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계 산증인’ 이달 20일 5번째 정기공연 열어


[조은뉴스=류철현기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가요계 매니저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나이는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고 1997년 제18회 MBC강변가요제에 록밴드를 결성해 출전,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고 한다.

방송활동은 원음방송 등 주로 라디오 위주로 해오고 있고 가수는 물론 연극 뮤지컬 등 공연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단다.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우종민’이고 지난해부터 포크발라드 ‘널 위한 노래’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인터뷰 약속을 정하고 인터뷰에 앞서 미리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경력 24년차고 방송활동을 꾸준히 했으면 그에 못지않은 자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포털 검색을 했다. 먼저 어떤 이슈가 있나, 혹 다른 기자들은 우종민을 어떻게 봤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사 검색을 찾았더니, 이게 웬일... ‘우종민’은 기획기사에 한줄, 다른 가수 공연에 게스트 출연 명단에나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코앞에 두고 부랴부랴 관계자에게 연락해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했다. 메일로 도착한 프로필을 열어본 후  ‘무엇 때문에 이런 음악인이 대중의 관심(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강변가요제에 은상을 수상을 계기로 가요계에 데뷔해 98년 남성 3인조 보컬그룹 ‘사람찾기’를 결성해 ‘소금’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1집 ‘If ever’ 발표하며 솔로 변신해 지난 2013년 4집‘널 위한 노래’까지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또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MBC FM <김기덕의 골든 디스크>  수요일 코너 ‘돌아온 오브리 브라더스의 언플러그드 쇼’ 출연, 현재 TBN(서울DMB) <이희경의 신나는 운전석> 토요일 코너  ‘토요일에 만나고 싶은 남자’까지 10년이 넘게 MBC, SBS, CBS, EBS, 국군방송, 교통방송 등 수 많은 프로그램에 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거기에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주제곡 ‘젊음을 한곳에, 세계를 품안에’ 작곡• 노래,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 삽입곡, 세계 10대 영화제로 꼽히는 영화제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한 ‘괜찮아 울지 마’ 음악 감독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간단하게 정리해 우종민은 가수, 작곡 작사가, 영화, 연극 뮤지컬 음악 감독, 명지전문대 실용음악과 교수, 롯데백화점(구리) 팝송교실 강사 등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성인가요부터 아동극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보유한 전천후 음악인이다.  또 10년이 넘게 다양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관계자들이 믿고 코너를 맡길 수 있는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2% 부족했던 건 대중의 인지도. 오랫동안 가수와 작품자로 활동해왔지만 이거다 할 히트곡이 없었고 무대 위가 아닌 위나  아래가 자리인 얼굴 없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PR 시대에 살며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한 줌의 스포트라이트가 전부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며 때론 가르치고 같이 노래하며 음악에만 빠져 지낸 시간이 후회되거나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제 뭔가 달라져야 할 시기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더 많은 소통을 위해 음악으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목표를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여름 마음 맞는 매니저와 의기투합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렇다고 편법을 써서 빠른 시간에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보다 대중 친화적인 활동으로 시나브로 대중의 마음에 파고들겠다는 각오다.  이번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자신에게 딱 2% 부족한 대중의 인지도를 채우기 위해 느리지만 흔들림 없는 걸음을 떼기 시작한 그의 진면모를 만나보자

■ 연세대를 다니다 서울예대로 편입을 한 건가
서라벌 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 음대 작곡과를 지망했다 떨어지고 1년 재수해 연세대 지질학과에 입학했다. 음악을 하려는 나에게 지질학은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을 하지 않았다.   그 후 라이브 클럽을 돌며 노래하고 작곡하는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좀 더 음악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해 서른이 넘어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하게 됐다. 서울예대 입학해 음악을 배우며 강변가요제 나가서 은상도 받았다.

■ 노래를 하게 된 계기는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을 하며 공부 했다. 그러던 중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마치고 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돼 경희대 앞에 있는 라이브 업소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일이 계기가 되 가수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중 고등학교 때도 보컬 팀을 만들어 학교 축제 때 공연을 하기도 했다.
  
