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李’ 전초전 전당대회서 박근혜 압승... 박풍 위력 입증
강재섭 신임 대표 등 대다수 지도부 親朴, “몸 바쳐 충성”

'경제대통령과 독재자의 딸’이라는 엇갈린 명암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더십을 발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감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보가 심상찮다.

당내 분위기는 물론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돼 왔었지만 정작 본인은 입을 다문 채 의중을 드러내지 않았던 게 그가 보여 왔던 스타일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11일 가진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깊은 수심 때문에 쉽사리 의중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던 ‘朴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며, 당 지도부에 출마한 ‘親朴’ 의원들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에 선출된 당 지도부가 차기 대선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그 역할의 중요성에 ‘朴心’이 발동한 것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대권을 향한 박 전 대표의 야심찬 행보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1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강재섭 의원이 임기 2년의 새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강 의원과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논란을 일으켰던 이재오 의원은 여론조사에서의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2위에 그쳤다.

강 의원은 이날 참석 대의원 7588명의 1인2표 투표와, 일반국민 2천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각각 7대 3의 비율로 합산한 최고위원 경선에서 총 유효투표 2만1036표의 24.98%(5254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애초 이번 전당대회는 이재오 의원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면서 ‘강한 대표론’으로 여론을 선도해 갔으나, 강 의원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박 전 대표의 힘이 작용한 탓이다.

박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엄정한 중립’을 표방했으나, 그의 측근들이 강 의원 지지 운동에 발 벗고 나섰고, 막판에는 자신까지 직접 당내 인사들에게 전화를 거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고 한다.

그 결과, ‘李心’(이명박)과 여론조사의 우위, 그리고 원내대표라는 프리미엄까지 거머쥔 이재오 의원에게 열세를 보여 왔던 강 의원이 막판 대역전극에 성공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등 각종 공직 선거에 이어 당내 경선에서도 ‘박풍’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강재섭 대표 체제의 등장으로 박 전 대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새 대표는 2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을 임명할 수 있고, 내년 대선후보 선거인단 구성 과정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 전 대표의 열혈 측근으로 꼽히는 전여옥 의원을 비롯해 강창희 전 의원과 정형근 의원까지 차례대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5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4명이 ‘親朴’ 지도부로 구성됨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시나리오의 일부
당내 호칭은 이미 대통령?, “앞으로 그렇게 부르게 될 것”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를 두고 당내에서는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예정된 수순’이라며 이미 예견해 왔던 분위기다.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한 당직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후폭풍으로 몰락위기를 맞았던 한나라당이 지금의 건재한 모습을 과시하게 된 것은 박 전 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당내에서는 공공연히 박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지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추측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해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성향을 둘러싸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내에서 통용되는 친박(親朴.친박근혜), 반박(反朴.반박근혜) 등 명칭에 이어‘호박’(好朴), ‘찬박’, ‘애호박’, ‘조롱박’ 등 재치 있는 언급이 잇따른 이날 연찬회에서 ‘박(朴)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 인물은 김용갑 의원.

당 혁신안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김 의원은 “박 대표에 대해 ‘친박’, ‘반박’ 하는데 저는 어디로 갈지…….”라며 말끝을 흐린 뒤, 이어 “호박(好朴)이다. 좋아한다. 중도적 호박파”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김 의원은 이날 발언 도중 박 전 대표를 ‘박근혜 대통령’으로 잘못 호칭, 좌중의 웃음을 산 뒤 “좀 이해해 주세요. 앞으로 그렇게 부르게 되면 될 거 아닙니까.”라고 재치를 발휘하기도.

이어 박찬숙 의원이 자신의 이름과 박 대표를 연결시켜 “제 이름이 박찬숙이어서, 찬박이다.”며 말을 받았고, 이계진 의원은 “‘호박’도 있고, ‘애호박’도 있고 더러는 ‘조롱박’도 있는 것 같다. 이 속에 잘 찾아보면 대박도 있을 것 같은데, ‘쪽박’만 차지 않으면 된다.”면서 방송인 출신답게 현란한 언어유희를 구사했다.

