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는 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청계천 빈민촌에서 빈민선교를 시작한 1971년 10월 3일이 두레마을 공동체 운동의 시작인 셈이다. 그때 내 나이 30세에 장로회신학대학 2학년 학생이던 때이다. 그 시절 생각하기를 이왕지사 목회자가 되기로 들어선 이상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가서 사역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청계천 빈민촌을 찾은 것이다.

그해 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이자 주일이었다. 우리 역사에 개천절이 어떤 날인가? 나라와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전 세계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 날을 일컬어 하늘이 열린 날, 곧 개천절이라 이름 지은 나라는 우리 겨레 밖에 없다. 이는 우리 겨레의 남다른 영성(靈性)을 일러 주는 조짐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뜻을 헤아려 빈민촌에서 교회가 시작되는 날을 일부러 그날을 잡아 시작하였다. 1971년 10월 3일이었다. 교회를 시작할 때에 선교활동의 방향을 분명히 잡았다. "주민봉사와 지역사회 개발을 통한 복음선교"가 기본 방향이었다. 한국 교회들은 대체로 교인들로 교회를 섬기는 데에 중심을 둔다. 교인들도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요, 바른 신앙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 교회가 주민을, 마을을, 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뜻을 살려 교회 이름 자체를 활빈교회(活貧敎會)라 지었다. 교회가 주민을 섬기고, 마을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 마을 주민들이 영육 간에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뜻을 담은 교회 이름이었다. 교회를 창립하던 날 설교에서 이런 뜻을 확실히 설교에 담아 전했다.

그날 택한 본문성경은 이사야서 61장 1절~4절의 말씀으로 "활빈교회를 창립하는 뜻과 목표"가 제목이었다. 설교 중에 활빈교회 창립정신 5가지를 선포하였다. 그 이후 4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마다 교회 창립일이 되면 다음의 다섯 가지 창립정신을 되풀이 전하곤 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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