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남양만(南陽灣) 간척지(干拓地)에서 벼농사를 짓고 가축을 먹이며 농사를 짓는 동안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농민들이 각자 독립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낭비가 심한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원을 합하고 노동력을 합하고 정보와 기술을 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는 공동체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첫 공동체 마을로 정한 곳이 서해안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봉화산(峰火山)이었다.
봉화산 주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로 봉화산에 첫 번째 두레마을 공동체를 세울 수 있게 해 달라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7년 만에 산 주인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저는 봉화산 주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집안에 필요한 돈이 있어 봉화산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서울 복부인(福婦人)들만 찾아오고 타지(他地) 사람들만 사려해서 목사님이 이 산을 맡아 주십사 하여 찾아 왔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7년간의 우리들의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산주와 무조건 계약을 맺었다.
그때 시세로 4천만 원이었다. 온 교인들이 헌금을 하여 계약금인 4백만 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머지 3600만원을 2달 안에 갚기로 계약을 맺고는 이를 위해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약 만기 2일이 남은 날까지 돈을 구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계약금만 날리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는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오후 되는 시간에 40대 초반의 신사 한 분이 찾아와 자신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교포라 소개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을 정리하고 그 십일조를 보람 있는 일에 쓰고 싶은데 목사님 하시는 일에 헌금하러 왔습니다 하며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 열어 보았더니 3600만원 액면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 액수의 돈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헌금한 것이다.

그래서 남양만 봉화산에 첫 두레마을이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기도하며 계획한 바대로 3가지 목표를 분명히 하는 공동체 마을을 세우게 되었다.

1) 두레마을은 예수님이 이장(里長)이시다.
2) 두레마을에는 사랑의 법만 있다.
3) 두레마을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쓴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