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억원 어치 불법복제 적발!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한국은 '지식정보 도둑질'에서도 강국이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외치는 정부기관도 해적판 소프트웨어(SW)를 버젓이 쓸 정도다.

중국을 '짝퉁 천국'이라고 조롱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지금도 SW와 음악·영화 등 각종 콘텐트가 불법으로 다운로드되고 있다. 연초 중앙일보는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한 7대 과제(어젠다)를 제시하면서 그중 하나로 '지식 도둑질을 막자'고 했지만 여전히 쇠귀에 경 읽기다.

국제 민간단체인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은 올 5월 한국의 불법 복제율이 43%에 이른다고 밝혔다. 세계 평균치 38%보다 훨씬 높다. 이로 인한 업계의 피해액은 5400억원. 지난해 발표된 수치보다 1000억원이나 늘었다. 이대희 고려대 법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중국 못지않은 SW 불법 복제국”이라고 지적했다.

본지가 입수한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컴보위)의 '2008년 상반기 불법 SW 실태조사'를 봐도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전국 991개 조직을 점검한 결과 넷 중 세 곳에서 불법 SW를 쓰고 있었다.

이 위원회의 이일구 사무국장은 “적발된 SW는 2만3190건, 155억원어치에 이른다”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건수로 12%나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때만 되면 해적판 SW의 근절을 외친다. 하지만 공공기관마저 정품 SW 사용에 미온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도 불법 복제에 쓰이는 SW 설치파일과 라이선스 번호가 돌아다닌다”고 전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에 따르면 2500여 대의 PC를 보유한 한 부처의 정품 오피스(사무용 SW)는 100개에 불과했다. MS 측은 “한국 정부에 대한 우리의 소프트웨어 매출은 한국보다 공공기관 규모가 작은 호주의 1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급습한 검찰·문화체육관광부·컴보위 불법 SW 합동단속반은 혀를 내둘렀다. 단속반원이 한 상가의 PC마다 불법 SW 검사장비를 돌리자 아래아한글·안철수백신 등 복제 SW가 하드디스크 곳곳에서 발견됐다.

콘텐트를 베끼는 데 대한 일반 국민의 죄의식도 바닥 수준이다. 컴보위가 지난달 4∼10일 1013명을 상대로 '국민의식 조사'를 한 결과 절반 가까이(48%)가 SW를 온라인이나 친구한테서 얻는다고 답했다. 유인식 컴보위 기획팀장은 “온라인에서 얻는 건 대부분 불법 복제”라고 설명했다.

같은 조사에서 10명 중 여덟은 포털에서 콘텐트를 내려받았다고 응답해 온라인 영화·음악·게임 등 디지털 콘텐트의 저작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인기 있는 대중가수라도 수백만 장의 빅히트 음반이 사라진 지 오래다. 웬만한 영화 화제작은 개봉 전에 인터넷에 둥둥 떠다닌다.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는 “히트 게임 '리니지'와 관련된 불법 게시물은 5개 주요 포털에만 27만 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직후 '5년 내 세계 100위권 SW 업체를 열 곳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남의 SW·콘텐트를 마구 퍼나르는 사례가 오히려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6월 방한한 로버트 홀리먼 BSA 회장은 “한국의 SW 불법 복제율이 향후 4년간 10% 낮아지면 76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1조3000억원의 생산 증대가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SW 산업의 경우 매출 10억원당 고용창출 능력이 6.2명으로 제조업(0.6명)의 10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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