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김수일 객원기자]  기자는 지난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간 중국 내몽고지역을 돌아 보았다. 이는 단순히 출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북경의 모 대학에서 행하고 있는 내몽고의 발전을 위한 신도시 설계에 자문을 하기 위하여 간 것이다. 출발 전부터 이번 내몽고 방문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오프레코드하기로 약조를 하였기에 구체적인 지역이나 대화한 내용에 대한 것은 중국 정부가 발표할 때 까지는 유보하기로 하고 기회가 된다면 중국 정부의 발표후 자세한 내용을 밝히고자 한다.


북경의 A대학 교수와는 26일 오전 10시 대학 연구실에서 승용차로 함께 출발을 하였다. 북경을 출발한지 2시간 남짓 지나니 내몽고 초입으로 들어간다. 목적지는 따로 설정되어 있으나 내몽고의 도로 및 철도 등 교통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몽고족의 자치구인 내몽고 수도인 호화호특시 주변에서 1시간정도를 북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3시간, 다시 북쪽으로 2시간, 다시 서쪽으로 3시간의 코스를 택하다가 중간 중간 목적지마다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나의 내몽고 방문은 작년 9월 하순 사진가들의 유명 출사지인 빠상(한국에서는 패샹이라 부르고 있음)에 단체 출사를 간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장시간 직접 운전을 하며 구석구석 돌아 보기는 처음이다. 내몽고는 몽고족이 거주하는 지역중 중국의 영토인 지역으로 몽고족 자치주이고 내몽고 북쪽지역은 별도의 국가인 몽고국으로 중국에서는 외몽고라 호칭한다. 내몽고의 대부분은 몽고국과 접하고 있으며 일부만 러시아와 접하고 있다. 이번 방문지역은 중동부지역 일부로 긴 시간동안 고속으로 달려도 끝없는 초원의 연속이니 내몽고 전체가 얼마나 넓은지 상상이 안된다. 우리나라에서 내몽고의 사진촬영 출사는 내몽고 최남단 북경 북쪽의 빠상지역과 서부의 바단지린 사막지역으로 많이 간다. 빠상지역은 북경을 거쳐 들어가고, 바단지린 사막은 감숙성의 수도 란저우(난주)를 거치거나 또는 청해성 수도 시닝(서녕)을 거쳐 들어간다.

북경에서 호화호특시까지는 아주 잘 포장된 고속도로로 되어 있다. 미국은 고속도로로 전국을 커버하는데 당시 장비나 자금이 지금과 같지 않은 상황이지만 50년이 걸렸고, 한국은 좁은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약 25년이 걸린데 반해 중국은 그 넓은 전국토를 고속도로로 커버하는데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게 바로 현재 중국의 힘이다. 2000년도 초반 상해 인근은 물론이고 상해 바로 아래지역인 절강성을 비포장 도로로 고생하며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며 허허벌판인 내몽고까지 고속도로로 포장되어 있음에 기자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호화호특시 인근을 지나자 통행하는 차량은 급격히 줄어들어 기자가 탑승한 차량이 시속 160키로로 달린다. 호화호특시로 향하는 길목에도 간간히 넓은 초원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호화호특시 북쪽으로 접어 들어서는 넓다란 초원만의 연속이다. 산이나 들에 나무도 거의 없다. 그저 넓다란 초원이기에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토양이 아닐까 하여 동승한 교수에게 문의하니 내몽고지역은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았던 지역이고 말을 타고 전쟁을 하였기에 예부터 나무를 베어버린 후 식목을 하지 않아 나무가 없는 지역이 많다는 것이다. 작년에 출사를 갔던 빠상지역은 같은 내몽고이지만 청나라시절 황제의 여름 피서지 승덕산장을 경비하기 위해 북경군구 군마장이 있는 지역이었기에 나무 특히 자작나무가 많은 반면 빠상에서 불과 1시간 북쪽지역인데 초원만 있을뿐 나무는 없다.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심심하기도 하다. 간혹 도로를 양때나 말때들이 무단? 횡단을 한다. 아니 인간이 이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에 무단으로 길을 내어 이들의 삶을 파괴한 것이다.

첫날 숙박지에 도착을 하였다. 북경에서 빠른 길로 가면 약 7시간인데 우회하여 가느라 무려 11시간이 걸렸다. 너무나 피곤한데도 현지에서 대기하던 공무원들의 강권?에 못이긴 척하며 내몽고 특유의 술독에 빠졌다가 잠자리를 재촉하였다.


다음날 새벽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의 냉기에 일찍 눈을 떴다. 창문 넘어로 동이 트기 시작한다. 낯선 동네에서 중장비 카메라를 메고 다니기에 두려움을 느끼어 조그마한 똑딱이형 삼성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만 목에 걸치고 홀로 시내를 둘러본다. 한국에서는 1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멋진 구름을 안은 하늘이 기자를 반긴다. 시내 곳곳이 새로 지은 건물이고 공사중인 곳이 상당히 많다. 10년전 상해 인근 개발지역의 모습을 다시 보는듯하다.


