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하얼빈 현장 르포①]

역주행 차량에 도로나 거리는 쓰레기장 방불
개인주의 만연해 공중도덕 개념 자체가 전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哈爾濱, Harbin]역. "탕, 탕, 탕" 3발의 총탄에 국적 1호인 ‘조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을사늑약의 한을 안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 의병을 일으킨 청년의 총탄이 69살 한국 침략 원흉의 가슴을 꿰뚫었다. 청년은 러시아 헌병대에 붙잡혀 쓰러지면서도 가슴에 성호를 긋고 외쳤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크게 외쳤다. “까레야 우라! 까레야 우라! 까레야 우라!” 러시아어로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뜻한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하얼빈 현지 모습을 르포기사로 지면에 담는다.<편집자 주>

“니 하오!, 니 하오!” 지난 13일 오후 5시께(현지시간) 하얼빈 공항은 마중 나온 인파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저마다 반가운 표정으로 그간의 안부를 묻는데 여념이 없었다.

공항 입구에는 참았던 담배를 꺼내 저마다 입에 물어대는 또 다른 인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남녀공안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이 이채로워 카메라 셔터를 눌러봤지만, 바로 제지되고 말았다. 몇 컷 안 되는 사진까지도 삭제 당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공항을 빠져나오자, 이국땅의 정취를 만끽하기도 전에 제법 거센 눈발에 온몸을 움츠려야 했다. 11월 초순이지만 한국과는 달리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였다.

택시에 몸을 맡긴 채 하얼빈 시가지로 향하는데, 눈길에서도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력을 내고 있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대부분의 차들이 비슷비슷한 속력으로 차를 몰아댔고, 함께 동승한 조선족 통역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눈길에 다소 익숙한 택시기사와 마찬가지로 하얼빈에선 승객의 안전보다는 택시기사들의 생계를 먼저 이해해주는 배려아닌 배려가 몸에 밴 듯 했다.

공항에서 시가지로 들어오기까지 40여분가량 소요됐는데, 신호등도 거의 없다. 시가지에서는 먼저 밀어붙이는 차량만 빠져나간다. 한국에서처럼 줄을 서서 자기차례를 기다리다가는 종일 제자리걸음이다.

사람이 지나가도 차량이 피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차가 오면 사람이 알아서 몸을 피해야한다. 심지어 4차선 도로에서 역주행하는 차들도 간간히 눈에 들어왔지만, 대다수의 운전자들은 별무신경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곳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게 함께한 조선족 통역의 설명이다.

사실 중국의 국민성은 상당히 이기적인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도덕에 대한 개념이 크게 없다. 60~70년대 한국보다 뒤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택시나 버스 등 공공이 이용하는 차량은 굴러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노후한 차량에다, 여기저기 버려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보면 당장이라도 폐차시켜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급아파트나 공공주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기 집에만 신경을 쓰지 복도나 공공이 이용하는 장소는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고, 도로와 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북경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정부가 자국민들의 공중의식 변화에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그들의 국민성은 여전히 개인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석유가 나오고, 산림이 울창하며, 한국영토의 두 배에 이르는 대도시지만, 하얼빈 시가지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한국인이라는 게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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