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명문 옥스포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위엄있는 차림으로 담배를 물고 식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모자와 담배를 연단에 내려놓았다.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입에서 나올 근사한 축사를 기대 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말라!" (never give up!) 

그는 힘 있는 목소리로 첫 마디를 땠다. 그러고는 다시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청중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처칠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일곱번의 "never give up", 그것이 축사의 전부 였다. 청중은 이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사실 이 박수는 그의 연설보다는 그의 포기를 모르는 인생에 보낸 것이었다.

처칠은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나 말더듬이 학습 장애인으로 학교에서 꼴찌를 했고, 큰 체격과 쾌활한 성격 때문에 건방지고 교만하다는 오해를 받았으며, 초등학교 학적 기록부에는 "희망이 없는 아이" 로 기록되었다. 

중학교 때에는 영어과목에 낙제 점수를 받아 3년이나 유급하였다. 결국 캠브리지 대학이나 옥스포드대학에는 입학할 수 없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사관학교에도 두차례나 낙방했다 들어 갔고,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첫 선거에서도 낙선 하고 기자생활을 하다가 다시 도전해 당선되었다.

노동당에서 21년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 사회 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성취보다는 실패와 패배가 더 많아, 당적을 보수당으로 바꾸어 출마했으나 역시 첫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연설 내용대로 언어 장애를 극복 하고 결코,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되고, 세계대전의 영웅도 되고, 위대한 정치인도 될수 있었다. 

처칠의 가장 큰 위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있었다. 
당시 수상이었던 그는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며 
"피와 흙과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가 국민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했고, 

또 다른 연설에서는 "국기를 내리고 항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대양에서도 싸우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했다.

이처럼 처칠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은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일조해 영웅이 되었다. 

잔인한 현실이지만 삶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삶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한계와의 싸움이며 부단한 도전들과의 싸움이다.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답은 냉엄하다.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것이다." 
누가 가장 강한 자인가? 포기하지않는 자다. 
누가 최후의 승자인가? 포기하지않는 자다. 
누가궁극에 웃는가? 포기하지 않는자다. 
누구의 하늘에 무지개가 뜨는가? 
"포기하지 않는 자다."

오늘은 스무번째되는 독도의 날입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군수 관할 구역으로 명시함으로 써 독도가 우리땅임을 분명히 한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입니다. 오늘도 어는분야든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삶이 되는 금요일인 독도를 생각하는 날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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