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62년 기적의 역사…세계와 함께
[기획특집 ‘서울 G20 정상회의’] ①서울 개최에 담긴 뜻
2010-10-19 최철수 기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G20 의장국으로 발전하기까지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의 발전사를 되돌아보고,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줄 G20 정상회의의 기대효과 등을 10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실패와 좌절의 50년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근대화를 맞은 우리나라는 일제의 철권, 무력통치 앞에 35년을 식민지로 보내야 했다. 일제는 식민지배기간 한글말살, 민족분열 등 교활한 정책으로 민족독립국가 건설의 자립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냈다. 광복 후 한반도가 통일된 민족독립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배경에는 외세 이외에도 민족분열과 민족성 말살, 자립기반 약탈 등 일제의 악랄했던 식민정책이 큰 원인이 됐던 것이다.
외세와 이념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단국가로 출발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직후 제한 전력을 실시하고, ‘보릿고개’라는 춘궁기면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가난한 나라였다. 전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는 50달러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야 연명하는 지구상의 최빈국이었다.
아직 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았던 신생 대한민국에게 6.25전쟁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1950년 6.25 전쟁은 걸음마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의 국가기반 마저 없앴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잿더미에서 시작해야 했다.
50달러에서 3만 달러 시대로
전쟁 직후, 미국과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며 국가 안보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대한민국은 1960년대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을 통한 외자획득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다. 1968년 포항제철 완공과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9년 고리 원자력발전소 가동 등 사회간접자본이 갖춰져 갔고, 경공업에 이어 전자, 자동차, 조선, 정유 등 중화학공업 기반이 갖춰지면서 대한민국은 농업국가에서 신흥공업국가로 변신했다.
1950년 5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82년 1500달러를 넘어섰고, 1988년 5000달러, 1996년 1만 달러에 이어 2007년 2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올해에는 구매력지수 국민총생산(실제 소비 수준을 고려한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돌입하며, 경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섰다. 자동차가 귀했던 도로에는 교통체증을 걱정해야 할 만큼 차가 많아졌고, 컴퓨터, 휴대전화가 생활 필수품이 될 정도로 물질적 성장을 이뤘다.
대한민국 기업이 만든 휴대폰, TV, 자동차, 조선 등은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1등 제품이다. 삼성, LG, 현대는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세계적 기업이다.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국민들은 다이어트와 웰빙(참살이) 열풍에 음식쓰레기를 고민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
우리나라 민주화의 출발점은 4.19 혁명이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에 항거하던 학생과 시민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를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대통령은 하야 후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다.
1960~80년대 군부독재 치하에도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식지 않았다.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염원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하던 전두환 정권은 결국 국민의 뜻에 굴복하고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1987년 여야 합의로 개헌이 이뤄지고,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쌓아가며 대한민국은 선진 민주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국난 극복의 전통
우리 민족은 근대 이전까지 세계 최고의 문화를 꽃피운 집단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길목에서 세계사적 조류에 눈을 뜨지 못하고, 문화적 후진국이었던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해야 했다.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서도 독립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 민족은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또 한번 민족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국적기가 소련의 전투기에 격추되는 등 크고 작은 안보의 위협을 겪기도 했다.
경제발전도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 위기를 겪었고, 1980년에도 국내 정치의 불안과 제2차 오일쇼크로 마이너스 성장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위기 때마다 정부와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연평균 10% 안팎의 고성장 신화를 이룩하며,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며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대한민국은 또다시 1997년 ‘단군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IMF외환위기 사태를 맞았지만 전 국민 금모으기 운동과 노사정 화합, 기업 구조조정 등 단합된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IMF위기를 극복한 나라’가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발전을 이룩하며 G20의 중심국가로 성장, 전근대시대의 저력을 뛰어넘는 민족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G20중심국가 대한민국
선진국의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은 오늘날 G20(서방 선진 8개국+신흥공업국)의 중심국가로 3주 후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G20창설 회원국에 등록한 대한민국은 G20회의를 통해 세계 경제위기 극복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국제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국제 사회와 G20정상들은 G20회의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적극적 기여와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2010년 G20정상회의 개최국으로 대한민국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 G20회의에서 다음달 11∼12일 G20회의 서울 개최를 확정했다.
G20의장국 대한민국의 향후 과제는 선진화와 분단체제의 극복이다.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 복지, 사회, 교육, 국민의식 등 각 분야에서 선진국에 걸맞는 국격을 갖춰야 한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선진화란 나라의 꿈과 이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이사장은 “선진화라고 해서 특정국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감성, 역사, 문화에 맞는 창조적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선진화의 토대”라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의 분단체제는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3대 세습 체제의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고립, 폐쇄정책을 중단하고,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 민족이 번영하는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