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은뉴스= 대교CSA 칼럼니스트 김정숙]

 

 


#Scene 1
지방대 출신. 대학 1학년 때부터 대학생 광고 공모에 꾸준히 응모했으나 단 한 개의 상도 못 받음.
대학 졸업 후 수십 개의 광고회사에 이력서 제출, 그러나 어디에서도 면접보라는 연락 없음.
자신의 스펙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동네 간판쟁이라고 판단. 결국 그 일을 시작했으나
동네 명함집 아저씨의 면박에 그마저도 얼마 못 가서 중단.

#Scene 2
프랑스 깐느 광고제 은사자상 (옥외부문)
프랑스 깐느 광고제 Final List (미디어)
뉴욕 페스티벌 그랑프리 (옥외부문)
뉴욕 페스티벌 월드 금메달 (옥외부문)
뉴욕 페스티벌 월드 금메달 (홍보물)
클리오 어워드 최우수상 금상 (공익 포스터)
뉴욕 원쑈 금상 (디자인)
뉴욕 원쑈 은상 (옥외부문)
미국 광고협회 애디 어워드 금상
뉴욕 아트디텍터스 클럽 은상
독일 Red Dot Award Best of Best
런던 페스티벌 광고 (포스터 부문)
미국 그래픽스 디자인 어워드 금상
유럽 아카이브 잡지 최우수상
애드오프더월드 옥외부문 금상
미국 커뮤니케이션 아트 우수작

“평생 몇 개도 받기 힘든 상을 1년 만에 수십 개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울 만큼 드물고 대단한 일이다.” (애드디렉터스 클럽&원클럽 대표 알런 비버) “1947년 개교이래 처음 있는 놀라운 기록으로 한국인 유학생들의 놀라운 재능과 열정에 감탄을 보낸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학장 리차드 와일드)

#Scene1과 #Scene 2에 나오는 주인공, 어떻게 생각하는가?
#Scene 1은 루저의 이야기이고, #Scene 2는 성공한 광고디렉터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가?
위 두 스토리의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하다 하다 안 풀려 단돈 500달러 들고 미국으로 무작정 떠난 젊은 청년, 이제석의 이야기이다.

이제석이라는 광고쟁이를 알아가는 동안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진행자, 오프라윈프리가 떠올랐다.
인생의 반전, 최악의 상황에서 만들어낸 극적인 스토리.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비슷한 건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시 사회에 기부하고자 하는 노력, 젊지만 그 마음씀씀이 만큼은 누구보다 연륜 있는 이제석의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성공비결 1. 판이 불리하다고? 그럼 뒤집어.

학창 시절 그림 그리다가 걸려서 선생님들한테 맞기도 엄청 맞았다. 그래도 그림이 좋았다. 그림으로 대학갈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수능 100점 대를 300점 대까지 끌어올리고 미대에 갔다. 대학에서 하고 싶은 그림 원없이 그려서 수석으로 졸업도 했다.
그런데 수십 개의 이력서를 내도 어느 회사 하나 면접 보러 오라는 데가 없었다. 그는 그림이 좋고 광고가 하고 싶어서 지원한 건데 회사에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토익 점수가 몇 점인지를 먼저 물어봤다. 지방대에 영어점수가 없는 그에게 취직은 요원한 일인 것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을 내렸다. 내 스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동네 간판쟁이 뿐이라는 걸.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 판은 나에게 불리해. 여기서 원하는 룰에는 맞추기 힘들어. 판을 뒤집자. 내 룰로 다시 판을 짜자. 단돈 500달러 쥐고 미국행.

 

그 후 2년 만에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29개의 메달을 휩쓸다.
2007년 세계 최고 광고 공모제의 하나인 원쇼 공모전 수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대신 인턴십 구한다고 외쳐 이력서 한 장 없이 미국의 가장 최고의 광고회사 JWT NEW YORK에 당당히 취직. 내 인생의 판은 내가 짠다.

성공비결 2. 미쳐라. 완전히 그 안에 빠져라.

단돈 500달러 쥐고 미국으로 떠나던 날, 편도 티켓만 끊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거기서 죽을 생각이었다. 말도 안 통하고 하루 하루가 쉽지 않았지만 광고에 미쳐 살았다.

오레오 광고를 만들 때는 하루 세 끼 오레오 쿠키만 먹어댔다. 이빨 사이에는 까만 가루가 끼고 똥을 싸도 까만 똥이 나왔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게 이 광고이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마다 오레오 쿠키가 우유에 빠진다. 광고주의 허락도 받기 전에 이제석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마자 먼저 프린트해서 엘리베이터에 부착한 후 동영상을 찍어 유투브에 올려버렸다. 폭발적인 반응으로 뉴욕타임즈 경제면에 소개되고 광고 전문지에도 표지 장식을 했던 광고.

 

성공비결 3. 돈이 아닌 가치를 좇아라.

그는 얘기한다. 광고로 끊임없이 사회 이슈를 만들어 낼 거라고.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고. 돈이 벌리면 다행이지만…돈 자체가 그의 목적일 순 없다고.
젊다는 특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 일을 할 권리. 그걸 월급에 목매면서. 사회가 바라보는 잣대에 맞추면서 살고 싶진 않다고.
한국에서 날아온 최고의 대우와 롤스로이스를 마다하고 자신의 작은 회사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차릴 때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헬기 타고 다니면서 일을 해도 될 만큼 부와 명예가 코앞에 와있는데 그걸 발로 찼다고. 미친 거 아니냐고.

게다가 [이제석 광고연구소]. 그 회사의 업무의 70%는 NGO단체를 위한 기부 콘텐츠 광고다. 가장 줏가를 올리는 이 시기에 그가 선택한 건 상업광고보다는 공익 광고.
하지만 이제석은 말한다. 나는 내 가치에 맞는 일을. 내가 가진 재능을 거기에 쓸 거라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는 우리에게 또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거봐라. 내가 돈을 좇지 않고 가치를 좇았더니 더 크게 성장해서 오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도 내가 만든 룰이 나를 이기게 만들었다고.

#Scene 3. 광고천재 이제석의 광고입니다.

 

 

 

 

 

 

 

 

 

 

 

 

“나는 내 나라에서는 새는 바가지였다.
대학을 수석 졸업했는데도 오라는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광고쟁이가 광고만 잘하면 되지, 왜 토익 성적이 필요하고 명문대 간판이 필요한 걸까?
창의력을 이런 잣대로 잴 수 있는가?
태평양 물은 몇 바가지, 대서양 물은 몇 바가지 이렇게 바가지 타령을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나는 내 나라 밖에서는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2년 동안 전 세계 광고공모전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했고 내노라 하는 세계적인 광고 회사에서 일했다.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밖에서 인정받자 이제 안에서도 인정하게 됐다.
그게 남들 눈에는 인생 역전처럼 보였던 걸까?
루저라 불리는 칙칙한 청춘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등대쯤으로 보이는 걸까?
나에게 자꾸 말을 하라고 한다.”

- 출처 [광고천재 이제석](학고재), 이제석 광고연구소 -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