 인연을 맺어온 이들과 관계에서 혹은 물질의 집착과 탐욕으로 업연의 실타래가 칡넝쿨처럼 얽혀 그에 따른 과보로 고통에 시달리며 사바세계에서 자신이 뿌려놓은 인과의 쓰디쓴 열매를 맛 보게 됩니다. 선행을 하고 마음을 바로 쓰면 공덕이 쌓여 불보살님의 가피로 위기에서 모면되고 고통이 줄어드는 복덕을 누리게 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선애보살은 명망있는 가문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심성이 곱고 예의 바른 처자입니다. 효심이 깊은 보살은 부모님과 일 밖에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와 인연이 지어져 금새 사랑에 빠졌고 아이가 잉태되어 급하게 혼인날짜를 잡고 있던 중 갑작스런 출혈과 함께 유산이 되어 우울하고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불심이 깊은 선애보살의 어머니는 지장보살기도를 열심히 하여 태중영가(태아령)가 허공을 떠돌지 않고 왕생극락하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태중영가(태아령)가 알몸으로 나와 딸이 선애보살의 무릎과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느낌이 좋지 않아 자신의 기도 힘으로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태중영가(태아령)천도를 잘하는 도력 있는 스님을 수소문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소승을 찾아왔다는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승은 어머니보살에게 말했습니다 “보살님의 지극한 기도정성이 하늘을 움직여 태중영가가 올바로 극락세계에 인도될 수 있도록 소승과 인연 지어졌어요. 이것이 기도가피지 뭡니까?” 하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태중영가는 대부분 먹을 것과 장난감을 요구하거나 원한을 품어 해를 입히려 하거나 엄마의 따뜻한 모체에 머물러 있기 위해 응석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 반면 선애보살의 태중영가는 식이 맑아 스스로 저 세상으로 인도되어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 쉽게 천도되었습니다.

태중영가는 천도재 후 21일간 좋은 곳에서 몸 받아 태어나라는 의미로 집중 축원을 올리는데 천도 후 며칠째 되던 날 기도 중 뜻밖에 선애보살의 아기혼령이 찾아왔습니다. 아기혼령의 형상이 아닌 푸르스름한 빛으로 와서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하였습니다.(영혼과 대화는 말이 아닌 생각과 마음(텔레파시)로 주고 받습니다. 영가의 메세지는 단문일 경우가 많은데 이번 경우는 긴 대화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엄마는 아직 영식이 맑지 않아 꿈에 나타나 알려주고자 하였으나 힘들고 할머니는 엄마보다는 영식이 맑아 조금 나으나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너무 답답하여 스님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나는 엄마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좋은 세계에 있고 때가 되면 더 좋은 곳으로 간다.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이어서” 엄마는 아빠와 당장 헤어져야 한다. 아빠는 엄마를 이용하려는데 7년 이상 동거녀 집에서 이중생활을 하며 짜고 부잣집 외동딸인 엄마의 재산을 다 차지하려 나쁜 계획을 세우고 성공하면 엄마를 버리려 한다.” 며 간곡히 부탁의 뜻을 전하고 돌아갔습니다.

소승의 불길한 직감이 들어맞았던 것입니다.

태중영가는 천도재 날 선애보살과 어머니 그리고 사위될 남자가 함께 참석하였는데 남자를 본 순간 속으로 “이놈 괘씸하다, 남들 눈은 속여도 이 중은 못 속인다.”하며 목구멍까지 메아리 쳤는데 꾹 참고 가만히 사위를 응시하였습니다.

순간 사위될 남자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는데 ‘이 남자와 결혼하면 선애보살이 평생 이용당하며 살고 조상이 이루어 놓은 복력 까지 흐트릴 기운이 보이는 기분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의 불운이 불 보 듯 보이는데 말 못하는 답답한 심경은 고통입니다. 소승의 말 한 마디에 법계의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고 사람의 운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업연의 관계는 칡넝쿨과 도미노처럼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선애보살과 어머니보살에게 그대로 전달 해 주었고 선택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소승은 방향은 일러 줄 수 잇지만 결국 본인들 인생의 길은 스스로 결정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그 후 사실을 알아보고 선애보살은 이별을 결심하였고 배신감과 자존심으로 분노와 화로 지세웠습니다. 낙심한 어머니보살과 함께 다시 찾아온 선애보살에게 소승은 일러 주었습니다.

