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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9부] 촉나라의 인물들
[삼국지/9부] 촉나라의 인물들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7.17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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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54회]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명재상 🌱‘제갈량’🌱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전반부는 조조, 후반부는 제갈량이 실질적인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지의 주인공은 세 사람, 즉 '유비'와 '조조', 그리고 '제갈량' 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삼국지 후반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갈량'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제갈량(諸葛亮)!" 자는 공명(孔明),
삼국지연의에 의해 거의 신격화된 사람으로, '주' 문왕 서백후를 도운 강태공(여상), '한' 고조 유방을 도운 장자방(장량)과 함께 오천 년 중국사에서 3대 명 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찍 부모를 여윈 제갈량 형제들은 숙부와 함께 '양양'의 '융중'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 거기서 주경야독하면서 가슴속의 이상을 키워가고 있다가, 형 제갈근은 '오' 나라로 건너가 손권의 참모가 되었고, 제갈량은 유비를 섬기는 '촉' 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안 조카 제갈탄은 '위' 나라의 장수로 있으면서 후일 사마소의 찬탈기도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당시 ‘오'는 호랑이를 얻고 '촉'은 용을 얻었는데,  '위'는 개를 얻었다.’는 말이 회자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제갈량이 세상에 나온 것은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제갈량이 주로 경세(經世)를 겨냥한 학문을 익혀왔고, 당대의 재사들과 교유(交遊)를 통해 천하대세를 가늠 할 식견과 안목을 기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춘추시대의 명 재상 관중과 명장 악의로 비유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또한 결혼을 통하여 명문가와 결속을 맺고 신분 상승을 꾀한 것도 그가 초야에 묻혀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리라.

제갈량의 장인은 그곳의 호족인 명사 황승언,  장모는 '형주' 제일의 명문 채씨 집안의 딸로서 형주자사 유표의 부인과 자매였다.

제갈량은 분명히 세상에 나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 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미 확고한 터전과 많은 인재를 보유한 조조와 손권보다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극대화 할수 있는 유비를 주군으로 택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를 설명하면서 '서촉'에서 기업(基業) 하여 '오'와 힘을 합쳐 '위'를 공략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약관 27세의 제갈량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부터,  한 때 천하의 7할을 석권했던 조조가 참담한 좌절을 맛보게 됨은 물론, 삼국지의 주역 자리도 그에게 빼앗기고 만다.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이 조조의 백만 대군을 괴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명장 주유의 공이 크지만, 그것도 제갈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갈량은 기도로 동남풍을 불게 하기도 하고,  '공성(空城)'에서 거문고 하나로 적의 대군을 물리치기도 하고, 또 축지법을 써서 추격하는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의 행적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부풀려진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제갈량이 왔다가 울고 가겠다.’는 말이 있다.  지략이 뛰어난 제갈량이 상대방의 지략에 놀라 자신의 무능을 한탄 하겠다는 뜻으로, 지혜와 책략이 아주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제갈량이 지략의 대명사임을 반증하는 속담이다.

제갈량의 기량을
정치가와 군략가의 측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먼저,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자. 
어리석은 '촉'주 유선을 하늘처럼 받들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명 재상으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국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똑똑한 2인자가 아둔하기 짝이 없는 1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흠으로는, 승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크고 작은 일 모두에 관여했던 점을 드는 사람이 많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믿고 맡길 만한 인재가 부족했다는 점과 상벌이 엄격하고 공평무사 했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군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자. 
'촉'의 5~6배에 달하는 '위'의 국력을 감안해 보면,  앉아서 망하느니 보다는 싸워서 활로를 찾는 전략을 택한 것은 분명 현명한 판단이다.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6차에 걸쳐 공세를 취한 사실만으로도 그가 뛰어난 군략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적장 사마의가 시종일관 수비에 치중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첫 북벌 때, 용장 위연이 제안한, 지름길로 장안을 치는 기습책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안전 위주의 지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한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전쟁에는 도박도 필요한 법이다.

'위' 와의 전투에서 제갈량은 여러 차례 신출귀몰하는 지략을 펼치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는 못한다. 분골쇄신하던 제갈량, 드디어 오장원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만다.

그의 나이 54세, 병명은 과로로 인한 폐결핵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가 죽자, 그와 함께 중원을 다툰 '위'의 명장 사마의는 이런 말을 남긴다.
“공명은 참으로 천하의 기재이다!”

제갈량이 삼국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필두로, 그의 행보를 따라 수어지교(水魚之交), 만두(饅頭), 칠종칠금(七縱七擒), 출사표(出師表), 읍참마속(泣斬馬謖) 등 수많은 고사성어가 만들어 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된, 요즘말로 뉴스메이커였던 셈이다.

그가 죽은 후에 보니 그의 재산은 ‘뽕나무 8백 그루와 전답 15경(頃)’이 전부였다고 한다. 청빈한 공직자로서도 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촉'장 마속의 막하에 있던 진식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마속이 제갈량에 의해 목이 베어질 때 진식도 함께 요참(腰斬)을 당했다. 그런 악연이 있음을 감안하면서 진수가 쓴 제갈량에 대한 인물평을 보자.

‘해마다 군사를 이끌고 나갔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으니 장수로서는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승상으로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백성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알았으니 실로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가히 관중과 소하에 견줄 만했다!’

다음에 중국에 가게 되면 사천성 '성도'에 있는 무후사(武侯祠)를 꼭 한번 찾아가 제갈량 전(殿)에 참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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