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회가 넘는 크고 작은 행사 진행 진정한 'Master of Ceremonies'

 



[조은뉴스=류철현기자]  눈을 감고 들으면 성우 배한성이라해도 믿을 만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일품인 MC가 있다.

 

1천회가 넘는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하며 ‘재야의 고수’ ‘행사계의 맥가이버’ ‘무대 위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MC 김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독도관련 영화 ‘놈이 온다’ 크랭크인을 알리는 행사 진행을 맡게 된 김호는 행사의 꽃이라 불리는 ‘Master of Ceremonies’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진행자로 꼽히고 있다.

행사를 완벽하게 이끌어가는 지휘자로서 또 행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남자. 76년 극단76에 입단해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며 ‘광대’가 돼 대중들을 웃고 울린지 38년째가 됐다.

강산이 4번이나 변하는 세월동안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 온 그의 인생을 들어보았다.
 

■ 재야의 고수

크게는 15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영화 크랭크인 행사부터 작게는 개인적인 동문회 진행까지 20여 년 동안 MC로 활동해온 김호는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재야의 고수’로 통한다.
1천회가 넘는 각종 행사를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는 어떤 기성 MC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행사를 물 흐르듯 자유스럽게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출연자가 참석하지 못해 생긴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등에서 춤 노래 연기 마술 등 다양한 재능을 발휘, 어떠한 난제에 부딪쳐도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행사계의 맥가이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특히 그의 진행 실력은 2시간여의 행사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 만큼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게 해 최근 그를 찾는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단순히 출연진이나 관계자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소개자에 머물지 않고 행사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마스터로서 역량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호가 행사의 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 어려서부터 몸으로 부딪치며 익힌 다양한 연예활동이 큰 힘이 됐다.

 

 

■ 전천후 팔방미인 

 

고교재학시절부터 뛰어난 목소리로 주변인들의 적극적인 연예계 데뷔 권유를 받은 김호는 ‘극단 76’ 창단 멤버로 입단해 연극 무대에 서며 실전 연기를 몸으로 익혔다.
또한 극단 생활 중 생계를 위해 명동 음악다방, 무교동 학사주점 등지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대중을 즐겁게 해줬다.

이러한 재능으로 군에 입대한 후 문선대 MC로 발탁 돼 군 생활을 했고 전역 후 연기자로서 꾸준한 활동을 하며 87년 ‘행운의 스튜디오’ 보조 MC, 90년 ‘장수만세’ 콩트연기자 등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한국연예인협회 연기분과 위원 활동, 전국 디스코 DJ 클럽 초대 섭외 실장 등 팔색조라 할 만한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 지독히 ‘운’이 없던 남자

팔방미인이라 할 만한 전천후 재능을 지닌 김호는 다양한 재주가 오히려 독이 돼버린 대표적인 사례. 또한 행운의 여신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불운의 아이콘이다.
연기자로서 여러 번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그 때마다 어찌된 일인지 기회가 눈앞에서 날아가 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93년 개봉돼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살어리랏다’ 에 출연기회가 2시간을 남겨 놓고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당초 출연이 약속돼 있던 남포동이 다른 지방 촬영으로 인해 연락이 되지 않아 급하게 윤삼육감독으로부터 출연제의를 받았다.

새벽 4시에 감독 스태프들과 합류해 영화 촬영장으로 이동하기로 약속하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영화 촬영을 위한 의상 등을 준비하던 중 새벽 2시에 영화 스태프로부터 “‘남포동이 현장으로 직접 참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다음에 보자”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 말 한마디로 영화 출연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 외에도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해야 하느라 또 제작진에게 예기치 않은 변수가 작용해 연기자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 ‘마이크’는 내 인생

연기자의 길이 점점 멀어지며 김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다가왔다.
군 생활도 문선대 MC로 활동했을 만큼 남다른 행사 진행 실력이 있었던 김호는 생계를 위해 회갑연 동문회 송별회 등 가리지 않고 각종 행사의 진행을 맡았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삼아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각종 가요제 노래자랑 등 전국방방 곡곡에서 열리는 행사의 진행자로 섭외를 받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전문 행사 MC로 살아온 지 20년. 작은 무대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대중들을 만나고 초대 가수의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고난을 잊는 서민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됐다.
“처음에 MC는 연기자가 되기 위한 과정 중 잠깐의 외도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20년이 지나며 MC는 나에게 주어진 천직임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김호는 “송해 선생님처럼 평생 무대에 설 수 있는 MC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 재능 기부하며 무대 위에서 죽고파

어느덧 광대 인생 40년을 앞둔 김호는 이제 자신이 느끼고 몸으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능을 기부하며 대중들에게 보답하는 MC룰 꿈꾸고 있다.
올해도 매달 20여 차례 진행을 맡은 행사 중 과반수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였을 만큼 돈보다는 나눔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정을 보태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김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지인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 특히 재래시장이나 장터를 돌며 느꼈던 아쉬움을 바탕으로 지방 재래시장 살리기 행사를 준비 중이다.
‘전국 특산물 살리기 노래자랑’이 그것으로 지역민들의 축제인 노래자랑을 펼치며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산물 소개까지 겸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생각이다.

 

또 재능은 있지만 재능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가수 연기자 MC 등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했다.
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교육과 더불어 각종 행사 섭외 및 기획까지 맡아 실력 있는 신예들을 대중들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스마트 TV 등을 통해 국내 가수들의 해외 소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지 40년이 되는 해를 활동의 마지노선으로 정했다는 김호는 “앞으로 2년 동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활동을 할 작정이다”라며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인정 할 수 있는 MC가 되고 싶다”포부를 밝혔다.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무대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을 수 있지 않느냐”는 김호.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블로그(blog.daum.net/hoya5082)를 직접 운영하며 소통에 힘쓰고 있고 운동도 꾸준히 해 30대 못지않은 몸매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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