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하얼빈 현장 르포④]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哈爾濱, Harbin]역. "탕, 탕, 탕" 3발의 총탄에 국적 1호인 ‘조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을사늑약의 한을 안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 의병을 일으킨 청년의 총탄이 69살 한국 침략 원흉의 가슴을 꿰뚫었다. 청년은 러시아 헌병대에 붙잡혀 쓰러지면서도 가슴에 성호를 긋고 외쳤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크게 외쳤다. “까레야 우라! 까레야 우라! 까레야 우라!” 러시아어로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뜻한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이다. 광역매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하얼빈 현지 모습을 르포기사로 지면에 담는다.<편집자 주>

야경이 아름다운 중앙대가 거리, 역시 名不虛傳!
러시아풍의 건축물에 휘황찬란한 조명 어우러져

중국사회에서 빈부격차는 상상 그 이상이다. 중국에서 부자는 웬만한 한국사회에서의 상류층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쉽게 표현이 안 될 정도다. 헤이룽장 성(黑龍江省)의 성도(省都)인 하얼빈 역시 빈부격차가 가져오는 사회적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수륙 교통의 요충지로, 둥베이(東北) 지구 북부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인 하얼빈은 한국보다 2배나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 또 세계적 곡창지대 가운데 하나며, 산림이 울창하고, 석탄의 매장량은 아직까지 그 규모가 다 파악되지 않을 만큼 차고 넘친다.

게다가 석유까지 쏟아지고 있으니 지하자원이 부족한 한국과 비교한다면 축복받은 도시다.

그러나 이 축복받은 도시가 주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 일부 상류층 사람들에게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하얼빈 시가지와 불과 1~2시간 떨어진 외곽지역 대다수 사람들은 한국의 보릿고개시대보다 더 궁핍한 생활을 한다.

움막집에다 난방시설은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 화장실은 통나무 몇 개 박아서 영역표시만 돼 있어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때문에 하얼빈 시가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단순 노동자라할지라도 이들보다는 생활수준이 낫다. 월평균 500원 안팎의 임금을 받는 현지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11월 16일 오전 7시 30분쯤(현지시간) 하얼빈 시가지에서 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식당을 찾았다.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8개 남짓한 테이블이 꽉 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이곳에는 메뉴를 고를 선택권이 없다. 고기만두와 야채만두를 가리는 정도다.

쌀과 조를 조합한 죽과 만두, 그리고 몇 가지 야채가 전부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야채 가운데 김치가 있었다는 게 반갑고 고마웠다.

3원으로 한 끼 채우는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
식사시간 여부가 빈부 가늠하는 또 하나의 척도

이들이 이곳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은 3원(한화 500원).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얼빈 시가지에서 가장 즐겨 찾는 식당이다. 때문에 하얼빈 시가지에는 이와 유사한 식당이 많이 눈에 띈다. 간판과 규모만 달랐지 주 메뉴는 한결같다.

중국사회 상류층 사람들의 평균 식사시간이 2시간 정도라면, 이곳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빠르게 식사시간을 마친다. 식사시간의 활용도 여부가 빈부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척도다.

이날 저녁. 현지 가이드를 맡은 구어 지아씨 가족들에게 또 초청을 받았다. 가는 길에 중국의 명동거리로 불리는 중앙대가에 다시 들렀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곳을 꼭 다시 한 번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러시아풍의 건축물이 늘어 선 거리에 각양각색의 휘황찬란한 조명이 어우러진 중앙대가의 야경은 명불허전(名不虛傳)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도 이만한 도시의 거리야경을 찾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울산과 비교하면 어떠냐는 구어 지아씨의 질문에 애써 난처한 표정을 감추면 그냥 눈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중앙대가는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거리엔 인파들이 넘쳐났다. 백화점 매장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겼다. 하얼빈의 일반적인 물가는 한국보다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날만큼 싸다.

하지만 이곳 백화점 내에 진열된 상품들은 오히려 한국보다 물가가 비쌌다. 웬만한 가방 하나가 몇 천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하얼빈의 월평균 임금이 800원(한화 15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선택받은 상류사회만 이 축복된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같은 하얼빈 하늘아래 있으면서도 아침 한 끼를 3원으로 채우는 일반 노동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중앙대가의 황홀한 야경이 결코 부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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