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략가들을 손꼽자면 이승만과 박정희이다. 지금 내가 그 두 분을 전략가로 손꼽는 것은 그들의 인격이나 도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가경영 민족경영에 대한 그 분들의 전략적 능력을 말하는 것일 따름이다. 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하여 공(功)과 과(過)를 함께 평가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어른의 과(過)만 지적하고 공(功)은 무시하여서는 또 다른 과오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승만에 대하여 공(功)이 7이요 과(過)가 3이라 평가한다. 공의 3가지, 과의 3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그 어른의 전략적 능력을 지적하고 싶다. 이승만의 공의 첫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체제의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이다. 둘째는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게 한 공이다.

셋째는 6.25 전쟁이 시작된 1년 만에 휴전(休戰)이 제기되었을 때에 고집스레 반대하여 그 고집으로 한미동맹(韓美同盟)을 성사시켜 그 기반 위에 오늘의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일으킬 수 있는 기반을 세운 공이다. 그러나 그 어른께는 안타깝게도 과(過) 역시 크다. 과의 첫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친일파를 등용 이용한 과이다.

이승만 박사의 과(過)의 둘째는 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도 독재 정치를 자행한 과(過)이다.
셋째는 보수 우파 정권 안에 기생하는 부정부패를 색출 제거하지 못한 과이다. 이런 공과 과를 전제로 하고 그의 전략적 능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승만은 20대 후반에 조선의 한 외교관으로 미국으로 파송된 후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학사를 받고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래서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에서 뛰어나 미국과 일본이 친밀한 관계일 적에 이미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리고 조선 독립의 방략(方略)을 외교(外交)에 두었다.

일제가 강점하던 시기에 조선독립을 위하여 생을 바쳤던 지사들 중에 독립투쟁에의 방략(方略)이 다양하였다. 김구 선생은 무력항쟁, 안창호는 건전한 인격과 국민교육, 조만식은 산업으로, 김교신은 성서적 신앙으로 독립을 성취코져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일본군 700만의 위력을 알고 있었던지라 국제 정세를 잘 이용하는 외교로 독립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외교적 기반을 다지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였다. 이런 점부터가 이승만 박사의 전략적 감각이 탁월하였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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