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77회]

🌷꽃다발 선물이 의미하는 것🌷 (제 2.177회)

1917년 찰리 채플린은 대스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달러 박스로 통했다. 그런데 채플린은 돌연 15세의 엑스트라 여배우 밀드레드 해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채플린의 원래 쾌활한 사람이었지만 반면 고독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아름답고 젊은 여성에게 쉽게 매료되는 경우가 많았다. 밀드레드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녀였고, 채플린은 첫눈에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채플린은 꽃다발과 기다림으로 그녀에게 프로포즈했다. 열렬히 사랑한다는 표시로 매일 꽃다발을 보냈으며, 사랑의 진지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에 차를 세우고 몇 시간이나 끈기 있게 기다렸다.

채플린의 사랑에 감동한 밀드레드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식이 행해졌다. 찰리 채플린 외에도 꽃다발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성은 수없이 많다.

언제부터 사랑의 표시로 꽃다발 선물이 유행하게 되었을까? 예로부터 서양에서 꽃은 '처녀성'을 상징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의 여주인공으로 하여 금 순결이나 정조 같은 처녀성을 나타내게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꽃'으로 비유했다.

오필리어, 코델리아 같은 순결한 처녀들에게 꽃의 의미를 부여하여 순결함을 강조하였다. 이 '처녀성'은 '순결한 여성'으로, 다시 '사랑'으로 그 의미가 변하게 되었다.

'처녀성 유린'을 '디플라워'(deflower:꽃을 따다)라고 하는 것도 이 상징성 때문이다. 이것이 기원이 되어 서양에서 꽃을 주거나 받으면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꽃을 준다'는 것을 '사랑과 정열을 바친다'는 마음의 외면적 고백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고대부터 수많은 꽃말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꽃을 선물하는 행위의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해 꽃들에게 아름다운 전설과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풍습이 보편화되면서 더불어 기뻐하고 더불어 슬퍼한다는 뜻의 표시를 꽃으로 하기에 이르렀고,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갈 때나 애경사가 있을 때 꽃다발을 들고 가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은 근래 들어 널리 유행한 일로,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는 무명 시절인 1843년 11월의 어느 날 밤, 흑백 혼혈의 연극 배우에게 노파를 통해 꽃다발에 명함을 끼워 선물함으로써 사랑을 얻는데 성공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19세기 초엽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꽃집에는 꽃다발용 꽃이 아니라 화분이 주종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꽃집에는 갖가지 꽃과 화분이 진열돼 있을 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꽃다발용 꽃은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꽃다발을 선물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화원에서 꽃을 꺾거나 또는 사람을 시켜 들꽃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들꽃을 꺾어다 파는 '꽃 파는 소녀'가 나타났으며, 이때부터 선물용 꽃다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꽃집이 대량으로 생겼다.

이런 유행은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파리 시내 곳곳에 노천 꽃집이 개설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연인 또는 가족을 위한 선물로, 혹은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고 팔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도 사랑과 정열이 공존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시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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