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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 23부 현대자동차 정몽구회장(1/2)
리더쉽 23부 현대자동차 정몽구회장(1/2)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5.15 0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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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294회]

정몽구(鄭夢九, 1938년 3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이다.
학력 1959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1964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명예박사학위
1989년 코네티컷 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2003년 고려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15년 한양대학교 명예공학 박사 경력
1970년 : 현대건설 입사
1974년 ~ 1987년 :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1977년 ~ 1987년 :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1985년 ~ 1997년 : 대한양궁협회 회장

가족 배우자: 이정화,
딸: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아들: 정의선,
아버지: 정주영,
어머니: 변중석,
동생: 정몽근, 몽우, 몽헌, 몽준, 몽윤, 몽일
수상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
2012년 2011 글로벌 최고경영인 상
경력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회장

물론 ‘불법과 탈법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재를 하든 방임(放任)을 하든 실적만 좋다면 대부분 정당화 되고 결과적으로 리더십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면 리더십이고 뭐고 갖다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리더십과는 다른 대목이다. 그래서 ‘투명경영’ 이란 말은 있어도 ‘민주경영’ 이란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어느 기자가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생전에 현대그룹을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느닷없는 사장단 인사였다고 한다. 그것도 기사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불쑥 내놓는 헤비급 인사로 몇 번이나 소동을 벌였단다.

요즘 현대자동차 그룹에서도 간간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에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몇 의외의 인물이 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기 시즌이 아니라 오너의 뜻에 따라 수시로 단행되는 ‘번개 인사’는 현대가(家) 리더십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그룹회장은 그렇듯 가부장적 경영을 해 오면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집에 은둔해 있는 오너도 아니고,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면서 현장 경영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도 아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다그친다. 얼마전부터 중국 베이징에서는  ‘현대속도(現代速度)’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차가 막차로 중국시장에 진입했지만 금방 기존의 메이저 업체를 제치고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현대차는 2004년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41만 8.615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다. 기아차 판매분을 합치면 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005년 1분기 성과는 더 좋다. 현대차는  2004년 세계시장에서 228만대를 팔아 판매증가율 16%를 기록했다. 이는도요타,  혼다의 10%나 GM의 4%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취재기자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롯데호텔 세면장에서,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 갑판 위에서, 신라호텔 미니룸에서. 그때 본 정 회장은 상당한 눌변(訥辯)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각종 국내외 행사를 많이 치러서인지 달변은 아니라 해도 분명하고 명쾌한 의사표시를 한다. 당초 정 회장의 눌변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현대차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는 과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 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 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오래전에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 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 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수출 기록을 달성하는 등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 ‘전략가형 CEO’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 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 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 (내일은 2부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한 날인 스승의날 입니다. 누구나 스승님이 계실 것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보시는 날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리더쉽 23부 현대자동차 정몽구회장🖒
(1/2) [제 2.294회]

정몽구(鄭夢九, 1938년 3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이다.
학력 1959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1964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명예박사학위
1989년 코네티컷 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2003년 고려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15년 한양대학교 명예공학 박사 경력
1970년 : 현대건설 입사
1974년 ~ 1987년 :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1977년 ~ 1987년 :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1985년 ~ 1997년 : 대한양궁협회 회장

가족 배우자: 이정화,
딸: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아들: 정의선,
아버지: 정주영,
어머니: 변중석,
동생: 정몽근, 몽우, 몽헌, 몽준, 몽윤, 몽일
수상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
2012년 2011 글로벌 최고경영인 상
경력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회장

물론 ‘불법과 탈법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재를 하든 방임(放任)을 하든 실적만 좋다면 대부분 정당화 되고 결과적으로 리더십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면 리더십이고 뭐고 갖다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리더십과는 다른 대목이다. 그래서 ‘투명경영’ 이란 말은 있어도 ‘민주경영’ 이란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어느 기자가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생전에 현대그룹을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느닷없는 사장단 인사였다고 한다. 그것도 기사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불쑥 내놓는 헤비급 인사로 몇 번이나 소동을 벌였단다.

요즘 현대자동차 그룹에서도 간간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에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몇 의외의 인물이 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기 시즌이 아니라 오너의 뜻에 따라 수시로 단행되는 ‘번개 인사’는 현대가(家) 리더십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그룹회장은 그렇듯 가부장적 경영을 해 오면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집에 은둔해 있는 오너도 아니고,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면서 현장 경영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도 아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다그친다. 얼마전부터 중국 베이징에서는  ‘현대속도(現代速度)’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차가 막차로 중국시장에 진입했지만 금방 기존의 메이저 업체를 제치고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현대차는 2004년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41만 8.615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다. 기아차 판매분을 합치면 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005년 1분기 성과는 더 좋다. 현대차는  2004년 세계시장에서 228만대를 팔아 판매증가율 16%를 기록했다. 이는도요타,  혼다의 10%나 GM의 4%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취재기자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롯데호텔 세면장에서,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 갑판 위에서, 신라호텔 미니룸에서. 그때 본 정 회장은 상당한 눌변(訥辯)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각종 국내외 행사를 많이 치러서인지 달변은 아니라 해도 분명하고 명쾌한 의사표시를 한다. 당초 정 회장의 눌변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현대차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는 과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 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 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오래전에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 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 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수출 기록을 달성하는 등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 ‘전략가형 CEO’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 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 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 (내일은 2부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한 날인 스승의날 입니다. 누구나 스승님이 계실 것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보시는 날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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