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언약가정

[조은뉴스=이재훈 기자] 16일 새벽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2차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7명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총 3천명 이상이 부상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새벽 발생한 강진은 6천434명의 사망자와 4만3천명의 부상자를 낸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같은 규모(7.3)였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한국도 흔들거렸고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부산 등 남부 지방에서는 진도 3 이상의 진동이 전달돼 부산소방안전본부 상황실에 신고전화가 1천500여 건 접수됐다.

성경에만 세상 끝이 오면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다고 예언하고 있다. 틀린 복음으로 인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에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했다.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라며 거짓선지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재난이 일어난다고 성경에 분명히 계시됐다.

800만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나라의 지도자가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 혼령을 위로하는 신사참배를 앞장서서 하면 사탄이 역사한다.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인 올바른 천국 복음이 증언되길 기도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언약가정> 정형근 장로, 이순남 권사

안녕하세요. 고등부 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정형근 장로, 이순남 권사입니다.

제가(이순남) 복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은 1994년 1월 이었습니다. 근무하던 곳에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에 휴게실에서 말씀운동이 시작되었고 날마다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으로 참 바쁘게 다녔습니다. 복음이 너무 좋아서,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해서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후대들에게 폭압적인 조국은 물려줄 수는 없다고 생명 걸고 민주화투쟁을 했는데 하나님이 내 생명을 그 가운데서 보존하신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복음을 후대에게 전하고 심으라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또 울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 살다가 갈 뻔 한 인생이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 전도도 되어지는데 왜 예배며, 갖은 훈련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몰랐습니다. 그즈음 유학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면서 알았습니다. 그때 합숙훈련은 받은 상태여서 일본 나고야에서 나름 현장도 보이고 어느 정도 역사도 일어나는데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면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훈련을 받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그래야지라고 결심하였습니다.

97년 11월 27일 저와 아이들은 귀국을 하고 12월에 이종우 선교사님께서 일본선교를 위해 나고야에 들어오시면서 남편과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 선교사님께서 우리 집 주소를 적어 찾아 오셨고 남편이 불신자라는 것을 아시고 며칠을 머무시는 중에 일심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시시때때로 선포하셨습니다. 그 일로 남편은 엄청 화를 냈고 저희 부부는 거의 한 달 동안 말문을 닫고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역전의 용사처럼 어떤 일을 진행하셔서 함께 살게 하셨고, 어느 날 믿어지게 하셨으며 남편은 중국인 한족 부부와 나고야 공회당을 빌려서 시작된 나고야중부교회의 첫 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정형근 장로) 대학생 때 아내 이순남 권사를 만났는데 그 때는 이 권사가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이 권사가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었고 주일에 가족 모두가 교회를 가고 나면 혼자 남아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가 이종우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온 가족이 언약가정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이순남 권사) 어릴 때, 온 동네 아이들이 여름 성경학교며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 왔다 가고는 했습니다. 그런 중에 저는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평상시에도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불신자인 부모님 몰래 다니다가 집 안 망칠 일이 있느냐고 어머니께 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집에서 매를 맞는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 시절 가정, 경제, 건강 등 밀려오는 많은 문제 속에서 나를 지탱시키는 유일한 힘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말씀은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였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믿었고, 구원은 받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하게 몰랐으며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저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고 고백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이후 말씀을 현장에서 처음 하던 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세우셨는지, 왜 중, 고등학교 때에 정확한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하셨습니다.

정 장로와는 대학생 시절, 구원은 받았으나 불신자와 같은 상태에서 만나 졸업 후 결혼을 하였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태,영아 때에 전혀 하나님 앞에서 키우지 못한 것이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였고 아이들에게도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또 다른 한(恨)이 되었습니다. “지금 아이를 한명 주시면 오직 말씀만 가지고 태교하고, 양육해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일꾼으로 드리겠습니다, 기왕이면 남편과 내 사주팔자에는 아들만 셋이라는데, 두 불신 가문에 내 운명, 사주팔자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났다는 증거로 딸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해서 ’95년 3월 셋째가 태어났고 이 아이를 통해 말씀과 기도 속에 자란 렘넌트(후대)의 영적인 축복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에 다섯 번 정시기도가 실제로 되어졌습니다. 오직 기도제목은 ‘성령충만‘ 하나뿐이었습니다. 유학 중에 전화로 짧게 포럼을 나누었는데, 어렸을 때에 자기는 ‘성령충만‘이 무슨 사자성어쯤 되는 줄 알았었다고 말해 둘이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딸에게 늘 성령충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빠를 위해 세 아이가 3년을 날마다, 정시기도 시간에 쉬지 않고 기도하였고 그 기도에 하나님은 한편의 그림처럼 멋있게 응답하셨습니다. 당시에 어린 세 아이들 등살에 날마다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 시간이 저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강하게 임하는 시간이었으며 믿지 않는 남편에게 역사하는 흑암이 완전히 무너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막내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며 투덜거리는 친구들에게 자신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게 이런 렘넌트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24시 기도가 되어지는 목사님과 딸을 생각하면서 나도 그렇게 되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도자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진정한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 렘넌트운동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24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두 아들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모든 훈련 시스템 속에 집어넣어 복음이 사상이 되고 체질이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내게 조금이라도 겸손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두 아들을 통하여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영육간에 무식하고 부족하기 그지없는 부모의 한계를 넘어 주의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에게 부어주시는 주의 족한 은혜에 오늘도 감사를 드립니다.

2005년 1월, 청소년 사명자 수련회 때 주신 현팀 메세지 가운데 ‘기도스쿨’과 300% 전문성(영적, 기능, 삶)을 갖춘 후대들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는 말씀을 언약으로 잡고 기도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에 부산 렘넌트기도스쿨 1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복음 되어지는 복음 엘리트를 찾아 세울 수 있도록 간구하며 지금까지 인도받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 세계 렘넌트들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해외 렘넌트들과의 만남의 축복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97년, 남편은 ‘98년에 한국에 돌아와 교회에 정착하면서 중고등부 교사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부부가 너무 부족하지만 부장으로 고등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렘넌트들이 중,고 시절에 복음을 반드시 자기의 것으로 개인화시키고, ‘오직 복음’이 되어지도록 성도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고등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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