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는 남자를 쇼핑한다』김유정, "섹스 전도사 ‘수 요한슨’ 꿈꾸다"

발칙한 책 제목으로 한국 여성들의 특징을 문제별로 꼬집어 주어 화제가 됐던 『악녀는 남자를 쇼핑한다』의 저자 김유정(40) 작가. 그녀가 제시하는 ‘악녀론’은 조금은 특이해도 우리 사회 저변에 녹아 있는 허구와 실상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한때 명품과 스타벅스 커피와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된장녀’였다. 허영심 많은 여성들을 통칭하는 의미에서 시작해, ‘된장녀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사건의 내막>은 지난 4월25일 ‘악녀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작가 김유정을 만났다. 그녀가 쏟아내는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솔직 담백한 성(性)담론을 들어보았다.

악녀가 쓴 악녀 이야기?

“한국 아가씨들한테 정말 많이 놀랐어요…(중략)…첫째는, 한국 여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전부 다 예뻐요, 좀 비슷비슷하게 생긴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얼굴들이 참 많이 비슷해요. 둘째는, 한국 여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것 같아요. 전부 부자예요. 미국이나 유럽에선 몇몇 부자들만 들고 다니는 명품을 안 가진 사람이 없어요. 셋째는 한국 여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개방적인 것 같아요. 와우~끝내줘요. 저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부킹해서 실패한 적이 거의 없어요. 물론 섹스까지 가지요. 세상에서 한국이 제일 재밌어요”

영어강사로 1년여를 한국에 머물렀던 외국인 친구의 말은 아직도 김유정 작가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물론 그 이유는 한국 여성의 문제를 적절하고도 간결하게 세트로 묶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들이 자꾸 받아주기 때문에 악녀들의 허영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비단 ‘된장녀’ 사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악녀는 남자를 쇼핑한다

본의 아니게 산부인과 원장을 엄마로 둔 탓에 사십 평생 살아오면서 후광(後光)을 톡톡히 봤다는 김 작가는 현재 낮에는 산부인과 병원
의 기획실장 혹은 대학 강사로, 밤에는 술집 사장으로, 또는 프리랜서 작가로 ‘밤낮 안 가리는’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중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성격 탓에 무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이 시대 ‘악녀’의 대표 케이스로 분류돼 페이지를 장식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김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이 시대 ‘악녀’의 표본이 됐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밥은 굶을 지언정 커피는 비싼 돈 주고 사먹는 ‘된장녀’ 이야기, 40~60대 정도의 회사 사장, 의사, 변호사 등을 만나 일명 ‘어르신 도우미’로 생계를 이어가는 명품족 여성, 백인 남자를 최신 유행 명품처럼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젊은 여성 등 사회적 이슈로 작용할만한 경우부터, 여성 개개인이 감추어 두었던 마음을 후벼파는 내용까지 두루 섭렵한 김 작가의 수집력은 가히 대단하다. 그녀의 책 두께가 두꺼워 질수록 그녀가 만난 사람의 수는 많아지고, 그네들과 밤새 기울인 술은 하염없이 찰랑거린다.

김 작가는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술 마시는 것과 글 쓰는 것뿐”이라고 시원스럽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는 원천을 만들어주곤 한다는 것. 글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곧 사람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다 보니 그녀의 방만한(?) 인간관계는 곧 소재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수 요한슨, 성 상담자로 나서 캐나다의 여러 대학에서 인기 강사로 활동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전파, 전 세계에 엄청난 추종자 거느리고 있어


처음엔 대필을 시작했다. ‘김유정’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책을 낸 건 39세로 좀 늦었다.

“광고 카피라이터, 광고 기획자, 산부인과 병원의 기획실장, 프리랜서 작가 등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글 쓰는 게 제일 좋았다. 그 중 산부인과 기획실장이라는 자리는 병원을 드나드는 청춘남녀의 상담역과도 비슷한 것이라 소중한 간접경험이 됐다”

예전에는 바람을 피우거나, 배우자를 때린다거나, 잘 씻지 않는다거나 하는 모습들은 흔히 남자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김 작가는 시대가 바뀌면서 여자들의 모습이 남자들을 닮아가다 못해 너무 못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나쁜 남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다 뒤돌아보니 ‘못된 여자’가 판을 치고 있는 격이었다는 것.

“이런 사례들을 혼자서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소재 전체가 실제 사례고 이중 70%는 나와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글이 쉽게 써졌다. 보름만에 원고를 마감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공감을 잘 얻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주위에는 너무 흔한 사람들이었는데 일반 독자들은 생소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주변사람들은 “책 속의 악녀가 너 아냐?”라고 묻기도 할 정도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스스로가 ‘악녀’임을 시인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악녀’들은 대부분이 그녀의 주변 친구들이지만 또 그게 죽어도 못할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그녀 주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데도 일반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광팬’도 많은 반면 '악플러'도 많다. 상처 정말 많이 받았다.

한국의 ‘수 요한슨’ 자처

“한 남성잡지에 '압구정 미녀와 섹스하는 법'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은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쌍시옷’으로 시작해 ‘쌍시옷’으로 끝나는 내용이었다. 연예인들이 팬들의 ‘악플’을 보고 우울증을 앓거나 심지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해 평소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현재도 동경하고 있고 또 주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대뜸 <선데이 나이트 섹스 쇼>를 예로 들었다.

