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11회]

(어제 2부에서 이어집니다.)
여덟번째는 조직력에 있었다.
그의 대장군 밑에는 사단과 연대, 대대, 중대 등을 편성 하였는데 그와 같은 군대의 조직편성은 먼훗날 나폴레옹이 등장하기 전에는 없던 형태의 조직이라고 한다.

칭기즈칸은 뛰어난 조직가로도 유명한데, '어떤 조직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칭기즈칸은 <나라를 함께 세우고 고생한 자들> 
즉 건국공신 88명을 천호장(千戶長)에 임명했다. 

그 중에는 두세개의 천호를 가진 자들도 있었으므로 전체 95개의 천호가 편성되고 이것이 몽골이라는 국가의 사회조직이 되었다.

천호라고 하면 천명의 戰士를 제공 할 수 있는 단위이고,  그 밑에 백호, 또 십호가 있어서 사회조직 자체가 군대조직과 동일하였다. 따라서 국가 사회조직이든,  군사조직이든 동일하였고,  칭기즈칸을 정점으로 완전히 재편한 것이다.

칭기즈칸은 종종 적군을 숫자로 압도하며 일렬 횡대로 진격하여 눈깜짝 할 새에 포위하는 전법을 썼는데 이는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전법이었다.

이러한 그의 조직력은 엄격한 군율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도 군율을 어기면 엄격하게 벌을 주었다.

그의 몽골군이 승리를 거두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기동력이었는데 그 키 작기로 유명한 몽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던 백성들이 자기 몸에 딱 맞는 칼을 쥐고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몽골군의 전령은 10마리의 말을 끌고 달리며 교대로 말을 갈아 타며 2.000리를 내리 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부산과 평양까지의 거리쯤 될까?) 식량은 어떻게 하느냐?

그들의 말 안장 밑에는 말린 고기가 깔려 있는데 사방 60센티 가량의 방석같은 고기가 소 두마리 분량이라고 한다. 물만 부으면 완전한 우주식량이다.

적어도 병사 한명이 몇 달치 식량을 깔고 달리는 것이다. 몽골의 영광 속에 더욱 놀라운 것은 역참제도이다. 수도 카라코쿰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공용도로를 개설하였고 일정 거리마다 역을 세웠는데 그의 손자 오고타이칸이 즉위 할 무렵에는 역전을 위한 말이 20만필, 역사만도  1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운영으로 상인이 다니게 되었고 로마교황의 사자가 다녔으며 마르코폴로 부자도 이 길로 몽골에 이르게 된다. 강력한 지휘명령 체계로 군율이 잡힌 조직력과 기동력! 이것이 칭기즈칸 리더쉽의 핵심적 성공비결이다.

아홉번째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교역의 장려였다.
그가 대칸에 오르자 엄청난 제보가 들어왔다. 서방의 이란이나, 아라비아의 산물이 받쳐 졌는데 이런 먼 나라의 진기한 물건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위그르인들에 의해서 였다. 

대부분의 위그르인들은 이슬람교도들 이었다. 
일찍이 그들의 사라센 제국은 8, 9세기의 영광을 뒤로하고 쇠퇴해 진 상태이지만 그들의 왕성한 교역활동은 여전하였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국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그르인들의 교역활동을 돌봐 주었다. 한편 그들도 칭기즈칸의 무력에 의해 교역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세국가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이교도들을 적으로 보는 반면, 실사구시적인 정신으로 이교도를 통하여 국익을 증가하였고,  그 같은 개방정책으로 선진화된 문명과 각종 과학기술이 교류되었다.

또한 칭기즈칸의 사후에 호레이즘의 수도 사마르칸드를 점령하였을 때 종전의 섬태멸진 전법에 의해 대부분의 주민을 몰살시켰는데 기술을 가진 자들 즉 공예가나 직인들 3만명은 죽이지 않고 몽고 본토로 후송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동방에 이르는 길목에는 각종 소국이 자리 잡아 통행하기가 곤란하였고, 중간 중간의 험한 길에는 온갖 길에 도적들이 들끓어 동서교류가 곤란하였으나 원대에 이르러 동서왕래가 활발해 졌으니 세계 인류사의 과학문명의 발전을 3세기 가량 앞당겼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 비밀은 훌륭한 그의 참모에 있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인재를 두어 각종 자문에 응하게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야율초재(耶律楚材)이다. 그는 칭기즈칸이 두 번째로 금을 정벌 할 때 중도의 성을 지키고 있던 26세의 늠름한 청년이었다.

그는 금에 의해 멸망한 거란족 요나라의 귀족이었는데 유불선 3교에 통달하고 모든 학문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 자를 불러 칸은 말했다.

'요와 금은 원수지간이다! 내가 금을 무찔러 그대의 원수를 갚았노라!' 그러자 초재는 하나의 두려움도 없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선조도, 나의 부친도 모두 금의 조정에 봉사하였다!

한번 신하가 된 이상에는 어찌 두 마음을 품고 주군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나이까?' 이 대답이 마음에 들어 그를 항상 곁에 두고 정치 상담역으로 삼았다.
(내일은 4부로 이어집니다.)

6월을 맞이합니다. 오늘도 희망에 찬 새로운 달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고, 활기차게 시작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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