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35회]  

*속도전으로 주도적 위치 선점이 핵심
*조조, 천리길 오환지역 화살같이 진격
*항복받고 탑돈왕 죽고 백량산 전투 쾌승 

‘참수 행동’이란 독특한 용어가 있다. 미국이 이라크와 코소보 전투에서 보여준 전략이다. 

중국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기에 우리에게는 다소 어색하다. 이 전략의 핵심은 미사일로 적의 중요 기관과 지도자를 저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의 저항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참수 행동의 핵심 요소는 신속성과 정확성이다. 
이 전략은 ‘기선제압’이라는 병법에서 나온 것이다. 기선제압은 무엇인가? 적군보다 빠르게 이동해 예상치 못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반고는 ‘한서 항적전’에서 “먼저 공격하면 제압 할 수 있고, 늦게 공격하면 제압 당한다”라고 말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적군보다 먼저 전쟁터에 들어가 힘들이지 않고 주도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래서 적을 수세로 몰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전투가 조조의 오환정벌이다.

관도 대전에서 조조는 원소 일가를 토벌하고 하북 지방을 평정한다. 그러나 원소의 아들인 원희와 원상 형제가 오환족의 왕 탑돈에게로 도망쳤다. 

조조는 이참에 원씨 형제도 죽이고 오환지역도 정복하기로 한다. 거의 모든 장수가 반대했다. 그러나 모사(謀士)인 곽가만이 조조에게 오환원정을 권했다.

“첫째, "오환은 매우 멀지만, 바로 그래서 그들은 먼 거리만을 믿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허를 찔러 불시에 습격한다면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원소 가족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환의 실력도 얕잡아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이 손을 잡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청주와 기주는 더 이상 우리의 땅이 아닐 것입니다! 유비와 유표가 우리를 공격 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마음 놓고 오환정벌을 하시기 바랍니다!” 

205년 조조는 모사인 곽가의 충고를 받아들여 30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방 정벌에 나섰다. 오환은 북방 요서, 요동, 백량산 지역에 걸쳐 있는 땅이다. 

오환정벌에 나선 조조는 이내 큰 어려움에 빠진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큰 홍수로 해안가의 길이 없어졌다. 노룡(龍)의 변방으로 진격했으나 이 역시 외곽 길은 끊어져 있었다. 

도로가 진흙탕으로 변해 보급품과 병력 이동이 극도로 어려웠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 대로 지형과 날씨가 조조군을 괴롭혔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날씨는 춥고 땅은 얼어붙었으며 황량하여 인적이 없어 연속으로 200리를 행군해도 물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남은 군량미도 거의 없어 조조는 말 수천 필을 죽여 양식으로 삼고 땅을 30여 장 파서 물을 얻어야 했다.” 

오환 왕 탑돈은 조조의 공격을 우습게 생각했다. 지형과 날씨를 극복하고 쳐들어 오기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곽가의 진가가 다시 발휘된다.

“군사의 지휘에는 신속성이 최우선입니다! 현재 우리는 천 리를 달려와 기습하는 것입니다. 모든 물자를 다 가져가면서 이동하면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동한다는 것을 알면 적도 충분한 대비를 할 것입니다! 꼭 필요한 물자만 가지고 가장 신속하게 이동해 상대가 대비 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조조는 곽가의 계책을 받아들여 날랜 병사만을 이끌고 화살같이 진격했다. 백량산에 조조가 진출했다는 소식에 탑돈은 대경실색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조조군이 이동해 올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탑돈은 황급히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 백량산에서 조조와 맞섰다. 그러나 조조 군대를 맞아 싸울 수 있는 준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조조는 진지를 채 구축하지 못한 오환군을 기습했다. 

오환군은 저항도 거의 하지못하고 지리멸렬하면서 후퇴했다. 후퇴 중에 왕인 탑돈은 전사했고, 항복한 오환군이 20여 만 명에 이르렀다. 조조는 백량산 전투에서 쾌승을 거두었다. 

만약에 조조가 지형과 날씨의 어려움으로 진격속도를 늦췄다면 어떻게 됐을까? 곽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원씨 형제의 전력과 오환의 연합전력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설령 승리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조조의 완벽한 승리 뒤에는 ‘참수 행동’과 ‘기선제압’의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기선제압은 '속도전' 입니다.
중국 해방전쟁에서 공산당은 국민당 군을 ‘기선제압’ 했습니다. 공산당 군은 주력을 흑산으로 신속하게 이동시켰지요. 

대병력이 갑자기 전면에 나타나자 국민당 군은 혼비백산 했습니다. 이들을 깨트리기는 손에 쥔 달걀 깨기보다 쉬웠던 것입니다. 호라즘과의 전쟁에서 칭기즈칸은 적이 예상하지 못한 길과 속도로 공격했습니다. 남쪽으로는 톈산 산맥을 넘었고 북쪽으로는 키질쿰 사막을 건넜습니다. 

최악의 날씨 조건을 보이는 곳으로 그렇게 빨리 진격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겁니다. 칭기즈칸이 압승을 거둔 것은 물론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전쟁에서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이 기선제압이었습니다. 예나 전투나 아우 슈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속도로 병력을 이동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유리한 곳을 차지한 후 적과 전투를 벌여 쾌승 했지요. 위대한 승리 뒤에는 기선제압의 전략이 사용됐음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들입니다. 

오늘도 천고마비의 좋은 기후속에서 '기선제압'의 속도전으로 가을을 만끽하며 즐기시는 지혜로운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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