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로 지역 명품녹색길…추천 5곳

[조은뉴스=전설희 기자]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이 서로 소통하며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길. 그 길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고, 문화가 살아 있으며,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행정안전부가 지역일자리 창출과 지역공동체 자립기반 마련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명품 녹색길 조성사업으로 각 지자체가 발굴한 33곳의 녹색길 중 5곳을 골라 소개한다.

◆ 정지용의 시 ‘향수’ 배경, 향수 백리길…충북 옥천

충복 옥천의 ‘향수 백리길’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1950)의 생가가 있는 옥천읍 하계리에서 시작된다. 하계리의 미용실, 우편취급국, 생맥주집 등은 모든 간판에 정지용 시인의 시구를 새겨 놓았다. 하계리 주민들은 눈만 뜨면 정지용의 시를 읊으며 사는 셈이다.
향수 백리길은 정지용 생가에서 육영수 생가를 거쳐 벚나무 가로수가 멋스런 보은 방면 구37번 국도를 달린다. 금강 줄기와 함께 30리를 달리다 보면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인 정지용의 시문학세계를 빗대어 공공예술로 빚어낸 시문학 아트밸리를 만난다.


자전거길로도 유명한 ‘향수 백리길’은 37번 국도를 달려 안남면 안남초등학교 옆으로 난 고개를 따라 둔주봉에 오르면 금강이 만들어 놓은 한반도 지형과 조우한다. 둔주봉에서 하산해 경율당 쪽으로 진입하면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정겨운 고향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향수 백리길은 청성면 합금리 하금마을을 지나 원당교를 건너 금강을 거슬러 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감상할 수 있는 금강유원지를 만난다. 금강에서 낚은 물고기로 조리한 도리뱅뱅이와 민물고기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조령리 토속음식촌에서 시장기를 달래도 좋다.


마지막 코스로 옥천에서 가장 아늑한 석탄리 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석탄리 마을 앞 금강은 여름에는 반딧불이가 호숫가를 날아다니고 겨울에는 강태공들이 빙어낚시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강줄기를 한바퀴 돌면서 잔뜩 향수에 젖은 ‘향수 백리길’은 하늘에 ‘성근 별’이 뜰 무렵 정지용 생가의 ‘향수’ 시비 앞에서 막을 내린다.

◆ 선비들이 넘던 아흔아홉 구비, 죽령 옛길…경북 영주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영남대로 세 고갯길 중 가장 오래된 길은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개척한 죽령이다. 죽령 고갯길 곳곳에는 길손들의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래주는 주막들이 즐비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소백산역 자리에 있는 무쇠다리 주막거리였다.
죽령 고갯길은 1941년에 중앙선 철도가 완공되면서 인적이 끊기기 시작했다. 현재의 죽령 옛길은 역사와 전설이 서린 옛 고갯길 일부를 복원한 자연생태로. 죽령 옛길은 희방사옛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수철리 소백산역에서 시작된다.


소백산역에서 기찻길 옆 도로를 따라가면, 죽령 옛길은 사과밭 사잇길을 터벅터벅 걸어 이내 숲 속으로 빨려든다. 숲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뜸한 덕분에 식생이 다양하다. 신나무,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등 온갖 수목과 개별꽃, 피나물, 애기똥풀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그리고 계곡을 뒤덮은 이끼 등이 무성한 죽령옛길 숲은 더 이상 식생이 변하지 않는 완벽한 상태의 숲이다.


초록 숲을 걷다보면 계곡이 갑자기 환해지며 넓어지는 곳이 있다. 와폭을 타고 내려오는 물빛마저 초록색으로 물드는 계곡은 풍기군수 시절의 퇴계가 친형인 충청감사 온계를 마중하고 배웅할 때 잠시 쉬어갔던 곳. 퇴계 만큼 죽령 고갯길과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도 드물다. 풍기군수로 발령받은 퇴계가 사랑하던 관기 두향을 두고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재촉했던 고개도 죽령이다.

숲이 울창해질수록 죽령 옛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주점 주막거리는 낙엽송이 울창한 죽령옛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주막은 허물어져 퇴락한 지 오래고 석축은 잡초 우거진 낙엽송 군락 속에서 옛 영화를 반추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이 낙엽송을 감고 올라간 모습은 영락없는 원시림이다. 꽃향기에 취한 죽령 옛길이 금세 고갯마루에 선다. 그리고 그곳에선 현대판 죽령주막이 21세기 나그네들을 맞고 있다.

◆ 북한 해안포가 보이는 백령도 둘레길…인천 백령도

심청전의 무대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백령도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배인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인 백령도의 관문은 용기포 선착장. 까나리액젓의 짭조름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선착장에 발을 디디면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이 보인다. 한국전쟁 때부터 1985년까지 공군 화물수송기가 사곶해변을 비행장으로 이용했고, 천안함 폭침 사건 때는 시누크 헬기가 이착륙을 했다. 암석의 80%가 규암으로 이루어진 백령도는 ‘규암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남포리의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은 규암 덩어리가 1억5,000만 년 동안 파도에 깎여 콩알 크기의 자갈로 변했다. 길이 1㎞, 폭 20m의 콩돌해안에는 흰색, 갈색, 적갈색, 청회색 등 형형색색의 콩돌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다.


