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단다


[(부산)조은뉴스=이재훈 기자]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긴 부모들은 공통으로 교사의 책임감 있고 적극적인 보살핌과 교육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으로 인해 보육교사 전체가 오해를 받거나 어린이집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와 교육을 담당하는 보육교사의 입장에서 교육효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에 부산시 민간어린이집 연합회에서 주최한 2013년도 교사 및 학부모 수기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을 기획으로 게재한다.

어린이집을 통해 올바르게 양육되고 있는 자녀를 바라보는 학부모와 열악한 교육환경속에서 올바른 교육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보육교사의 실제 고백을 들어보자.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단다!>, 정관면 단비어린이집 서미옥 학부모


저는 43살의 나이에 아이 엄마가 되어 48살인 지금 유치원에 보내는 6살 난 아들의 학부모로서의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행복한 엄마랍니다. 부부금실이 좋아 43세에 늦둥이를 낳았냐구요? 부부금실이 좋은 것은 맞는데 늦둥이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장남이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랍니다. 가슴으로 낳은... 신께서 제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하고 복된 선물입니다.

처음 아들을 만나러 갔을 때 한 달 밖에 안 된 귀염둥이가 어찌나 진하게 눈을 맞추는지... ‘장애가 있어도 좋으니 남들이 안 데리고 가는 아이가 있으면 저희 가정에 주시면 사랑으로 잘 양육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더니 밝고 맑고 건강한 아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정에 있던 어려움, 고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우리 가족들은 아이사랑에 푹 빠져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는지...
그때부터 저는 부모는 나중에 자식에게 보상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키울 때 부모에게 준 기쁨과 행복이 이미 지불한 부모에게 갚아야 할 값이었다고 자신 있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만큼 아들은 저의 삶의 이유! 에너지!,보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와 분리 되어서인지 분리불안정도가 너무 심해 늘 제가 업거나 안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야간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수업을 받으러 갈 때면 아이와 아이의 할머니(나의 어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차안에 아이를 재워놓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깨서 울면 할머니로부터 전화벨이 울렸고, 그럼 전 공부를 하다가 말고 아이에게 달려가 업고 또 재워 놓고서야 강의실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들이 저에게만 오면 새근새근 잘 자고 잘 놀고 잘 웃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도 조금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업고 운전을 해야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화나거나 짜증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이의 환한 미소는 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엔돌핀 이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아들이 커서 6살, 자칭 ‘형아’라며 엄마를 돕겠다고 나섭니다. 무거운 것도 “엄마! 제가 도와 드릴께요” 하며 돕는다고 애쓰고 엄마가 힘들다고 하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껏 안마해줍니다. 또, 차를 같이 타고 갈 때면 잔소리쟁이 시어머니가 됩니다. “안전밸트 매세요” “60km이상 달리면 안돼요” “빨간불엔 멈춰야 해요” 등등 일일이 체크하며 조심을 시킵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성품교육을 받은 후로는 엄마를 많이 가르치려합니다. 어떨 땐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아이 앞에서는 절대 대충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집에 같이 사는 지적장애 이모에게 짜증 섞인 소리로 잔소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조용히 다가와서 “엄마! 화가 날 때는 숫자를 세세요. 하나, 둘, 셋.... 이렇게 열까지 숫자를 세다가 보면 화가 쑤~욱 갈아 앉는다고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화가 날 땐 꼭 숫자를 세세요. 특히 이모한테 화가 날 땐 더욱 꼭!... 수아도 그렇게 할거구요. 아빠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말 할 거예요.” 그날 전 부쩍 커서 어른 같이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여섯 살 아들보다 못한 것 같은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 이었습니다. 그날 후로는 아들 보는 데서는 화도 못 내고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스폰지같이 모든 걸 그대로 흡수하는 맑고 깨끗한 도화지 같은 아들의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을 그림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사에 조심하고, 다시 배우는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코칭, 부모교육 등 배우는 곳이라면 달려갑니다. 어디든지, 언제든지...


아들을 키우면서 고민되었던 것은 아이와 저와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형성되기도 전에 제 일(직무)에 바빠 너무 많이 떼어놓고 함께 해 주지 못한 것, 그래서 혹, 성격이나 정서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퇴근해서는 잘 놀아주고 많이 안아주기도 했지만 정작 아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는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이 아이에게 거절감과 다시 한 번 분리불안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 맡겨졌던 아이는 자연적으로 같이 사는 지적장애를 가진 이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섯 살 지능인 이모는 아들이 같이 놀자고 다가가면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나가는데 이를 늘 보고 자란 아들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자고하는 행동이 본인도 모르게 손이 나가서 작은 폭력을 행사하는 버릇이 되었습니다. “수아엄마! 수아가 때려요!” 때릴 상황도, 맞을 상황도 아닌데 우리 아이의 대화법은 늘 손으로 텃치 하는 것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온 정성을 쏟아서 양육하지 못한 엄마가 모질고 단호한 훈육을 해야 할 순간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럽고, 미안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한 동안 고민도 많이 하고 망설여야 했습니다. ‘이대로 폭력적인 아이가 되면 어쩌나?’, ‘잘 키운다고 큰소리치며 아들 삼아 놓고 못난 엄마 때문에 아들 인생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로 가득 찼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 함께하면서 나쁜 습관을 행할 때는 엄하고 일관성 있는 훈육과 친구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예쁜 모습을 책을 통해, 시청각교육을 통해 경험하게 했고 적절한 칭찬과 격려를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여주었고 직접 실천함으로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함으로 스스로 하 수 있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너무나 존귀하고 소중한 사람임을 알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 엄마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의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아이의 이런 부분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내 아이처럼 함께 길러 나가자고 솔직하고 간절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처음엔 하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아들이라고 온 집안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 온 탓에 쉬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심하다싶을 만큼 아이의 기분만 다운되어 고집쟁이가 되는 역효과를 가져오는 듯 해 더 심각한 고민 속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주위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내 아이처럼 함께 양육하자고 뭉치니 이제는 정말 ‘언제 그랬나?’ 싶게 때리던 손이 부드럽고 예쁜 손으로 변했답니다. ‘자녀를 잘 키울려고 하면 엄마 자신을 잘 가꾸어야 한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목소리가 커지면 그것은 왜곡이고, 한계가 왔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어린 내 아이가 먹어야 할 가장 귀중한 영양소, 힘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소중한 공부를 한샘이지요