“<선데이 나이트 섹스 쇼>의 진행자 ‘수 요한슨’은 한눈에 봐도 예순은 가뿐히 넘긴 할머니다. 전직 간호사로 평범한 주부였지만 아이들이 자라자 성 상담자로 나서 캐나다의 여러 대학에서 인기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이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캐나다는 물론 미국에도 엄청난 추종자를 거느리게 됐고, 지금은 유럽 20개국, 이스라엘과 브라질에까지 사랑의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 보니 김 작가의 생각과 닮은 구석이 많은 듯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도 얼추 보면 비슷하다. 김 작가는 산부인과의 원천은 바로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병원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지루한 의학적 이야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최대한 ‘섹스’라는 말을 편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식을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 작가도 산부인과 기획실장을 맡아 병원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젊은 남녀들의 성 상담을 도맡아왔었다. 이쯤 되면 한국의 ’수 요한슨‘ 정도는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또 이와 함께 병원이름을 걸고 중학교를 돌아가며 콘돔을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한번은 케이블 TV에 ‘키스를 5백 번 이상 한 여자'로 출연해 키스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여자는 남자의 창조물에 찬성

“인터넷에서는 ‘저 여자 누구냐’며 난리가 났었다. 산부인과 의사나 정신과 박사가 나왔으면 덜했겠지만 '이상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나와서 키스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거부감 반, 충격 반이었던 모양이다. 편집된 이야기 중, 일본 사무라이의 여성들이 구강섹스를 할 때, 남자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이를 모두 뽑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를 했었다. 성을 담론화 할 수 있는 논란이 되는 방송을 원했는데 너무 '착한' 얘기만 나가 아쉬웠다”

‘어르신 도우미’로 생계를 이어가는 명품족 여성, 백인 남자를
최신 유행 명품처럼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 대해부


40년의 세월을 일명 ‘부잣집 따님’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잘나간다 싶은 사람들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들 특유의 ‘우월감’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점점 언변과 차림새가 화려해졌다. 화장 지우고 머리 질끈 동여매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몰라볼 정도였다. 상대방을 기선제압하기 위한 그녀의 모습은 본의 아니게 더욱 화려해지곤 했다.

광고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키 1백68cm에 12cm 힐을 신고 다닐 땐 얼추 1백80cm나 되는 키의 위력이 상당했다. 회의 들어갈 때도 웬만한 남자들은 다 아래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실력이 조금 안되거나 ‘말빨이 딸려도’ 어느 정도 통하는 일종의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다. 눈빛이 당당하거나 외모가 조금 더 화려해지면 그만큼 도움이 됐다.

김 작가에게 젊은 시절 당당했던 모습은 아직도 남아있다. ‘남아있다’는 표현보다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고 말하는 게 옳을 듯 싶다. 높은 힐을 신고 화려한 화장이나 언변으로 남자를 제압하려 했던 그녀가 기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여자가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선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다시 말해 우리 남성들의 삐뚤어진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악녀를 착한 여자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시대 남자들의 몫이다. 태생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남'과 '여'라 할지라도 동시대에 상호 공존하는 이상 서로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작가 김유정을 들여다 본다...‘악녀바이러스’에 감염되기까지?
40년 전통의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김유정 작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칭해지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녀를 칭하는 이름은 ‘병원 원장집 딸’에서부터 ‘부잣집 딸’까지 다양하지만 포장마차 아줌마들과 친하고, 함께 기거하기도 하는 통에 대학교 때는 어머니가 그녀를 많이도 잡으러 다녔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남자친구는 생각도 못했다. 행여 늦게 들어온 날이면 수술대에 올려져 ‘검사’를 받았을 정도다.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은 대학교 때 사람을 붙여 나이트클럽에서 어떤 여자와 어울리는 지도 다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어머니와 친구가 됐고, 서로 공감대를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부모님과 하와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시카고에 있는 나를 불러서 하와이에서 만난 것이었는데, 부모님과 놀려니 심심했다. 그런데 엄마가 ‘너는 나가서 젊음을 불태워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많이 유해지신 것 같다.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솔직히 기분 좋은 말이다. 우리 집 잘 사는 것 맞고, 우리 엄마 훌륭한 분이라는 건 인정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지만 내 생활은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환경을 잘 이용을 한 것과도 같다. ‘싸구려 근성’을 버리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내 삶을 살아왔기에 ‘부잣집 딸’이라는 타이틀 부담스럽지 않아“

혹자들은 “그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라며 김유정 작가의 성향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김유정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금 관심 있게 들여다 볼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김유정은 ‘원래 그런 인간’임을 알게 된다. 그룹 회장님을 만나서 이야기해도 재밌고, 경비 아저씨와 소주 한잔 기울여도 행복하다. 그녀는 “타고난 성격 때문이지, 경제적인 여유 때문은 아니다”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술친구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19세 대학생부터, 78세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어머니의 후광으로 보통 회사를 다녀도 그 회사 회장님까지 알게 됐다. 일개 직원이 어떻게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싶지만, 알고 보면 어머니의 친구로 “네가 최차혜(어머니) 딸이니?” 이런 식이 된다.

그렇게 평생 어머니의 후광을 등에 업고 살면서도 늘 '삐딱선'을 타왔다는 김유정 작가.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줬지만 처음부터 능력껏 돈을 모아 차를 샀다. 그녀가 처음 장만한 자가용은 지금은 단종된 경차. 다른 가족들이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을 때, 동대문에서 옷을 골랐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엄마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일년동안 엄마 몰래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밤새 술을 먹으니까 출근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니 엄마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엄포를 놓으시는데도 꿋꿋이 술집을 운영했다. 나 혼자 독립적으로 먹고 살겠다고는 했지만 결국 엄마에게 손을 벌릴 때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한 것도 한 군데에 꾸준히 있지 못한 것이 아니고, 되돌아보니 내 나이 마흔이 됐고 내 경력이 차곡차곡 하나씩 쌓인 것이다. 현재 엄마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가 병원에서 일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조그만 장사를 해도 내 장사를 하고 싶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작가였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을 나는 신념처럼 믿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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