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청렴 사연·수기 공모전] ① 일반부문 대상

청탁금지법의 시행 등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으로 바뀐 삶의 이야기 등 청렴과 관련된 국민들의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한 공모전 우수작을 정책브리핑에서 공유한다. 과연 우리는 생활 속 청렴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청렴의 의미를 국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 수상자 중에는 공익신고자가 포함돼 있어 개인 실명 등은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1981년도 전방지역 사단 예하연대에서 근무하다가 사단으로 전입해 온 지 1개월 정도 되던 대위(군수장교, 본부중대장 겸임)로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때쯤 보급창고와 취사장(식당)지역을 순찰하다가 대대장님 숙소 근무병(당번병, 지금은 이와 같은 보직이 없음)이 쇼핑백 같은 비닐봉지에 내용물을 잔뜩 담아 취사장 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서 “김 일병? 그게 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예, 대대장님 관사에 갖고 가는 부식들입니다”라며 거리낌 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답변을 하였다.

대충 확인을 해보니 생닭 2마리, 마늘, 양파, 고춧가루, 생닭을 튀긴 통닭 1/2마리 등이 담겨있었다.(사실 대대장님의 가족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고 계시고 대대장님만 혼자서 관사에서 생활하셨다).

그리하여 당번병에게 취사장으로 함께 가자고 하면서 보급 담당 부사관(당시 하사관) 역시 취사장으로 오도록 하여 “잘 들어라. 앞으로 대대장님이 드실 부식은 일반시장에서 직접 구매를 하시든가, 아니면 대대장님께 당번병이 돈을 달라고 말씀을 드려서 대신 구매를 하도록 하라. 당번병은 대대장님께 이 내용을 내가 지시했었다고 말씀드리고 보급선임하사는 이 시간 이후부터 대대장님 관사 뿐 아니라 어느 간부라도 사적으로 부대의 부식 등을 외부로 불법 반출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강하게 지시를 하였다.

물론 이런 부분은 아주 애매하고 직속상관께 반기를 드는 것처럼 비춰졌겠으나(지금은 거의 일소되었겠지만) 그 당시 극히 일부 간부들이 취사장의 부식들을 거리낌 없이 반출하는 행위와 그것을 묵인하는 군부대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직책이 아니었기에 방관을 하면서 그 일에 미처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한 것은 나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반성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간 개근상을 받았고 어떠한 상황이라도 남을 잘못되게 한다든가 부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를 하는 성격이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바르게 생활하는 의식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묵과할 수는 없었다.

이와 더불어, 나로서는 병사들이 정량으로 먹어야 할 급식을 극히 일부 부대 지휘관 등 부대 간부들이 암묵적으로 별도로 챙겨가는 것이 평소에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행위였기에 이런저런 망설임 없이 현장에서 그러한 조치를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부대 간부들은 하나같이 제가(군수장교) 잘못했다고 하면서 우려 섞인 뒷담화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사안을 내가 대대장님께 직접 보고 드려야 하나, 어쩌나?’하면서 내심 갈등은 했었지만 직접적으로 보고를 드리면 오히려 대대장님께서 민망해하실 것으로 생각되어 오늘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아실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보고를 생략했다.

이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대대장께 참모장교인 제가 반기를 들기 위해서 그러한 조치를 한 것이 아니고, 당시에 이러한 사례가 자연스럽게 만연되어 있으며 부패라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는 군대 문화를, 우리 부대에서부터라도 변화를 갖게 하는데 미력하나마 계기를 만들겠다는 순진한 의지를 가지고 비록 내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이슈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참모, 중대장들이 참여하는 일일회의가 대대장실에서 개최되었다. 일상적인 조회 형식이었기에 회의는 특별한 것 없이 잘 마쳤는데, 대대장께서 “군수장교는 잠깐 보자”며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예견했었던 것이기에 담담하게 대대장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대대장께서는 곧바로 “군수장교는 대대장을 도울 생각이 없는 놈인데다, 보직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다른 부대로 떠나가라”고 언성을 높이며 말씀하셨다. 무엇으로 인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갈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에서 내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것도 잘못된 상황 대처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대장께서 그러한 행위가 잘못되었다거나 미안해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과격하게 나를 질책하시니 이는 나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대대장님. 왜 제가 이 부대를 떠나야 합니까? 대대장님이 먼저 떠나셔야죠? 잘못한 사람은 대대장님이시니까요”라고 답변하였다. 하급자이고 참모장교인 내가 직속상관의 면전에서 이러한 발언을 당돌하게 한 것에 대해 나 자신도 매우 놀랐고 ‘이 발언이 법적으로 상관 모욕죄가 되지 않는지?’ 생각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폭탄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대대장께서는 엄청 당황하는 모습으로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나가라”라고 하시면서 그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갔던 참모, 중대장, 주임원사 등은 대대장실 부속실에서 대기하면서 문틈으로 새어 나온 얘기들과 분위기를 통해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뒤 약 일주일 정도를 대대장님과 아무런 소통을 하지 않은 채 침묵의 시간으로 보냈다. 그러던 중, 부대 내에서 불행하게도 안전사고로 인한 병사 1명의 사망사건이 발생하였고 모두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확인을 해보니 대대장으로부터 휘하 간부에 이르기까지 사건 처리와 관련하여 장례절차, 유족들과의 관계, 부대 사기 유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자가 없는 상태였으며 내가 직무상 이 부분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이라면 이상하지만, 내가 이곳으로 전입해오기 전 연대급 예하부대에서 10여건 정도의 사건·사례(사망 사고 등)들을 접하고 이를 수습하는 일들을 직접 경험을 하였기에 전혀 당황치 않고 대대장님께 “대대장님께서 얼마 동안 불편하셨던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하기로 하고, 이 사건을 제가 주도적으로 다른 간부들과 잘 협조해서 원만하게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린 후, 일사불란하게 장례 절차까지 완벽하게 조치를 하였다.

