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부에서 이어집니다.)
이무렵(1883년), 그는 전구의 내부에 한 장의 금속판을 유리구의 벽을 통해서 봉해진 철사로 받치도록 한 결과, 필라멘트가 직류로 백열되었을 때 이 판과 필라멘트의 양극 사이에 약한 전류가 흐르고, 음극과의 사이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에디슨 효과라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 에디슨은 그 이상 깊이 파고들어 가지는 않았고 또 실용화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이것이 열전자현상으로서 연구되어 라디오 진공관에 응용되었으며, 다시 더욱 놀랄 만한 발명으로까지 발전하였다.  

☆ 그 밖의 발명   
영화의 촬영기와 영사기의 신고안(1891년), 자기 선광기의 발명(1891∼1900) 및 에디슨 전지의 발명(1900∼1910) 등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미국의 참전과 함께 한때 사업을 중단하고 미합중국 해군 고문 위원회 회장이 되어 군사 과학상의 문제에 전념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웨스트오린지의 실험소와 공장으로 돌아가서 정력적인 일을 계속하여,  자신의 발명품의 개량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이 일은 그의 죽음(1931년 10월 18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발명과 연구를 하는데도 발명과 그 실용화를 위해서 마음을 쏟았던 에디슨의 뛰어난 성질로서, 

① 넓고 또한 공정하게 사물을 보는 눈과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는 것, 

② 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이 뛰어났다는 것, 

③ 자신의 일에 대하여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④ 지칠 줄을 모르는 탐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발명이나 발견을 진정으로 다한 사람은, 많건 적건 이와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는데, 에디슨의 경우는 그것이 유달리 특출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이른바 기술자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비범하고 그리고 건강한 상식을 지니고, 그것을 기르기 위하여 널리 사람들과 사귀고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활약했던 시기가, 젊은 미합중국의 눈부신 비약의 시기였다는 것은, 그의 발명적 천재를 발휘시키는 데에 커다란 구실을 했다. 

여기에도, 과학과 기술이 진보적 환경없이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의 증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역사를 바꾼 사람 - (에디슨)

오늘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흘러보내지 않고 한번 더 생각하여 재발견 하는 수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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