4.30 재 보궐 선거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 한 달여 만에 가진 이날 의원연찬회에서 당권을 장악한 박 전 대표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이명박 탈당 후폭풍... 與, 반사이익 ‘제2 노무현’ 기대
李, ‘노무현 러브콜’, ‘고건 연대’ 대선 최대 변수될 듯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던지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라는 예상된 시나리오가 유종의 미(?)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다.

표면적으론 ‘강재섭-이재오’의 대결구도로 치러졌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내년 대선을 겨냥한 ‘박근혜-이명박’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이 전 시장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직접 이재오 의원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거는 등 비상한 신경을 쓰고도 ‘박풍’에 밀려 약세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초조함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국회의원 신분도 아닌 이 전 시장은 당내 활동 공간이 좁아져, 향후 자신의 ‘대권플랜’에 대한 위기감도 느꼈을 짐 하다.

그런 만큼 이번 전당대회는 당내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이명박’의 희비를 엇갈라 놓았고, 상대적으로 패자의 길을 걷게 된 이 전 시장의 ‘대권플랜’이 예견치 못할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예상을 점치게 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권이 약해진 이 전 시장이 내년 경선에 참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탈당이후 독자적 노선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인 셈인데, 이 같은 조짐은 여권 내에서는 쾌재가 아닐 수 가 없다.

대표경선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 ‘朴心’이 결국 ‘박근혜-이명박’ 두 유력 대선주자간의 갈등을 야기하면서 당내 분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전망은 여권으로서는 다시 한 번 ‘제2의 노무현’을 기대케 하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 강 신임 대표는 “대표경선 과정에서 당이 분열된 모습을 보인 만큼 무엇보다도 당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경선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는 “정치는 현실”이라고도 말해 대권후보경선에 대한 공정관리가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있다.

이런 정황을 이 전 시장이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고, 이 같은 환경이 자의든 타의든 이 전 시장의 탈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전시장이 탈당이라는 카드를 커내 들었을 경우, 이후 독자적 노선의 향방에 따라 한나라당의 정권창출은 요원한 과제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 첫 번째 변수가 바로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다. 물론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뤄진 것이지만, 이 같은 주장이 당내 소장파 의원들에 의해 제기돼 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23일 공성진 의원은 ‘푸른정책연구모임’이 주최한 ‘한나라당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원탁대토론회’에서 “YS는 군사정부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DJ는 충청도 세력과의 연대인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노동운동을 했던 노무현은 재벌아들 정몽준과 단일화해서 정권을 만들어냈다”며 “단일로는 집권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 좋은 연대는 이 전 시장과 고 전 총리가 화합하는 것”이라며 “둘이 연대한다면 영·호남 양진영이 화합하는 것으로 보수 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고 주장, 눈길을 끌었다.

공 의원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들 간의 연대는 국민들에게 지역갈등을 불식시킬 수 있는 ‘영·호남 화합’으로 비칠 수 있어 ‘안성맞춤’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독자적 지지 세력에 비해 열악한 조직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고 전 총리가 이 전 시장의 탈당 이후에도 연대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전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예상할 수 있는 게 노무현 대통령과의 연대다. 만약 이 카드가 내년 대선에서 현실화될 경우 대선정국 최대의 변수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李-盧’ 연대카드를 배제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은 선거 이후의 노 대통령의 거취문제다. 노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면 식물인간이 된다. 자의든 타의든 탈당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노 대통령이 이 전 시장과 전격 연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일 수 있다.

이는 노대통령이 이 전 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기는 추후 영남맹주로서 정치생명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전 시장도 노 대통령의 이런 구상에 먼저 손을 내밀 수 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전당대회의 결과가 말해주 듯 현재 한나라당 경선 구도가 한쪽으로 쏠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좌초위기에 내몰린 한나라당을 지금까지 이끈 데다,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등 각종 공직 선거에 이어 당내 경선에서도 압승의 주역인 박 전 대표가 경북, 호남, 충청 등 상당 부분 먹고 들어가고 있다.

이런 구도로 전개될 경우 이 전 시장에게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李-盧’ 연대카드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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