이 사건을 종결하고 마무리 사기를 북돋우려고 부대원들에게 대대장께서 훈시하는 시간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동료 중대장의 어린 아들이 관사지역에서 놀다가 부식들을 이동판매하는 민간화물차량에 치여서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사고소식을 접하였다. 이 또한 엄청난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내 일처럼 모든 것을 순조롭게 처리하였고 이후에 부대를 정상화하기까지 2주일여 동안 분주히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렇게 사고 수습을 마무리한 다음 날, 이를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보신 대대장께서는 내게 다가와서 다정스럽게 “군수장교, 자네 오늘 나하고 사단회관에서 같이 목욕을 하고 식사도 하자”라고 하셨다.

대대장께서 어떤 마음으로 함께 목욕을 하고 식사까지 하자고 하시는지가 못내 궁금했었다. 목욕탕에서 어느 정도 각자의 목욕을 마친 상태에서 온탕으로 들어가자 대대장께서는 갑자기 눈시울을 적시며 저의 두 손을 잡고서는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군수장교, 사소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목숨까지 잃게 된 이번 안전사고 건을 확인하고서 아주 특별히 나 자신에게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면목이 없다. 중대장 아들 건에 대해서도 자네가 정말 지혜롭게 수습을 잘해줘서 정말 수고 많았고, 마음속으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또한 특별히 진심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참 침묵을 하시다가) 지난번 식당의 부식 반출과 관련해서 내가 자네에게 폭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자 한다.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었고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솔선토록 하겠다.

자네가 나에게 대대장이 먼저 나가시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많은 반성을 하면서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동안 그러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느껴왔는데 내 생각이 짧았고 말도 안 되는 짓이었으며 범죄 행위였다는 것을 자네를 통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어 더욱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요지로 떨리는 모습으로 말씀을 하셨다.

이에 “제가 너무 당돌하게 버릇없이 말씀을 드려서 대대장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죄송합니다. 대대장님께 반감을 가진 것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믿어주시고, 앞으로 부대 업무를 더욱 열심히 잘해서 대대장님께 칭찬받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드렸다.

식사하면서도 목욕탕에서의 말씀을 되풀이 하면서 “군수장교의 마음과 능력 등 여러 부분을 충분히 알게 되었고, 대대장이 진정으로 반성을 한다.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쿨하게 정리하셨다.

나는 드러내 놓고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다행스럽고 마음이 뛸 듯이 기뻤으며 대대장께서 부대 부식을 관사로 갖고 간 행위가 엄청난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에 대해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다음 날 아침 조회 시에 전 간부들에게 “부대부식을 대대장도 그동안 별생각 없이 불법적으로 이용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위였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것이고 여러분들 역시 그러한 일이 없도록 유념해 주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나로 인해 부대 부식 반출 사건이 노출되어 부대의 모든 간부들이 부대의 분위기가 안 좋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대대장님의 말씀 덕에 오히려 더 좋은 분위기가 되었고 부대 분위기를 우려한 간부들에게 나의 진의를 알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 건으로 인해 더 밝고 활기찬 부대가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수년 전에 40여 년 만에 시골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었다. 20여 명과 함께 식사하는 도중에 거의 낯이 설은 여자 동창이 나를 향해서 “너 ○○이 맞지? 너, 잘 만났다. 네가 부반장 하던 4학년 때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옥수수죽을 내가 한 그릇을 먹고 나서도 배가 고파 두 번째 또 다시 먹으려고 줄을 섰다가 너에게 발각되어, 내가 얼마나 창피했었는지 너 기억하니?”라고 뜬금없이 공격 아닌 공격을 해서 “나 전혀 기억이 없는데?”라고 대답을 하자, 여러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당시 ○○이는 바른생활이었지?”라고 하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나는 그러한 의식들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http://blog.daum.net/lovea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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