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논평)=경상조은뉴스 편집국장]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지(의장석) 선점'과 '시간차 공격'이 여야 충돌을 최소화했다."(한나라당 원내 관계자)

1일 새벽 노동법 등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김 의장이 한 역할에 대한 여권의 평가다.

지난달 29일 김 의장이 본회의장 의장석을 예산 통과 때까지 지키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무슨 쇼냐"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국회의장의 '농성'은 유례가 없는 일인 데다 예산안 처리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늘 여야 간 쟁탈전의 핵심이었던 의장석을 이틀간 '나 홀로 농성'을 하며 지켜낸 덕분에 최선은 아니었지만, 극단적인 야당의 몸 날리기 등은 피할 수 있었다. 의장석 주변을 국회 경위들이 미리 에워싸면서 야당의 돌파 의욕을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회의 진행도 신중하게 했다. 미디어법 통과 당시의 논란을 의식한 듯, 원하는 만큼 반대토론을 허용했고, 토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때쯤 표결절차를 밟았다.

결국 김 의장의 '허허실실' 전략이 준(準)예산 편성사태까지 예상됐던 '4대강 예산'과 노동법을 그나마 새해가 밝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게 했다.

김 의장은 "자신들은 룰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회의장에게 막말을 하는 행태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 내 폭력을 의장석에서는 이제 몰아냈는데, 올해는 국회 밖으로 쫓아내는 게 마지막 남은 책무"라고 말했다.

예산부수법안을 2차례에 나눠 직권상정하고, 노동법을 막판에 추가한 것도 야당의 전선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김 의장은 1일 기자와 만나 "노동법을 막판에 상정한 것은 그만큼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원안대로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지금 고치는 게 맞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의원들까지 처리해야 한다고 권유해 결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이 이처럼 갈등하며 야당이 최후의 저지법안이라고 생각했던 노동법을 1차 직권상정(세입법안 9개) 때 포함시키지 않자, 야당은 예산안 통과를 극렬하게 저지하지는 않았다.


2차 직권상정 때 세출법안 12개와 함께 노동법이 포함됐지만, 그때는 새벽인 데다 야당의 저항력까지 떨어져 큰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노동법 개정안' 새해 첫날 새벽 野 퇴장 속 통과
국회는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1시 8분에 본회의를 열어 한나라당과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이 합의했던 노동법 개정안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시켰다.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 등 175명이 표결에 참여해 173명이 찬성했다. 하지만 표결 직전 토론자로 나선 일부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막말이 섞이면서 여야 간에 고성이 오갔고,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있었다.

이날 김 의장은 본회의가 열리자마자 노동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했고, 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야당 의원 5명의 반대토론, 한나라당 이두아 의원의 찬성토론을 거쳐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분위기가 격해지기 시작한 것은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과 한나라당 이두아 의원에 이어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단상에 오르면서부터였다. 김 의원은 "국회의장은 무당", "당신(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 용역깡패"라고 했고, 오열하기까지 했다.

이어 민노당 권영길 의원의 발언 때 다소 진정됐던 '열기'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 차례가 되자 최고조에 달했다. 홍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사기꾼이 돼 버렸다"라며 발언을 마친 뒤 연단에서 김 의장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삿대질을 했다.

김 의장은 "당신, 후회할 말 하지 마라"고 맞받아쳤는데,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홍 의원을 단상에서 밀어내려고 하자 이를 본 민주당 최재성·이찬열 의원 등이 달려와 엉키면서 충돌할 뻔했다.


야당 의원들은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발언을 끝으로 토론종결이 선언되자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김형오씨, 똑바로 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에 화가 난 김 의장도 "교과위 위원장 맞느냐. 이종걸씨"라고 되받아치기도 했다.

야당이 퇴장하자 표결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의장은 노동법 외에 지방교부세법 등 2차로 직권상정한 예산부수법안 12개도 순차적으로 처리했다.

노동법 개정이 1일 가능했던 것은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데 이견(異見)이 없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1일 "노동법 통과의 절반은 추 위원장이 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추미애'라는 완충지대가 없었으면 노동법 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작년 6월 추 위원장은 비정규직법 개정을 틀어막아 노동계의 요구를 철저하게 대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노동법 개정에 한나라당과 합의함으로써 소속 정당과 자기를 지지했던 민주노총이 '공적(公敵)'으로 모는 상황을 감수했다.

추 위원장은 특히 환노위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법사위로 회부해 김형오 국회의장의 부담도 덜어줬다. "소관 상임위에서 정상적 토론과 절차를 밟았는데 법사위에서 야당이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직권상정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추 위원장의 모습에 대해 작년 7월 미디어법 파동 때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시도하기 직전, 여론 독과점 의혹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대안을 제시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추 위원장이 박 전 대표를 모델로 삼아 중도(中道)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추 위원장은 환노위에서 노동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격전'을 치른 탓인지 '스트레스와 어깨 통증'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본회의 처리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야 지도부는 29·30일 본회의에서 현재 계류 중인 100여건의 안건들을 처리한 뒤 여야 의원 모두 본회의장을 점거하지 않고 퇴장키로 합의한 상태였다

12월.31일에 대한 합의가 없어 한나라당의 단독처리 시도는 이날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연일 의원총회를 열어 소속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고, 민주당도 강행처리 저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 때문에 31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심야까지 물리적 충돌을 거듭할 것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4대강 예산 저지를 위해 노력한 흔적은 남기되 예산안을 볼모로 잡았다는 정치적 부담은 지기 싫은' 이중적 입장 때문에 일단 세게 버티다 못 이기는 척 길을 터주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럴 경우, 옥신각신 끝에 한나라당의 처리 시도는 31일 밤 12시를 넘겨 1월 1일 새벽, 즉 '12월 32일'에 김형오 국회의장의 솔로몬 지혜에 의하여 단독 처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문법 등 4대 쟁점법을 놓고 여야가 격돌했던 2004년 12월 31일에도 결국 밤 12시를 넘겨 새해 1월 1일 새벽 2시까지 본회의가 이어졌었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