용이 몸을 틀며 승천하는 모양의 용트림바위를 지나면 천안함이 폭침됐던 연화리해변 앞바다를 접한다. 백령도 최고의 해안절경은 서북쪽 끝의 두무진으로 가야 만날 수 있다. 두무진은 장산곶의 닭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북녘 땅과 가까운 곳. 두무진 포구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서 10여 분쯤 걸으면 웅장한 해안절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명승 제8호로 지정된 두무진은 수억년 동안 비바람에 마모되고 파도에 깎여나간 선대암,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형제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와 4㎞ 길이의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어우러져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린다.


따오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상이라 고려 때 곡도(鵠島)로도 불린 백령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흰 날개의 따오기 대신 검은 날개의 쇠가마우지 서식처로 유명하다.

백령도 두무진과 북한 장산곶 사이에는 심봉사의 눈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판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다. 백령도 남쪽의 앞 바다에는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용궁에서 타고 온 연꽃이 조류에 떠내려가다 걸렸다는 연봉바위도 있다. 백령도 면소재지 근처의 산등성이에 위치한 심청각에서는 인당수와 연봉바위는 물론 남북의 함정과 중국 어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야생화 아름다운 백두대간 분주령 꽃길…강원 태백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이자 백두대간 고개인 싸리재(1,268m)에서 금대봉(1,418m)을 거쳐 분주령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은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야생화 길의 출발점은 두문동재로도 불리는 싸리재 정상.
함백산 은대봉을 뒤로 하고 불바래기 능선에 들어서면 연분홍 산철쭉에 개별꽃, 제비꽃, 미나리아재비, 양지꽃, 산괴불주머니, 얼레지, 벌깨덩굴도 길섶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채 무리지어 해맑은 미소를 흘린다. 


백두대간 능선이 지나는 금대봉을 에둘러 왼쪽 임도로 들어서면 금대봉 분지다. 금대봉 분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복수초, 노루귀, 얼레지, 큰앵초, 피나물, 바람꽃류 등 수많은 꽃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야생화는 꽃도 화려하지만 잎과 뿌리는 산채와 한약재로도 쓰인다. 강원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히는 것은 곤드레나물밥으로 곤드레나물로 불리는 고려엉겅퀴의 맛과 향은 한량없이 좋다.
금대봉 분지에서 고목나무샘과 분주령을 거쳐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탐방로는 5㎞가 넘지만 대부분 내리막길의 연속이라 힘들지 않다. 여기에 우암산(1,346m)과 대덕산(1,307m)을 비롯한 고산준령들이 첩첩이 포개져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우암산이 보이면 큰 길을 버리고 오른쪽 오솔길을 택해야 한다. 야생화 탐방객들의 탄성과 새소리를 이정표 삼아 50m쯤 가면 다시 삼거리가 기다린다. 왼쪽은 우암산, 오른쪽은 고목나무샘 가는 길로 이곳부터는 제법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다.
아름드리 신갈나무 고목 아래 바위틈에서 물이 솟는 고목나무샘은 한강의 최상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의 상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곳부터는 벌깨덩굴과 산죽이 교대로 군락을 이룬다. 태백기린초와 벌깨덩굴, 광대수염, 홀아비꽃대가 교대로 군락을 이룬 원시림 숲길은 호젓한데다 푹신푹신한 낙엽이 깔려있어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돌배나무 서너 그루가 하얀 꽃을 피운 분주령(1,080m)은 꽃밭 중의 꽃밭. 민들레와 둥글레, 미나리아재비, 냉이꽃이 수채화처럼 은은한 꽃밭에서 민들레 홀씨 하나가 솔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정처 없는 봄여행을 떠난다.

◆ 이생진 시인이 극찬한 녹산등대 가는 길…전남 여수

전국의 섬을 주유하던 이생진 시인은 10여 년 전에 거문도를 찾았다가 ‘녹산등대로 가는 길’(시)에서 ‘너무 행복해서 죄스럽다’고 표현할 만큼 흠뻑 빠졌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늘 외롭고 고독하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거문도 땅을 밟지만 애써 녹산등대로 가는 길을 찾는 이는 드물다. 거문도등대와 백도 등 가슴에 새기고픈 관광지가 많은 탓도 있지만 녹산등대까지 6~7㎞ 거리를 터벅터벅 걷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녹산등대는 서도, 동도, 고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문도에서 가장 큰 섬인 서도의 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무인등대. 음달산 아래에 위치한 변촌마을을 지나 한참을 걸으면 녹산등대 초입에 위치한 서도마을이 나오고, 이곳에 거문도뱃노래전수관이 있다. 거문도 뱃노래는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던 노동요. 북, 장구, 괭가리 반주에 맞춰 선소리꾼이 ‘어야디야 어야디야’ 소리를 메기면 다른 뱃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고샅길에서 까치발로 돌담 너머 이웃과 정담을 나누는 마을을 빠져나오면 거문초교 서도분교 운동장 옆으로 녹산등대 가는 길이 펼쳐진다. 서도분교에서 녹산등대까지는 약 1㎞. 인동초가 피어있는 오르막을 넘자, 멀리 녹산등대가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지어미처럼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거문도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인어의 전설이 전해오는 섬.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날씨가 흐린 날엔 하얀 피부의 여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여인의 하체는 물고기 모양이지만 상체는 사람으로 달빛 쏟아지는 날에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하얀 피부의 녹산등대는 인어가 나타났다는 녹산곶 그 절벽 위에서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등대 아래에는 고사목 수십 그루가 이색적인 풍경을 그린다. 남쪽으로 거문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옅은 해무 속에서 나신을 슬쩍 슬쩍 보여준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