지금도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아이를 많이 안아 주고, 아이랑 실컷 놀아줍니다. 놀 때면 나도 같이 여섯 살 아이가 되어서 칼싸움, 숨바꼭질, 장난감 놀이, 블록쌓기, 그림그리기... 심지어 어린이 TV도 같이 봅니다. 비록 비싼 장난감이나 갓 지은 따뜻한 밥이 아닐지라도 엄마가 함께하는 놀이와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음식 속에서 아들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손도, 말도 ,마음도, 인생도 거칠어 진다고요. 그러나 저는 저희 집에 끊임없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복 비타민, 내 아들 덕분에 손도 말도, 마음도, 인생도 계속 부드러워지고 있고, 더 행복을 연마해 나가기에 바쁩니다. 또, 자신을 잘 가꾸는 지혜로운 엄마, 늙고 미련한 엄마 때문에 상처받는 아들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 학부모코칭, 에어로빅 등 시간을 잘 활용하면서 젊은 엄마들 못지않게 노력중이랍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차세대 꿈나무들을 좋은 성품과 관계를 잘하는 건강한 일꾼으로 길러내는 일에 직. 간접으로 보탬이 될까? 해서 야간대학에 다니며 보육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직도 우리아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친구들이 “수아야! 너희 할머니 왔다”고 해도 우리아들은 의기소침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최대한의 리엑션으로 “엄마!”하고 뛰어와 안깁니다. 그러면 방금 들었던 할머니 소리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우리아들에게, 또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온답니다.

잠깐! 저희 아들이 한 번도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고집부리지 않고, 토요일 쉬는 날에도 어린이집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우리 아이를 변화시킨 어린이집을 자랑 좀 할까요? 처음엔 소문이 좋아서 갔는데 산이 감싸 안고 있는 어린이집 더라구요! 그 넓은 산품에 안겨 있어서 그런지 공기 좋기는 말 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어찌나 밝고 맑은지요. 무시로 통화할 때마다 가장 예쁜 목소리와 하이톤으로 “수아 어머니!”하며 학부모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선생님을 대할 때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오셔서 문밖에 서서 아이들을 웃으며 맞아 주시는 자상하고 배려 깊은 원장선생님을 뵐 때마다, 가끔씩 통원 버스를 놓쳐서 아들을 데려다 주러 원에 갈 때 하나 같이 아이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달려 나와서 친절한 미소로 90도 허리를 숙여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인사하시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정관 신도시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어린이집 마당에 서서 폐 속이 시원하도록 맑은 공기 들이킬 때 마다 단비어린이집에 우리 아이가 다닌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자랑인지, ‘참으로 좋은 어린이집을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성품교육을 하고 있는데 성품훈련을 통해 변화되는 아이들을 보는 것입니다. 인내, 절제, 책임감, 창의성, 정직...12가지 성품교육을 하는데 지금은 정직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직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각, 말, 행동을 거짓이 없이 바르게 표현하여 신뢰를 얻는 것’ 자칫, 여섯 살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말이고 실천하기 불가능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이 생기겠지만 두 달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노래 부르고, 또 동화를 통해 배우고,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르치고 나면 어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유아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감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부모도 자연스럽게 배움과 훈련을 같이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또한 감사합니다.

어김없이 어린이집 통원버스를 타면서 밝은 표정 맑은 목소리로, 손을 흔드는 우리아들의 한마디 “엄마 집에서 응원해 주세요!” 오늘도 저는 기분 좋은 우리 아들의 하루를, 또 남은 생애를 축복합니다. 생애 가장 중요한 시기를 사는 배도 한번 안 아프게 하고 기꺼이 아들 되어준 많이 고마운 아들에게 어느 분의 말씀처럼, 유아기 때는 따스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사랑을, 사춘기 때는 지켜 봐주는 사랑을, 성인이 되면 냉정하게 끊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요리를 해 주면 엄마는 요리사! 아픈 부분을 만져주고 치료해 주면 엄마는 간호사! 설교하는 엄마를 보면 엄마는 목사님!
아들: 그런데 엄마! 이것 저것 다 하시지 말고 한 가지만 잘 하세요.
엄마: 그랬으면 좋겠니? 그럼 수아는 엄마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니?
아들: 음? 저는 요리사요!
엄마! 그래 수아에게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 주는 요리사가 될게.
그렇게 말했었는데...
수아야! 엄마가 진짜 되고 싶은 것은 수아의 좋은 엄마란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