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전남)=이동구 기자]   수 천만년 동안 민초들의 병고를 고치며 발전해온 침뜸치료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발전한 전통적 민간의술로 검증된 의술이다.

뜸의 역사를 찾아보면 원래 우리의 몸은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특성에 따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에 근거한 원시적인 자연의술에서 비롯 되었다는 연구발표가 있다.

침의 발생근원을 본다면 가려울 때 긁어서 시원하게 하는 것, 아픈곳을 누르고 도구를 이용해서 자극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뜸의 경우에도 불을 쬐면서 생겨나온 의술로 수 천만 년 전 원시시대부터 아픈 곳을 따뜻하게 하고, 불로 약한 화상을 입힘으로서 질병을 치료하던 것이 뜸으로 발전되어 왔다.

우리나라 전통 민간의술로 발전해 온 뜸치료는 침과 더불어 이제 이웃 일본을 비롯해 미국 등 북미유럽 권에서도 대안의료 방안으로 자리잡아 가고 오히려 종주국인 한국을 앞서는 임상 연구와 투자를 통해 침과 함께 의료부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1976년 침뜸의 효능을 인정하고 회원국에 침뜸 병행치료를 권장하고 300여가지의 질병을 예방,치료 할 수 있다는 보고를 한바와 같이 세계인의 관심속에 우리전통 의술이 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리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 뜸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점차 제도권의전문업종으로 발전하다가 조선실록의 기로게 의하면 조선시대에 들어 침구의(침灸醫)제도가 마련되고 세종대왕이 침구를 전문으로 하는 업종을 신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종 3년(1472}에는 성종의 의학권장(醫學勸獎) 10조를 정하는 중에 전문침구의를 따로 설치할 것을 명하고 성종 16년(1485) 조선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의과취재(의과고시 또는 의과시험에 관한 것)에 침구를 분리 독립의료로 지정 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허준이 약과 침뜸을 동시에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침의 분야에는 허임이라는 의원이 또 있었다. 조선실록에 허준은 분명하게 ‘소신은 침을 모릅니다’ 라고 말하고 침의인 허임을 추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침뜸전문의를 따로 인정하고 의료의 한 부분을 담당해 왔으며, 허임이 생존하면서 활동했던 그 시대가 침뜸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6세기말 과 17세기 초에 들어 임진란 등 거듭된 전란으로 각종 창상이나 종양 등 외과영역의 질환증가에 따른 침뜸의 필요성과 왕실에서의 빈번한 침뜸진료가 침뜸 임상의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침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료체계 내에서 활동한 정통의료인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내의원의 관할하에 활동하였고 의무(醫務)와 관련된 직책에서부터 지방관에 이르기까지 관직을 맡기도 할 만큼 전문 의료인으로 확실한 위치와 대접을 받았다.

구한말에 들어와 당시 의료기관인 내부병원은 1899년 에 내부직할병원으로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일반환자를 진료하는 외에 죄수들의 구료, 전염병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피병원 등이 설치 되었으며 병원장 1인과 의사 15인을 두기로 했는데 이들 가운데에도 대방의 2명, 종두의 10명, 외과의 1명, 소아의 1명, 그리고 침이 1명을 별도로 두고 잇었을 만큼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침뜸은 전문업종으로 제도권에서 의료의 한 분야를 담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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