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비밀

[(칼럼)조은뉴스= 대교CSA 칼럼니스트 김정숙]  “산전수전”… 세상 어떤 사람도 인생이 쉽게만 풀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김태원만큼 이 단어가 어울릴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학창시절 내내 문제아.
부활이라는 그룹 결성 후 화려한 데뷔. 그리고 추락.
대마초. 수감생활.
둘째아이의 자폐증 진단.
두 번의 암선고.
그리고 제 2의 인생.
국민멘토. 국민할매….
사람들은 김태원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촌철살인의 살인을 진짜 살인으로 알았던, 평생 읽은 책이 단 두 권뿐이라는. 김태원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위안을 받는다.
지식보다 무서운게 지혜라고 했던가.
지식가지고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혜의 깊이. 우리는 김태원에게서 그걸 발견한다.


성공비결 1. 수많은 방황과 시련. 삶의 깊이를 만들다.


고등학교 때까지 김태원은 학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교실에 앉아있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던 김태원. 그러던 그가 기타를 만나고 삶의 방향을 잡게 된다. 음악이 그에게 있어서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 주었다.
부활을 결성하고 화려한 데뷔를 했지만. 그의 특별했던 성격 때문에 몇 번이나 보컬이 바뀌고. 그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박완규도 녹음 할 때 같은 곡을 100번이나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메인 보컬이었던 이승철과의 결별, 자신이 불렀을 때는 전혀 반응조차 없었던 노래 [회상III]가 이 후에 이승철에 의해 [마지막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그리고 그 노래가 무섭게 히트하는 걸 옆에서 보았을 때. 음악인으로서 그의 좌절감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수 있다. 청년시절의 그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그랬던 그가 철저히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자신과 함께 했던 동료들과 결별하고 음악적인 자존심마저 바닥에 떨어졌을 때…결국 그런 시련들을 못 이기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나락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했을 때. 몇 번이나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는 여기까지인가. 나라는 사람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던가.

그런 아픔들은 김태원이란 사람을 몰라보게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과 두려움들. 위대한 탄생이란 프로그램에서 많은 다른 멘토들이 보여지는 부분을 통해 스타성을 따지고 재능을 따져서 평가할 때…김태원은 유독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항상 그들에게 엄지를 치켜 들어주었다. 마치 넌 진짜 멋진 녀석이야..나는 그걸 알아…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멘토지만 나는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안에 있는 걸 끄집어 내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인생에서 한 번에 무언가가 되는 것은 불행일 수 있습니다.
지금을 도약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꿈을 버리지 마세요.”
“자신이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이들을 일깨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도 1등을 예상하지 못했던 백청강이라는 친구가 결국 1등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걸 두고 김태원의 힘이라고 했다. 김태원이 수없이 불어넣어 주었던 가능성에 대한 얘기들, 못생긴 사람도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김태원의 힘. 사람들은 그 스토리가 승리하길 바랬다.
전혀 스타랑은 관계없어 보이는 중국에서 온 한 청년이 멋진 멘토를 만나 행복하게 잘 되었다는 이야기. 어쩌면 백청강의 승리는 김태원의 스토리의 승리라고도 보여진다.

하지만 얼마 전 백청강이 김태원의 소속사를 떠나 다른 소속사와 손을 잡고 글로벌 진출을 약속받았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순간…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김태원의 반응이 궁금했다. 젊은 시절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때로는 음악적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보컬들과 결별을 했던 김태원…이젠 어떻게 반응할까?
김태원은 변해 있었다. 김태원은 이미 백청강의 멘토였다.
“오늘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며 백청강 측 관계자와 협의 끝에 백청강이 잘 될 수 있는 길로 선택이 되었으니 백청강군의 앞날에 큰 행운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응원주시기 바랍니다.”


성공비결 2. 자신의 경험이 후배에게 길이 되다.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다. 고집불통의 자신만의 길만을 주장했던 김태원이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의 깊이가 깊어졌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신과 똑 닮은 박완규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난한 락밴드를 이끌고 음악적 이상과 삶의 현실속에서 방황을 거듭했던 김태원에게 나타난 박완규는 자신은 죽을 때까지 락커이고 전혀 타협하지 않고 락을 하다가 죽겠다고 말한다. 그 때 박완규에게 김태원이 한말은 걸작이다.
“니가 노래 잘 하는걸 보여주려면 레드제플린의 블랙독 같은 곡을 부르면 돼. 하지만 먹고 살려면 [사랑할수록] 같은 곡을 불러야 해.”

 

성공비결 3.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록커. 나는 음악인.

 

 사람들은 김태원을 국민 할매라고 부른다. 작년인가 재작년 광고에서는 스키장에서 김태원의 긴 머리를 보고 남자가 캔커피를 가지고 따라오는 광고도 있었다.
운동도 못하고 약골 체질에. 다른 음악적 자존심을 내세우는 록커들과는 다르게 예능 출연도 잦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그런 김태원의 모습을 좋게 본 건 아니다.
에이…무슨 록커가 저래…어쩌면 옛날 콘서트장을 뒤집어 놓던 부활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런 모습은 실망시키기 충분한 내용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그런 김태원 덕분에 하드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전설의 록 기타리스트 3명이 특집으로 초대되어 나오기도 했다.

중요한 건 어떤 길을 선택하던 김태원은 한번도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버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음악인의 길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했던 말은 유명하다. “편견을 나누고 분리함을 버려라. 결국 도착할 곳은 모두가 한 곳이다. “
또한 그는 위태한 탄생에서 트로트를 부를까 하다가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싶어 다른 곳을 선택했다는 한 참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악에 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어쩌면 이 말은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의 답이 아닐까?

김태원. 참 힘든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따뜻한 얘기를 전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하고 중도에 무너져버리지만 그것을 이겨냈을 때 그 경험은 그가 견뎌낸 만큼의 지혜를 선물로 준다.

오늘도 김태원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뒤돌아보면 다 연결됩니다. 힘들거나 아름다웠던 부분들이…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먼 훗날 뒤돌아봤을 때 아름다운 일들을….화이팅~” (3월 2일. 김태원 트위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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