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남자는
어느 후미진 골목 선술집에서

단풍 곱게 물든
어느 해 가을 산기슭에

흘렸던 장미의
눈물을 기억하며

마음의
지도를 꺼내놓고
추억을 더듬어 가지만

가날픈 신음소리만
귓가에 맴돌 뿐

회상할수록
장미의 모습은
흐릿하게 멀어져간다.

홀로 술 마시는
가을 남자는
그래서 더 쓸쓸하다.

가을여자가
가을남자가
가을이면 앓는 병病...

나는 소년시절부터 가을이면 가슴앓이를 하였다. 가을날 하늘이 맑고 푸르면 그래서 슬펐고 가을비가 내리면 더 더욱 슬프곤 하였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가을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거리를 걷곤 하였다. 그래서 시인 도종환이 쓴 <가을 남자 가을 여자>를 진작에 마음속에 담고 가을을 보내곤 하였다.

올 해 들어 가을 앓이를 더 심하게 하는듯하다. 77세 나이 탓일까? 아니면 뒤숭숭한 세월 탓일까? 그도 아니면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는 탓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아끼던 사람들로부터 배반을 당한 상처 탓일까?

이럴 땐 기도하여야지 하면서도 기도가 얼른 나오지 않는다. 기도 드려야 할 때 인줄 알면서도 기도드리지 못하고 가을 앓이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예수님은 한심하게 보실까? 아니면 이해해 주실까? 아니면 기다려 주실까?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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