■ 가수,작곡,작사가,음악감독,교수,노래강사 등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어떤 타이틀로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노래를 부르다 보니 가수이고 작곡을 하다 보니 작곡가가 됐다. 우연한 기회에 연극 영화 뮤지컬 음악감독 일을 하게 됐는데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악상을 떠올려 그 장면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게 정말 재미있고,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느껴지는 훈훈함과 보람이 계속 음악감독 일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연극 계통의 일이란 것이 알려진 대로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가수일도 스케줄이 없을 땐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언가 생활을 안정시켜줄 고정수입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노래교실(가요)을 하게 되었는데 하다보니까  내가 좋아하고 평소에 관심을 가져왔던 팝송교실로 점차 바꿔나갔다.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호칭도 때에 따라 다 다른데 가장 듣고 싶은  호칭은 ‘싱어송라이터 우종민’이다. 그리고 지금 명지 전문대 실용음악과에서 전공실기 강의를 하고 있지만 교수는 아니고 시간강사다.

■ 성인가요에서부터 아동극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지
난 유명한 가수가 아니다. 유명한 작곡가도 아니다. 유명 강사도 아니다. 결국 뭐 하나 히트시킬 만큼 특별히 잘 하는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잘 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멀티’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 해 내야 먹고 살 수 있다!!   열 재주 가진 놈 배고프단 말이 있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열 재주가 있으면 활용해야 한다. 내 머리 속에서 나오는 음악적 감각들도 여러 가지가 나온다.  아주 가끔은 쓸 만한 것들도 나온다^^

■ 라디오 방송경력이 대단하다 그 반면 TV 활동은 드문데 이유가 있는가
간단하다. 안 불러주니까~~ 나 같은 장르의 음악을 하는, 이 정도 나이에, 거기에 미비한 인지도에...  프로그램도 없다. 있다 해도 더 젊고 더 잘생기고 음악도 잘하는 후배들 많다. 하지만 TV에서도 잘 할 자신은 있다.
■ 재야의 고수로 불리는데 대중성과 인지도에 대하 개인적인 생각은
재야라는 말을 이런 데도 쓰니까 재미있다. 고수라기보다는 그냥 오래했다. 아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이 좋게 말해준 거다.   사람이 살며 지나온 길이 지금의 모습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내 모습, 내 위치를 봤을 때 고수라는 말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계속 노력하는 음악인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만들었던 음악들이 조금 대중적이지 않았던 것은 인정한다. 노래교실 팝송교실을 약 10년 정도 하다보니까 수강생, 즉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인해 대중들의 생각과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어차피 대중음악을 하기에 좀 더 대중적인 느낌으로  변하려고 애쓰고 있다.  인지도를 결정하는 기준이 불특정 다수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인지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공연소식을 들었다 매진이 돼도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공연을 하는 이유
첫 번째는 지금 나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나도 없다. 두 번째는 내가 살아있음을 나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가수에게 공연이란  바로 삶이다. 세 번째는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이 없다는 마음이다. 더 나은 미래는  힘들어도 어떠한 이상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계획하는  과정에서 온다고 믿는다.

■ 우종민에게 음악이란 / 노래란
나와 내 가족이 세상을 마주 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이자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음악만큼 나를 세상에 잘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좋아했던 음악으로 직업을 삼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활동계획
올 해는 이 번 공연이 끝이고 내년 상반기에 소극장 공연을 할 생각이다. 다양한 콘셉트의  공연을 계획중이다.   예를 들면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젊은 가수와 함께 한다거나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스토리가 있는 콘서트, 또는 라디오 방송을 공연장으로  가지고 나온 것 같은 라디오 콘서트도 기획중이다.

■ 팬 /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
팬들에게 100 마디만 하라고 하면 감사하다고 100번 말하겠다.  팬들은 음악인 우종민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이다. 팬들을 위해 나 자신에게 더 말하고 싶다. 분발해라!


우종민은 다양한 무대에서 얽매임 없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록을 바탕으로 한  포크는 물론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까지 제대로 갖춘 현악과의 협연도 시도하는 등 인디음악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그에게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2015년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콘셉트가 있는 라이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70년대 라디오키즈들을 잠 못들게 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과 팝송을 접할 수 있었던 ‘2시의 데이트 김기덕’ ‘박원웅과 함께’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콘서트로 재현할 계획이다.

음악과 추억이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어느덧 잔설이 내린 나이가 돼 버린 라디오키즈들에게 열정 가득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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