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조은뉴스=김동길 박사 칼럼]  엊그제 경상북도 영주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전에 안동 MBC가 주최한 교양강좌에 갔었는데,
그 때 영주 사람들이 간청하며,
“우리에게도 한번 와주세요”하기 때문에 MBC가 또 한 번 영주로 초청을 한 것입니다.
이름은 영주 아카데미 교양강좌였습니다.

강남 버스터미널에서 영주까지 2시간 40분,
우등고속이라고 불리우는 경기고속 소속의 깨끗하고 편안한 신형 버스,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영동고속으로,
거기서 다시 꺾어 중앙고속으로,
영주시가 이 버스 노선의 종착이었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엄한 고속도로들, 좌우에 전개되는 푸르고 무성한 숲들, 정말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동행한 홍 처장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30년도 더 된 옛날,
영주에 있는 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집회를 가진 적이 있어.
그 때 나를 초청했을 뿐만 아니라 극진하게 대접한 30대 말의 젊은 장로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아직도 영주에 살고 있을까.”

3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렀는데,
변동·변화가 극심했던 조국의 근세임을 감안할 때,
그를 거기서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군사정권하에서 대학에서는 추방되고,
나를 초청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세월이었습니다.
그 때, 어렵게 찾아왔던 영주와는 전혀 다른 멋진 영주,
조국의 근대화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안동에서 근무하는 젊고 아름다운 MBC의 여직원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시내의 한 음식점 2층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70대 초반의 노신사가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는 순간에,
이 사람이 30여 년 전에 나를 초청했고,
지성으로 나를 돌보아주었던 그 젊은 장로 정인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그 얼굴에 역력했지만 그의 훤칠하고 멀끔하게 잘 생긴 옛 모습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 때에는 일이 안 돼서 고생을 많이 했고 대접도 제대로 못했는데 제가 그동안 성공해서 큰 사업을 여럿 일으켰고 돈도 좀 벌었고, 여력이 생겨서 남들을 돕는 일도 조금은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모시겠습니다.
” 그렇게 말하면서 내 주머니에, 말리는 내손을 뿌리치고 봉투를 하나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들은 말이지만,
우리 넷이 먹은 점심 값도 정 장로가 다 미리 치루었다고 합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그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조국은 엄청나게 좋아졌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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