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1년 은퇴하면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다.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역시 공동체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1971년 청계천 빈민촌에서 시작된 두레공동체운동이 어언 5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두레마을 공동체운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며 몇 단계를 거쳐 왔다.

첫째 1970년대는 청계천 빈민촌을 중심으로 빈민들의 자활(自活)을 추구한 빈민운동시대였다. 둘째 1980년대는 남양만 간척지로 집단 귀농(歸農)하여 지낸 농업공동체운동 시대였다. 셋째 1990년대는 땅과 사람을 살리자고 두레마을 공동체를 펼쳤던 시대였다. 넷째 2000년대는 북한, 중국, 미국, 일본 등의 한인사회가 있는 지역에 두레마을을 개척하고 네트워킹하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운동의 시대였다. 다섯째 2011년 이래 동두천 왕방산 골짜기 7만평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희망’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령화와 저출산시대에 농업과 숲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생태자연마을을 세우는 시대를 열고 있다.

동두천 산속에 들어온지 6년 여에 이제는 100여 명의 식구가 한 마을에 이런저런 모습으로 함께 지내며 ‘3세대 공감생태마을’ 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이제 오는 11월 4일에 두레자연마을의 준공식이 열리게 된다. 두레자연마을을 시작하면서 간디가 구상하였던 "스와라지, 자치마을 공화국"을 생각한다.

동두천 골짜기로 들어오기까지의 40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글자 그대로 좌충우돌의 삶을 살아 왔다. 한때는 빨갱이 좌파 목사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고 또 한때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좌파와 우파 사이를 넘나들며 지내온 세월이다. 그런 중에서도 나의 한결같은 관심은 공동체였다.

공동체를 새에 비유하면 몸통이다. 새는 몸통 좌우의 날개로 앞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란 새의 몸통은 왜소하고 좌우 날개는 켜져 있다. 그래서 항상 기우뚱 기우뚱 날아간다. 이제 80을 앞 둔 나이에 이른즉 늘 마음의 중심에 자리잡은 말씀이 있다.

"너희는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신명기 5장 32절)

나 자신에게는 물론 두레마을에도 대한민국에도 꼭 필요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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