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함께 천도된 맹인안내견 몽구이야기

오래전 늦가을 낙엽 떨어지는 날 노부부가 소승을 만나러 왔습니다. 쓸쓸한 낙엽처럼 얼굴표정이 상실감으로 그늘져 있었습니다. 외동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후 가슴에 묻고 지내며 고통 받던 노부부는 이제 딸의 혼령을 좋은 곳으로 보내주어야겠다며 천도재 지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외동딸이 고인이 되기 전 절에 열심히 다니며 업장소멸과 참회기도를 많이 하여 신심이 깊고 마음이 공부가 많이 된 선량하고 예의 바른 분들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기도참회 열심히 한 노부부는 기운이 맑아 소승은 금새 삼매에 들어 딸의 혼령을 볼 수 있었는데 연세 드신 부모님 걱정에 유주고혼으로 아직 중음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온통 눈빛까지도 검은 큰 개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여 노부부에게 딸이 큰 개와 무슨 연고인지 함께 있다며 보인 대로 말해주자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통곡하였습니다.

그제야 고인이 된 딸이 살아생전 시각장애인이었으며 훈련된 맹인 안내견과 함께 그림자처럼 의지하며 지내다가 맹인 안내견 몽구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딸은 몇 년 뒤 지병을 앓다 합병증으로 이승의 강을 건넜다는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기구한 사연의 노부부는 둘 다 고아로 힘겹게 살다가 만나 부부의 연이 되었지만 산 너머 산이라 늦게까지 자손이 없어 지극정성 기도하여 얻은 외동 딸조차 가슴에 묻어야 하는 삶은 겹겹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은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도 이해관계가 얽히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육탈 시 음의 습성이 커져 분한기억, 억울한 기억이 남아 의도치 않게 원수나 가족주변을 배회하며 영가장애를 일으키거나 끊임없이 괴롭히기도 합니다.
사람이 악의를 품고 생명을 해치지 않는 이상 동물의 혼은 단순하여 반려견은 오직 주인만 생각하고 주로 좋은 추억을 간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직 충심과 희생으로 주인을 위해 한 평생을 살다 갑니다.
대다수의 생명체는 육탈 후에도 자신이 망자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생전과 같이 행동하고 생각합니다. 습 이지요…

여전히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며 앞을 볼 수 없다 생각하는 딸의 혼령에게 “앞을 볼 수 있음과 없음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아상을 버리고 인연 따라 다음 생을 받아 다시 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움으로 싸여있는지 실컷 두 눈으로 생생히 바라보라” 일러 주었습니다.
몽구에게는 “ 이번 생에 너의 임무는 끝났다. 사람처럼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지 않았어도 너의 충심과 계산 없는 선행은 너의 과거 업을 녹이고 복덕으로 가득 채워졌다. 부디 다음 생에 사람으로 환생하여 얽메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거라” 하고 일러주었습니다.

노부부의 간절한 염원과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소승의 간절한 정성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천도재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와 같이 노부부처럼 진심으로 참회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이 비워지는데 천도재 의식 시 불보살님의 가피가 크게 내려져 업장이 한번에 녹아 내려가는 경우를 경험상 많이 보아왔습니다.
풀 한 포기 하나도 역경을 딛고 피워 지는 것이 고난의 이치입니다. 고난은 사람을 더욱 굳건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법계의 방편입니다. 고난도 없고 역경도 없는 사람은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처럼 금새 꺼져버리고 맙니다.

노부부의 망자가 된 딸 천도재를 거행하면서 반려견의 혼령도 함께 천도해주었습니다.
광명(光明)에 휩싸여 천도되는 딸과 반려견 몽구의 동행으로 임종한 날은 각자 달라도 마지막 돌아가는 길은 외롭지 않은 두 아름다운 영혼

이제 각자의 길에서 다음 생을 준비할 아름다운 두 영혼을 위해 축복해 주었습니다.

딸과 몽구의 천도재 이 후 노부부는 우울한 마음이 신기하게도 씻겨 내려가고 불면증이 사라졌다며 가끔 딸과 몽구의 추억은 떠올려지지만 마치 영화 감상하듯 먼 과거의 일처럼 생각되고 더 이상 슬프거나 상실감에 빠져들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세상만사는 공(思)으로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공사상(空思想), 허공에서 생겨나 다시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전생의 기억이 지워져 기억나지 않는 것은 법계의 질서로 공(思)으로 돌아가려는 속성 때문입니다. 비워져야 채워지듯 비워야 이루게 됩니다. 비워야 잘 살게 됩니다. 비워야 건강해집니다. 기도 참회로 업장이 빨리 소멸되면 빨리 공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이 생깁니다.

노부부는 남은 여생을 기도수행하며 조용히 다음 생을 준비하였으며 딸이 맺어준 인연으로 소승에게 종종 수행점검을 받으며 짦은 기간 좋은 벗으로 지내다가 시기를 앞당겨서 육탈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무엇에도 얽메임 없이 바람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대 자유의 몸이 되었을 노부부…

수백년 전 노부부는 산 중 깊은 곳에서 속세를 떠나 도를 닦던 두 명의 비구였으며 앞을 못 보는 딸은 두 비구에게 하루 한끼의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리고 주변을 청소하고 도를 깨우치는데 큰 공덕을 짓던 산 아랫마을에 살던 과부요, 맹인안내견 몽구는 과부의 요절한 남편으로 수 백 년 후의 시절 인연 법으로 태어나 업연의 실타래를 풀고 현생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더욱 성숙될 수 있도록 해주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재회했습니다.
소승이 직접 그들에게 전생을 언급해주지 않았지만 노부부의 기도 도력으로 그들의 전생을 직접 보고 깨달은 바가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만블라선원 주지 동국스님의 천도 가피 영험담입니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