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충만하여 오히려 텅빈 절대 고독과 현묘한 음울..

-김미경의 靈媒花 展에 부쳐
金進 中 (한국문협 민조시분과 회장・『월간 순국』편집인)모든 색에는 영성이 포함되어 있다. ‘해바라기의 비명’처럼 인간은 가끔씩 미치고 싶을 때가 있다.미쳐버리고 싶은 사람은 여기 영매화(靈媒花)를 보라.
김미경은 한국 미술계의 사생아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적전자도 아니다.그는 곡진한 한살이의 간난신고를 다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붓과 씨름하다가 마침내 꽃무당이 된 것이다. 그는 첨부터 ‘영매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우주에 충만하여 오히려 텅빈 절대 고독과 현묘한 음울을 무거운 색채와 뭉크화같은 몽환적 터치를 사용하여 이시대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 의식에 접근을 꾀하고 있다.모든 예술가는 수도자 또는 구도자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것, 모든 물상의 사이에서 번뇌의 강을 건너야만 비로소 피안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누구나 스스로의 영혼속에는 간절한 기원이 있는 법,그것이 일신의 안위라든지, 대국적 이상에 따르는 이념이든지,날마다 만나고 떠나보내야 하는 인연의 허물이든지 간에.어느 날 나는 인간적인 번민과 또 하나의 갈등하는 현실을 넘어승화된 혼백의 독백과 소리없이 준열하는 사자후를 들을 수 있었다.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이땅의 사람들이 저마다 살옷의 탈을 쓰고 태어나 아비가 아비를 낳고 또 그아비가 아비를 낳게 되는 섭리일진대, 해 아래 어느 뉘 있어 제살붙이의 평강과 번성을 원하지 않으랴!그러나 시대적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진미단심(眞美丹心)의 의인(義人)들이 있었나니 받들며 이름하여 순국선열(殉國先烈)들인지라. 겉으로는 그처럼 대쪽같고 그렇게 모질한 마음도 그 안에는 백세유방(百歲流芳) 천추불후(千秋不朽)할 만대지성(萬代至誠)이 거하였으니. 그 청정한 노래가 새벽 석간수처럼 자라 괴고 있었나니,하여 이번 순국선열의 얼과 넋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한결 더 귀해 보이는 것이다.

김미경은 이시대 21세기릉 건너가는 평범한 무녀인 듯하나 그분(?)이 강림하면 침식도 잊은 채, 열 손가락 뭉텅이가 닳아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양잿물 속이든 중금속덩어리든 가리지않고 주물러댄다. 심지어는 군 입대하는 아들의 머리카락까지도 소재로 뒤범벅해서 영성을 신내림하는 ‘영매화’를 작업한다.
그렇다고 그녀도 마치 자위하듯 그렇게 시시때때로 작업을 하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그림이 일상적인 제 정신으로는 누구도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몰입의 무아경에 닿지 않고서는 안 되는 작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어도 한국 화단에서는 자생적 화려한 싱글, 무소속의 자연인이다. 어느 화가, 어느 교수에게도 그림을 지도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누구의 아류도 아니고 제자도 아닐뿐더러 계열도 아닌 독창적 세계에서 홀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정신을 그림을 매개로 한 물질과 바꾸기 싫은 그녀의 고집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을 순국선열유족회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에 기증의사를 밝혔다.
왜 이땅의 평자들은 서양의 비구상이나 뭉크화 등은 갖가지 의미를 부여해 가며 해체하고 토막치면서도 우리의 영혼을 담금질하는 ‘영매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가?
그점은 하나같이 길들여져 있는 기존 화단의 기능인적인 습성(같은 소재, 같은 화법 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인이나 작가나 일생일편(一生一篇), 심지어 탐석하는 수석인들까지도 일생일석(一生一石)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든 예술의 천재성은 독창성에서 기인할진대, 자기의 움집을 짓고 자기만의 만사(輓詞)를 걸어두고 자신의 주술을 외운대도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발탄강아지같은 김미경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그 자유혼과 천의무봉(天衣無縫) 원륭무애(圓隆无涯)의 예술혼을 누구랴 아름답다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2012. 壬辰 霜降節 서대문 독립관 '월간 殉國' 편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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