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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4부] 위나라의 인물들
[삼국지/14부] 위나라의 인물들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7.20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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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59회]

"머리는 용, 꼬리는 뱀" '조조의 후손들'

조조가 죽자 그의 맏아들 조비가 '위' 왕을 계승 했다. 조비는 '위' 왕이 된 지 일년도 채 안 되어 '후한'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 부터 선양(禪讓)의 형식으로 제위를 물려받아 '위' 황제가 되었다.  이에 '한중' 왕 유비와 '오주' 손권도 차례로 황제에 올랐다.

'위' 황제 조비는 찬탈자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으나 재위기간 중 대과(大過)는 없었다. 그는 원소의 둘째 며느리였다가 자신과 결혼한 견 부인과의 사이에 태자 조예를 두고 있었다.

재위 7년 만에 병을 얻은 그는 죽기 전에 조진과 조휴, 사마의와 진군 네 중신을 불러 조예를 잘 보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네 중신중에 가장 눈에띄는 인물은 사마의였다.  일찍이 조조는 ‘사마의가 이리처럼 고개를 뒤로 틀수 있는 낭고상(狼顧相) 이어서 반역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절대로 병권을 맡기지 말라.’고 했었다. 조비는 재위기간 동안 사마의에게 군사 일을 맡기지 않았다.

조예가 즉위하자, 사마의가 서량을 지키겠다고 나섰고, 조예는 별 생각 없이 허락했다. 이때 북벌을 계획하고 있던 '촉'의 제갈량은 사마의를 껄끄럽게 생각하여 사마의가 반역을 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위주' 조예는 사마의를 불러들여 병권을 뺏어버렸다.

제갈량이 국경을 침범해 오자, '위주' 조예는 하후무와 조진을 차례로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막게 했으나 모두 패퇴하였다. 어쩔 수 없이 조예는 사마의를 다시 복권, 총사령관으로 기용하여 제갈량을 막게 했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수차례에 걸친 침공을 모두 막아내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자 드디어 전쟁도 끝이 났다.

전란이 끝나자, '위주' 조예는 사치와 향락, 주색에 빠져들었다. 연일 토목공사를 벌여 많은 궁궐과 전각을 새로 지었다. 조예는 방탕한 생활 끝에 서른여섯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는 죽으면서 사마의에게 여덟 살짜리 태자 조방을 탁고(託孤) 했다. 사마의는 황실의 친족 조상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해 낙향했으나,  쿠데타를 일으켜 조상 형제를 주살하고 다시 실권을 잡았다.

이제 사마의의 권세를 넘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마의가 노환으로 죽자, 맏아들 사마사가 대장군이 되어 실권자의 지위를 이어 받았다. 이때 '오'와 '촉'의 침입이 있었으나 사마사와 사마소 형제가 모두 막아내니 두 형제의 권세는 더욱 탄탄해졌다.

'위주' 조방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마사가 궁궐에 들어오는 것만 봐도 불안에 떨었다. 결국 조방은 장 황후의 아버지인 장즙에게 사마사를 죽이라는 밀조를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사마사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위주' 조방은 사마사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용서를 빌었으나,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장즙과 장 황후는 사마사의 지시로 죽임을 당한다.

새로이 황제로 옹립된 조모는 사마사에게 먼저 절을 하고 천자의 자리에 오를 정도였으니 사실상 이때 '위'는 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 무렵 사마사는 눈병이 생겨 몸져 누웠다.  사마사가 눈병이 덧나서 죽자, 아우인 사마소가 대장군의 지위를 이어 받았다.

'위주' 조모는 이 기회에 사마소의 권한을 약화시켜 보려고 사마소에게 계속 허창에 머무르면서 '오'의 침입에 대비하라고 했다.

그러나 허수아비 황제의 명을 들을 사마소가 아니었다. 사마소가 군사를 이끌고 낙양가에 진을 치자, 깜짝 놀란 위주 조모는 사마소의 벼슬을 더 높여주었다.

이때 '위'의 무장 제갈탄이 사마소의 전횡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오' 에서도 원군이 출동하고 '촉'의 대장군 강유도 지원군을 보냈으나 사마소가 이들을 모두 막아내었다.

'위주' 조모는 강청에 못 이겨 대장군 사마소에게 구석(九錫)의 특전을 내렸다. 분함을 참지 못한 조모는 어림군을 이끌고 사마소에게 대항 했다가 도리어 피살되고 만다.

조환이 사마소에 의해 '위' 황제로 옹립되었다.  조비의 손자뻘이었다. 그리고 사마소가 보낸 두 장수 등애와 종회가 '촉'을 멸망시켰다.

그때서야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했는지 사마소는 자신을 '진' 왕(晋王)으로 봉해 줄 것을 요구했고,  '위' 황제 조환은 그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진' 왕 사마소는 맏아들 사마염을 세자로 세워놓고 얼마 안 있어 중풍으로 죽었다.

'위' 황제 조환은 '진' 왕 사마염이 노골적으로 제위를 탐내는 데다, 사마염의 신하들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위압적으로 선양을 강요하니 결국 제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265년) 45년 전에 할아버지 조비가 행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조환이 신하에게 당한 것이다.

조조는 죽기 전에, 말(馬) 세 마리가 한 구유에서 여물을 먹는 꿈을 자주 꾸었다. 조조는 그 꿈이 늘 마음에 걸렸으나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마(馬) 씨 중에 자신에게 반기를 든 마등은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 마초와 조카 마대는 유비에게로 갔으니 큰 위협이 될 수가 없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실체가 밝혀진다. 구유[槽]는 조(曹) 씨를 뜻하므로 그 꿈은 즉 사마(司馬) 씨  3부자(三父子)가 조씨의 여물을 먹는 것, 즉 찬탈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천하의 조조도 그 꿈이 그런 의미인 줄은 어디 상상이나 했으랴!

삼국지 최고의 영웅 조조가 세운 '위'는 그의 증손자 대에서 사마의의 손자한테 빼앗기고 만다. 폐주 조환은 진류왕으로 강등되어 도성에서 쫓겨난다. 만일 조비나 조예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오래 살았더라면 신하에게 제위를 뺏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조비가 신하로서 '한'의 제위를 빼앗은 것도, 그의 손자인 조환이 다시 신하인 사마염에게 '위'의 제위를 빼앗긴 것도 모두 엄연한 역사인 것을...

연일 용광로를 곁에 두고 생활하는 듯한 가마솥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마음만은 시원하게 보내시는 금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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