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의 피아노 소품집 <사계> 중 8월 '추수' 연주입니다. 

1875~1876년에 걸쳐 작곡된 사계(Op. 37a)는 각 월별로 작곡된 12곡의 피아노 소품집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 잡지 ‘누벨리스트(Nouvellist)’가 1876년 1월호부터 12월호에 걸쳐 시와 소곡을 게재하고자 그에게 곡을 의뢰하여 창작되었습니다. (영어권에는 ‘The Months’로 번역되기도 하며 ‘사계’는 정확한 번역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고국 러시아의 절기별 공기와 풍경을 담은 이 아름다운 작품집은 그의 대표적 소품으로 꼽히곤 합니다.


그의 음악에서 도드라지는 점은 특유의 음울한 그림자와 격정성이라 할 수 있지만, 피아노 독주곡들에선 반대로 담백함과 간결성을 특징으로 발견하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냉기가 드는 듯한 강한 정서적 에너지, 대중성과 깊이를 완전하게 지닌 멜로디와 화성의 사용은 물론 그 탁월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4세부터 피아노를 쳤고 여느 작곡가들처럼 유아기부터 그 재능을 보였으나, 직업으로서의 음악은 당시 러시아에서도 크나큰 모험이었기에, 대신 법무성의 공직자가 되기를 택합니다. 그러나 평생 떨쳐낼 수 없던 음악에 대한 강한 집착은, 결국 그로 하여금 엘리트 법관의 자리를 버리게 하고- 이는 그의 험난하고 처절한 음악 인생의 시작이자, 후대에 그를 역사적인 음악가로 기억되게 한 중대 선택이 됩니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을 포함하여)음악가에 대한 박한 평가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헨델은 완전한 3류라 전혀 흥미가 없으`며 `베토벤의 중기 작품은 나름 괜찮지만 후기 현악 사중주는 끔찍`하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장대한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도 작곡을 못할까를 비관해 평생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오직 모차르트만을 ‘음악의 예수’라며 숭배했고 바흐를 존경하며, 체코의 드보르자크를 `슬라브족의 명예를 드높인` 동료 작곡가로 극찬했을 뿐입니다.

많은 일화에서 엿보이는 비관적 가치관과 여느 예술가들처럼 그에게도 곁을 동행한 우울증, 일생에 걸친 여성에의 상처들과 동성애 및 소아성애의 그림자는 결국 그의 삶을 드리워- 40대에 치아가 빠지고 흡사 60대 노인의 외모가 되었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절대 기독교 국가였던 러시아 제국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철저히 은폐했으나)당시 주류 사회에서 그의 동성애 행적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에, 결국 그는 동기 법관들의 비밀 재판에 회부되어 콜레라로 가장된 `명예 사형`에 처해집니다.

리스트와 쇼팽 세대 이후 동유럽 최대의 작곡가였던 차이콥스키는 그 슬픔과 암울한 인생이 이면에 담겨 깊은 정서를 갖게 되었고- 볼셰비키 혁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스트라빈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소비에트 정권 수립 후에도 고국에서 활약한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당시 러시아 제국, 현 우크라이나 태생) 등의 위대한 러시안 후배들에게 음악적 유산으로써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선율이 지닌 러시아적 차가움과 처연한 멜로디는, 그의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 발전시켜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8회 (2019.10.09. 나루아트센터)
- 코리아뉴스타임즈 (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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