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로서 체르니는 스승 베토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특히 1812년 빈에서 그의 연주로 초연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대중과 평단 모두의 찬사 속에 체르니를 베토벤 음악의 탁월한 해석자로 급부상하게 만들었는데,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내향적 성격과 자신의 연주력에 대한 과소평가, 생활고 등을 이유로 연주자의 길을 돌연 단념합니다. 

그때부터 그가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한 작곡가와 교육가로서의 길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이름을 후대에 더 길이 남기게 해줍니다.
교육자로서 체르니 최고의 유산이라 할 피아노 연습곡집은 대부분 그의 제자들, 특히나 프란츠 리스트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리스트 외에도 레셰티츠키, 헬러, 탈베르크 등의 명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들이 스승 체르니의 이 교본을 통해 길러졌습니다. 

체르니 교본들은 19세기 일본에서 널리 보급되어 20세기 우리나라에도 집중 상륙해 교육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그러나 획일적 교재 사용은 차츰 병폐의 하나로 지적되기 시작- 21세기에 이르러는 다양한 교재들이 상황에 맞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대 피아노의 기법이 체르니 시대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고 쉽고 효율적인 교재들이 개발되었기 때문으로, 그러나 같은 19세기 교수들인 바이엘, 하농의 교본 등과 함께 그 교육적 가치는 여전히 변함없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체르니가 사망 1년 전 발표한 작품인 `체르니 30번` 교본은 방대한 분야의 음악을 다작해냈던 작곡가 체르니의 모든 경험이 녹아든 작품집으로, 연습곡집을 넘어선 깊은 예술성의 가치를 또한 담고 있습니다.

'에튀드'로써 진정 예술의 경지에 처음 도달한 작곡가는 쇼팽이었으나, '에튀드' 장르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안에 예술적 추구를 담아낸 원조는 체르니였습니다. 쇼팽은 절친 리스트의 스승이었던 체르니의 집에 자주 방문했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그와 활발히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많은 작곡가들에게 오마주를 받게 된 바흐 <평균율>을 첫 오마주한 작품이 바로 체르니의 <48개의 전주곡과 푸가>이었으며, 바로 그 뒤를 이은 것이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이었던 점도 둘의 음악적 교감을 짐작케 해줍니다. (그러나 쇼팽은 유독 베토벤의 음악은 경멸하다시피 했고, 오직 모차르트와 바흐만을 절대 신봉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체르니는 공식 작품목록이 매겨진 것만 861번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다작을 해낸 작곡가입니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에까지 방대한 장르를 섭렵했으나 대부분의 작품은 '사장' 내지 평가절하 당해왔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평생 많은 교회음악들을 남겼으나 그 역시 대부분의 자료는 온전히 보전되지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피아노의 왕자`라 불린 슈퍼스타 리스트가 말년 가톨릭 성직자로 귀의해 교회음악에 혼을 쏟았던 것 역시, 많은 지점에서 스승의 행적을 따르던 리스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낭만 시대의 거물 음악가/칼럼니스트였던 로베르트 슈만은 선배 체르니를 '상상력과 영감이 결여된 작품을 마구 생산하는 피아노 교사'라 평했고, 타 음악가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던 쇼팽은 '나 못잖은 천재'라 체르니를 평했습니다. 체르니의 음악은 독특한 정서와 함께 여느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평생을 독신이자 내향적 인간으로 살았으나 그의 음악에선 모차르트의 외향적 천진함을 느낄 수 있고, 쇼팽의 차가운 서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정서 역시 강하게 담고 있으나, 정확히는 리스트가 체르니의 정서를 계승했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체르니는 스승 베토벤이 그리했던 것처럼 바흐에 관한 연구를 평생 지속해 많은 성취를 남겼는데, 특히 무수의 바흐 원본 악보들을 복원 및 교정해 출판해냄으로써 후대의 바흐 연구에 큰 기여를 남겼으며, 이는 그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으로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8회 (2019.10.09. 나루아트센터)
- 제6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음악 낭독극 프로젝트 <공명> 음악감독
- 코리아뉴스타임즈(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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