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이승연 기자]   [학교체육이 바뀐다] ④초등 체육수업 ‘새바람’ 스포츠강사

‘승부 지상주의’와 ‘엘리트 선수 양성’에 골몰해왔던 학원체육이 바뀌고 있다. 운동에만 올인해왔던 학생선수들이 비로소 학습권을 되찾게 됐고, 돈이 없어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아이들이 공짜로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학교 현장에서는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스포츠 강사’도 등장했다. 지난 1~2년 새 벌어진 변화이다. 공감코리아 korea.kr은 우리 학원체육의 변화상을 총 6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 12일 수원 영통초등학교 실내체육관. 체육복을 갖춰 입은 6학년 은행반 학생들이 하나둘 체육관 안으로 몰려든다.

수업종이 울리자 시끌벅적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일렬종대로 맞춰 서기 시작하고, 아이들을 인솔해온 담임선생님은 슬그머니 체육관 뒤쪽으로 물러선다. 이 시간 만큼은 담임교사가 아닌 스포츠강사 신동영 교사(40)의 차지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키만큼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이번 학기 새로 부임해온 체육 선생님의 힘찬 구령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한 시간 만큼은 실컷 뛰어놀고 가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있는 힘껏 소리를 외쳐댄다.

준비운동이 끝나자 세 팀으로 나눠선 아이들이 곧바로 이어달리기 채비에 나선다. 게임방식은 첫 번째 주자가 50m 앞 고깔을 돌아와 바통을 넘겨주면 나머지 아이들이 차례로 이어달리는 식이다.


그런데 신 교사의 이어달리기는 단순히 바통만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통을 주고받는 아이 둘이서 훌라후프를 들고 일렬로 늘어선 다른 아이들 속으로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돌아와야 비로소 다음 차례가 뛸 자격이 주어진다.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우두커니 기다리는 대신 그 훌라후프 속으로 한 번씩 뛰어들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쉼 없이 움직이고, 시합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 교사가 개발한 독특한 수업방식에 맞춰 아이들은 ‘이기는 법’보다는 ‘화합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초등학교에 등장한 체육 선생님. 각 교과별로 교사가 배치되는 중고등학교와 달리 모든 과목이 담임교사의 지도로 이루어지는 초등학교에서 이들의 등장은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명 ‘스포츠강사’로 불리는 이들은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008년 9월부터 전국 825개 초등학교에 배치한 체육보조교사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체육수업 부담을 경감하고, 체육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해 학교체육 환경을 되살려보자는 것이 그 취지다.

담임교사 부담 줄이고 학교체육 살리고

애초 취지대로 이들 스포츠 강사들이 각 초등학교에서 하나둘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외면받아온 초등학교 운동장과 학교체육관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사실 교사 한 명이 한 학급을 맡아 9개 과목을 모두 지도해야만 하는 초등학교 수업의 특성상 전문적인 지도를 필요로 하는 체육은 그동안 늘 뒷전이기 일쑤였다.

영통초 6학년 은행반 담임을 맡은 김지영 교사(35)는 “실제로 초등교사 한 명이 모든 수업을 골고루 내실 있게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매시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시는 체육 선생님 덕분에 그 시간에는 나도 옆에서 배우고, 얻어가는 게 많다”고 말했다.


특히 열에 아홉은 여교사가 차지하고 있을 만큼 교사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교육현장에서 주로 남성으로 이루어진 스포츠강사의 등장은 그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김기완 영통초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만 해도 전교에서 남자 선생님은 고작 한 명에 불과하다”며, “비록 체육시간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여성 선생님들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남자 선생님이 맡아줌으로써 아이들의 고른 사회성 형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 날 신동영 교사는 담임교사가 하기 힘든 학과 준비에 어려운 동작 시범도 척척 해내며, 아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른 수업에 밀려 제대로 된 체육수업을 받기 어려웠던 아이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다.

수업을 마친 정광수 학생(13)은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데 체육시간이 일주일에 세 시간뿐이어서 아쉽다”며, “매주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홍석표 강원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과거 ‘체육선생님’이라고 하면 주로 학생부 선생님이나 체벌하는 선생님을 떠올렸는데, 학생들이 운동에 흥미를 느끼게끔 하려면 체육선생님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초등학교 스포츠강사의 등장에 의미를 뒀다.

체육 특기 살려 교사 일자리 창출도

이들 스포츠강사의 등장은 청년실업 해소 및 일자리 창출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중등 정교사 자격을 취득한 신동영 교사 역시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일자리를 찾게 된 케이스이다. 

신 교사는 “중고등하교 기간제 교사의 경우 모집인원도 적은 데다 근무여건도 불안정해 중등교사 자격증 취득 후에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다”며, “특기를 썩히지 않으면서 일자리도 얻게 돼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문선수 출신들의 경우 은퇴 후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다. 국민생활체육회 김혁출 전략기획실장은 “엘리트체육 선수들이 특기를 묵혀두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라며, “이들이 생활체육 현장에서 봉사할 수 있다면 개인적인 자긍심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강사 등장 후 방과 후 클럽활동 늘어

스포츠 강사들은 정규 수업 외에 방과 후 수업 교사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들의 신체활동 부족으로 인한 체력저하 및 건강상태 악화를 우려해, 그동안 산발적으로 운영돼오던 학교 내 방과 후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나섬에 따라 이들의 활동에도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택견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각종 공공·민간기업에서 택견 지도 경험이 있는 신 교사의 경우도 자발적으로 신청한 십여 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방과 후 택견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방과 후 스포츠 활동 덕분에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스포츠클럽에 등록한 학생이 2008년 17.1%에서 지난해 27.4%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 등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실제 스포츠 활동 참여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의 스포츠 참여율이 다소나마 개선돼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스포츠 강사 지원 폭을 더 늘려 정규수업 외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율을 더 높이고,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개최비 외에 대회출전비, 유니폼 등의 지원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2년까지 2,200명 배치 예정

현재 전국 초등학교에 배치돼있는 스포츠 강사의 수는 1300여 명. 정부의 ‘공교육 강화’ 일환으로 그 수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은 한 학교당 1명에 불과한 실정이며, 이마저도 없는 학교도 상당수다.

아직 익숙하지 않고, 호칭도 애매해 아이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 지 헷갈리기 일쑤다. 또 이들의 자격요건이나 처우개선 문제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신동영 강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그마저도 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 12월까지만 계약을 하기 때문에 남은 2개월은 실업자 신세나 다름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김지희 사무관은 “앞으로 정규수업 시수를 늘리는 등 확대 운영을 통해 처우개선은 물론 초등학교 체육교육의 내실을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전국 초등학교에 1,300명을 배치한 데 이어 2012년까지 2,200명의 스포츠강사를 배치할 예정이며, 향후 전국 5,756개 초등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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