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인터넷조은뉴스는 국가홍보 & 경제문화 월간지 “공감코리아”를 함께 발행합니다.
[삼국지/5부] 촉나라의 인물들
[삼국지/5부] 촉나라의 인물들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7.11 0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51회]

"신(神)이 된 삼국지 최고의 무장" 🌱‘관우’🌱

삼국지에 나오는 무수한 영웅호걸 중에서 현세에 가장 추앙받고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도덕군자 같은 유비일까?
임기응변이 뛰어난 조조일까?
아니면 수성의 명군 손권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 재주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제갈량일까? 

아니다! 9척 신장에 수염길이 2척, 잘 익은 대춧빛 얼굴에 누에 눈썹과 봉황의 눈을 가진 장수!
한 손에 청룡언월도를 쥐고 적토마를 타고 무수한 전장을 누빈 삼국지 최고의 무장, 전장에서도 ‘춘추(春秋)’를 손에서 놓지 않은 운장(雲長) 관우(關羽) 이다.

관우가 중앙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자. 동탁 군의 맹장 화웅에 맞선 제후 연합군의 장수들이 차례로 패퇴하자 연합군의 사기는 뚝 떨어졌다. 

이때, 공손찬 진영의 마궁수로 있던 관우가 출전을 자원했다. 조조가 출전을 허락하면서, 따끈한 술 한 잔을 내어주었다. 관우가 말했다. 
“술은 갔다 와서 마시겠습니다!”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 나간 관우, 술이 채 식기도 전에 화웅의 목을 들고 왔다. 관우가 조조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조조는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적토마를 주는 등 극진히 환대했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의 거처를 알자마자, 조조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원소 진영의 일급장수 안량과 문추를 차례로 목을 베어 조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바로 유비를 찾아간다.

"光談過五關斬六將(광담과오관참육장) 
不談走麥城(부담주맥성)"
관우의 공과(功過)를 압축한 글이다.

‘과오관참육장’은 관우가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조의 다섯 관문을 돌파하면서 그를 저지하는 여섯 장수를 베어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광담’은 신나게 얘기하라는 뜻이다. 

‘주맥성’은 관우가 '오'의 여몽에게 기습을 당하여 형주성을 빼앗기고 오백여 명의 패잔병들과 함께 맥성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부담’은 창피하니까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관우의 굴욕’ 이라고나 할까.

관우는 의리와 충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닌 반면, 정에 약한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화용도로 도망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관우는 충분히 조조를 잡을 수 있었는데도 전에 입었던 은혜를 생각해서 그냥 놓아준다. 

또, 관우는 지나친 자부심으로 인해 상대방을 업신 여기는 치명적인 결점도 지니고 있었다. '오주' 손권이 사돈을 맺자며 딸을 달라고 했을 때,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겠는가?’ 하며 거절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상대는 동맹국의 황제이지 않은가.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오' 나라가 형주를 차지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선수(先手)를 친 제갈량 덕분에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다. '오주' 손권이 유비에게 계속 '형주' 반환을 요구하자, 유비는 ‘서촉'을 얻으면 형주를 돌려주겠다.’고 약조를 한다.

'서촉'을 차지하고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형주'를 돌려주지 않던 유비는 마침내 '형주'의 세 군을 '오'에 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형주' 지역 사령관인 관우가 반환을 거부한다. 이것은 내부적으로는 하극상이고 외교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결례이다. '오'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지 않은가.

어느 날, 관우는 '오'의 노숙으로 부터 초청장을 받는데, 함정이 있는 것 같다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을 것이다.’며 배 한 척에 호위병 몇 명만 데리고 강을 건너간다. 

노숙이 회담장 주위에 도부수(刀斧手)를 숨겨놓고 계속 술을 권하면서 '형주'반환을 요구하지만, 관우는 ‘그런 중요한 문제를 이런 술자리에서 의논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소!’ 하며 넉살좋게 받아 넘긴다.

회합이 끝날 때 까지 관우에게서 빈틈을 찾지 못한 노숙은 관우를 그냥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단도부회(單刀赴會)’라고 알려진 이 에피소드는 관우의 용맹을 한껏 돋보이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촉오' 동맹의 전략적 의미를 간과하여 '오'를 적으로 만들어버린 관우의 치명적인 실책이 드러나 있다. 

'오'군의 사령관인 여몽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육손이 임명되자, 관우는 ‘손권이 식견이 짧아 저런 애송이를 임명했구나!’ 하면서 '오' 쪽에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위'의 번성을 공략하다가 후방을 급습한 '오'의 여몽에게 무참하게 패하고 만다.

관우는 싸울 때 마다 승리했지만 이때 딱 한 번 졌다. 그러나 그것이 '촉'을 멸망으로 이끄는 단초가 되는 치명타가 될 줄이야! '형주'를 잃은 '촉'은 그때부터 '서천'의 분지 안에 갇히고 말았지 않았는가.

결국 '오'군에 포위된 관우는 '맥성'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사로 잡히고 마는데, 그의 의기와 무예를 아깝게 생각한 손권이 함께 일하자고 회유를 한다. 

그러나 관우는 ‘옥은 깰 수 있으나 그 흰빛을 바꿀 수 없고, 대나무는 태울 수 있으나 그 곧음을 꺾을 수 없소이다!’ 하며 죽기를 자청하고 결국 참수된다. 

후일 '후주' 유선이 '위'에 항복하자, 관이 등 관우의 후손들은 관우에게 참수된 방덕의 아들 방회에게 잡혀가서 한 명도 남김없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관우의 가계는 멸문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관우의 67대손 한 사람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文)의 최고봉인 공자는 문왕(文王)으로 불리고, 그와 나란히 무왕(武王)의 지위에 있던 관우는 관제(關帝) 관성대제(關聖大帝)로 제(帝)가 되었다가 다시 신(神)이 되어 이제는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때 명장(明將) 진린이 부상을 당하자, 요양을 하기 위해 남대문 밖에다 관우의 사당을 설치했는데, 이를 ‘남묘(南廟)’라 불렀고, 이듬해에는 명 황제가 보내온 현판과 경비로 종로구 숭인동에 ‘동묘(東廟)’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관우가 무장으로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렇듯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무용이나 지략보다는 추상같은 의로움과 주군을 향한 뜨거운 충의를 더 높이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행복한 수요일 맞이하시길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단체명 : 한국언론사연합회
  • 고유번호 : 122-82-81046
  • 제호 : 인터넷조은뉴스
  • 법인명: ㈜뉴스인미디어그룹
  • 사업자등록번호 : 290-81-49123
  • Since 2000.12.
  • 주소 : (07238)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6길 18, 1103호(여의도동, 오성빌딩)
  • TEL : 02-725-8114
  • FAX : 02-725-8115
  • 기사제보 : desk@egn.kr
  • 등록번호 : 서울 아 01209
  • 등록일자 : 2005-09-30
  • 최초발행일자 : 2003-08-05
  • 발행·편집인 : 이관민
  • 기사배열책임자 : 오재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관민
  • 인터넷조은뉴스 저작권은 조은뉴스네트워크와 인터넷조은뉴스 자매지에 있으므로 콘텐츠(영상,기사,사진)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e조은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esk@egn.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