"용서하고 비우라... 감정을 다 비워내야 좋은 인연이 다가옵니다. 3년 동안 열심히 지장보살 찾고 참회기도 하세요. 그 전에는 어떤 인연이든 보살 연분이 아니요 허깨비입니다. 보살이 고통 받는 것은 다 과거에 본인이 만든 업장으로 인한 인과입니다,

법계는 한치오차 없이 자신이 지은만큼 과보를 되돌려줍니다. 다행히 선애보살 조상의 은덕과 불보살님의 가피로 잠시 고통만 맛보고 평생 받을 악업을 청산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장보살님은 사악한 죄를 지은 중생을 위해서도 구제하려 자비를 베푸는 분이십니다.

보살의 조상들이 지장보살을 대대로 잘 모셨는데 그 공덕으로 집안이 나날이 번창하고 뜻밖에 재난에서 용케 구제되는 가피를 많이 볼 것입니다.”

두 모녀는 뜻밖의 모르고 있던 선대 조상님들에 대해 알고 놀라워했습니다.

어머니 보살이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힘들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열심히 찾고 명호를 부릅니다. 조상님들이 대대로 지장보살님을 지극히 모셨는지는 윗대라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절에서 선망부모, 유주무주고혼 조상님들을 위한 천도재를 잊지 않고 지냈다"며 자신도 의례 전통처럼 선망조상님들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천도재를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윗대의 조상과 후손의 지극한 정성은 조상을 해탈시킴과 동시에 영식을 맑게 해 주었고 그 한량 없는 공덕이 조상과 자손에게 복덕으로 무한히 내려지는 가피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태중영가는 어둠 속에서 빛도 보지 못한 채 육신이 희생되었지만 후손을 구하기 위해 방편으로 오신 선신이 아닌가 사유하게 됩니다. 해마다 지내는 천도재에 태중영가의 위패를 잊지 않고 모셔 명이 다하는 날까지 은덕을 잊지 말라 일러주었습니다.

태중영가는 하마터면 평생 불행의 고통으로 몸부림 칠 운명의 길에서 선애보살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었고 조상의 공덕으로 일구어 놓은 집안의 흔들릴 운을 지켜줄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어느 날 선애보살이 소승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다며 처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처사를 보는 순간 속으로 "이제 시집 갈 때가 되었구나” 하고 내색 하지 않았지만 기뻣습니다.

중년이 다 되어 표정에 여유를 머금은 두 남녀는 조심스레 선원에 들어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소승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인격과 예의는 반드시 비례하는데 예를 갖추는 처사의 품성이 단정해 보였습니다. 습관처럼 외양을 보지 않고 사람의 육신 안에 오라의 빛깔과 심성을 먼저 들여다 보는데 참으로 맑고 밝은 기운이라 또 합격

흔쾌히 결혼날짜를 잡아 주었습니다. 처사는 안 해 본 고생 없이 자수성가 한 사람으로 단단한 나무 같은 기운이 풍겼습니다.

선애보살 아버님이 경영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함께 일하던 중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혼인 후 두 사람은 회사를 중견기업으로 키워나갔으며 사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타고난 근면함으로 나날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몇 번 회사가 경영난으로 흔들리는 고비도 있었지만 가볍게 몸살을 앓을 뿐 더욱 견고하게 다져졌습니다.

위기와 시련을 겪을 때 마다 조상의 공덕과 불보살님의 원력 두 사람의 복력으로 웬만한 장애물은 금새 허물어지듯 넘어갔습니다.

보살의 가족들은 심안이 열렸기 때문에 비록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인정하고 지극한 효심으로 선대조상을 위할 줄 알았습니다.

인생에 따르는 고통과 마장을 "내 탓이오" 자신의 인과로 깨닳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불보살님을 지극히 섬기며 신심이 두터워 태중영가의 메세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조상의 은덕과 불보살님 가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부귀영화는 순전히 내가 잘나서 누리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내주는 에너지가 복과 운으로 변하여 내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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