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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성공비결 (1)]
지금까지 1990년 월드컵부터 한국축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어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단편적인 사항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의 큰 줄기는 2002년의 한국축구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하자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칼럼은 서론이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견해가 달랐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필자는 히딩크를 통해 우리축구가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공에는 물론 몇 가지 환경적 요인이 존재합니다. 우선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입니다.

팬들의 성원과 축구협회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에 상응하는 선수들의 정신력, 심판 판정 등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어드밴티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히딩크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히딩크 개인적인 요인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 할 것 같습니다.

우선 그의 성공요인 첫 번째는 리더십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먼저 그는 노회한 심리전의 대가였습니다.

가삼현 축구협회 국제국장이 영입을 위해 히딩크를 처음 만났을 때(아마 2000년  1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의 이야기입니다.

가 국장의 의사를 전해들은 히딩크는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유도 없이 한국 선수들에게 여기에 있는 이 나무에 올라 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가 국장이 "아마 그럴 것" 이라고 대답하자 히딩크는 그때서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이미 한국팀의 한계를 명확히 보았던 히딩크로선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예상대로 그는 선수 장악에 쉽게 성공했습니다. 부임 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그는 이를 통해 선수들의 경쟁심을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여론도 중반기를 거치며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 역시 2002년  3월27일 터키전(0-0무승부)을 보기 전까지 히딩크 축구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월드컵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었죠. 그리고 히딩크 축구는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도 안 남기고 가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극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2002년의 한국축구는 이전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히딩크의 훈련과정을 분석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히딩크의 훈련은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임 초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패스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의 볼을 가로챈 뒤 찬스가 아닌 상황에서도 무리한 패스를 시도, 공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드리블과 패스, 불필요한 볼 소유가 많다는 의미지요.

히딩크는 초기 3개월여간 패스의 강약 조절법과 볼트래핑 훈련을 중점 실시했습니다.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4월부터 시작된 2단계 훈련에서는 선수들에게 포지션별 임무를 명확히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포지션별로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된 움직임과 수비임무(이전의 한국축구에서 가장 안됐던 부분이죠),  즉 팀플레이를 주문했습니다.  이러한 히딩크의 의도가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 첫 경기가 아까 이야기한 터키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웨이트훈련 단계에 들어갑니다. 각 개인 별로 약한 부위를 근력으로 보완하는 훈련입니다. 그해 9월의 4단계 훈련부터 파워트레이닝을 도입했습니다. 

평가전 바로 전날에도 지속적인 파워트레이닝을 실시,  평가전마저도 체력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평가전 결과가 나빴을 것입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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