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택스님, 해인사 백련암 장경각 장서 정리 중 찾아내

[조은뉴스=온라인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중국 당나라 선승의 게송(偈頌)에 주석을 붙인 한문서적을 73년 뒤에 한글로 인쇄한 16세기 희귀 언해본이 발견됐다.

해인사 백련암의 원택스님은 1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4월 중순 백련암 장경각 서고에서 성철 큰스님(1912-1993)이 남긴 장서를 정리하다가 '십현담(十玄談) 언해본'을 발견했다"며 "'십현담 언해본'은 문화재 서지목록이나 국립도서관ㆍ각 대학 서지목록에도 없는 희귀본 또는 유일본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십현담'은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조동종(曹洞宗) 스님인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가 저술한 10가지 게송으로, 법화사상과 화엄사상을 포함한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 실천지침 등을 아름다운 7언 율시로 노래한 선시다.

후에 역시 중국 선종 종파인 법안종(法眼宗)의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선사가 이 십현담에 주석을 달았다.

십현담은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는 조동종의 가풍에 심취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조선 성종 6년인 1475년에 다시 주석을 붙여 한문으로 쓴 '십현담 요해(要解)'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십현담 언해본'은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를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십현담 요해'가 나온 지 73년 만인 1548년(명종 2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판각한 것이다.

'십현담 언해본'의 서명에는 "성화 을미년 도절(桃節) 재생패(哉生覇)에 청한자(淸寒子) 필추(苾芻) 설잠(雪岑)이 폭천산에서 주를 쓰다"라고 돼 있다.

여기에서 '성화 을미년'은 조선 성종 6년, 김시습의 나이 41살 때이고, '도절 재생패'는 3월16일로 해석돼, 단종 폐위 후 20대 초반에 출가해 자신을 '청한자 필추 설잠'이라고 불렀던 김시습이 수락산 기슭 폭천정사에서 지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원택 스님은 "'십현담 언해본'은 조선 세조∼성종 때인 15세기 중후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류를 한글로 옮긴 언해본이 아니라 16세기 전반기에 드물게 언해된 선종 서적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철스님의 상좌를 지냈고 성철스님이 오래 머무른 백련암의 감원(암자의 제일 어른스님)을 맡고 있는 원택스님은 "이번에 성철 큰스님의 서책을 정리하면서 귀한 고서와 언해본들을 발견해 서지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검토결과 문화재로 가치가 있으면 문화재지정을 신청하고, 언해본들은 영인본으로 만들어 국어고문학자들의 연구자료로 활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철스님은 후학들에게 '책 보지 말라'며 참선 수행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스님은 장경각에 1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계셨으며 일일이 읽은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요약까지 해놓았다"고 전했다.

이번 '십현담 언해본'에 대해 서병패 문화재 전문위원은 "기존의 '십현담요해'에 수록된 주석을 간결하게 하여 구성한 독립적인 언해본으로 희귀본에 속한다"며 "한글에는 반치음 'ㅿ'과 꼭지 'ㆁ'이 사용되고 있어 16세기 중엽 국어사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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