호텔로 되돌아가니 다음 목적지의 치장(旗長=군수)이 이곳까지 부부동반하여 마중을 나와 있다. 중국의 다른 지역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군수에 해당하는 직급을 현장(縣長)이라 부르는데 이곳 내몽고는 과거 전쟁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듯 군대의 깃발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치장(旗長)이라 부른다. 이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역시 끝이 안보이는 초원인데 가는 길에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커다란 규모의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고속으로 10여분을 달려도 풍력발전단지가 계속된다. 20-30키로를 가는 동안 양 옆이 모두 풍력발전단지다. 조금 더 가니 초원 한폭판이 시커멓게 나타난다. 석탄을 캐는 탄광이란다.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것이 아니라 맨땅인 초원에서 석탄을 캐내고 있다. 이러한 탄광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여전히 차량은 시속 150키로정도로 달린다. 고속도로가 아닌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인데도 대형 트럭위주로 통행을 하는데 트럭 부근에서는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속도를 올린다. 아침 식사도중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대형 트럭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참을 달리니 저멀리 앞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여 천천히 운전을 하며 보니 식사를 같이 했던 치장의 비서다. 옆 길로 들어가란다. 우리가 흔히 개리라고 호칭하는 몽고보(몽고족의 둥그런 천막 가옥)에 도달하여 몽고보에 들어가자 치장(旗長)이 언제 왔는지 기다리고 있다. 마니우(말우유)를 권한다. 우유는 내 체질상 맞지 않아 마시길 머뭇거리자 마니우의 좋은 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혈액을 깨끗하여 특히 마니우를 3개월정도 복용하면 혈전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몽고족들이 뚱뚱하지만 고혈압 환자가 극히 적은 이유는 마니우를 광천수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상시 복용하기 때문이란다. 배가 좋지 않은 기자가 여행을 하면서 항상 조심하는 것이 객지에서의 물인데 이러한 설명을 듣고 마니우를 마시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흔쾌히 1잔을 마시자 다시 부어준다. 마치 중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목장 주인의 아들이 나와 환영 노래도 불러주고 며느리가 일행들의 잔에 마니우를 가득 채워주고 비우면 다시 채워준다. 현지인들끼리는 몽고어를 사용하기에 기자를 포함한 외지인들은 이들의 대화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후에 대화한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주는데 기자가 공식적으로 이 지방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란다. 한국인들이 태어나면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으니 수천년전 우리들의 조상은 같을 것이라고 화답하였다.


2차 목적지의 호텔에 들어서자 시간은 오후 1시가 조금 지났다. 방에 짐만 두고 식당으로 오라고하는데 기자의 배가 심상치 않다. 마니우를 마시고 나서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다른 일행보다 늦게 식당에 들어서자 낮부터 얼굴들이 불그스럼하다. 몽고족들은 추운 지방에서 생활을 하기에 술을 즐긴다. 치장(旗長)은 업무가 있어 저녁식사때 같이 하기로 하고 국장 2명이 점심을 대접한다. 점심후에는 이번 내몽고 방문의 목적지인 허허벌판에 가야 한다. 이곳에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먼저 건설한 건물에 들어서자 지난번 1차 설계한 계획도가 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다. 2년전에 설계한 것인데 그동안 중국의 전반적인 환경이 급변하였기에 이번에 이를 반영하여 새로 설계를 하기 위해 우리를 초빙한 것이다. 그동안 도로와 철도는 착공하였고 공항 건설을 중앙정부에 건의하여 놓은 상태다. 아쉬운 것은 핸드폰이 간헐적으로 연결되었다가 끊어졌다 한다. 교통 설비는 정부가 하지만 핸드폰은 민간기업이 하기에 다소 개발 속도가 늦다는 것이다. 긴장되는 토론을 마치자 외몽고(몽고국)로 가잔다. 억~ 기자는 비자가 없는데 걱정이 앞선다. 차에 오르고 나서 한참을 가니 드디어 내몽고에서 몽고국으로 그냥 들어간다. 정부 차량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검문도 없이 그냥 통과하고 통관 절차를 마친 대형 트럭들만 먼지를 풍기며 다닌다. 중국 영토인 내몽고는 포장도로인데 외몽고(몽고국)는 비포장도로다. 국경을 통과하여 외몽고로 5분여를 들어가자 중국, 1004, 2002 라고 새겨진 비석이 나타난다. 1004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의 영토였는데 지금은 몽고국의 영토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중국으로 되돌아와 인근 언덕 위에 있는 국경수비 군부대를 방문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또 다른 몽고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몽고족의 문화는 중국 한족들의 문화와 다르다. 몽고족들은 술과 양고기 그리고 마니우를 즐기고 모두 춤추고 노래하는 문화인데 한족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문화가 아니다. 몽고반점이 있는 우리 한민족은 수천년전 몽고의 핏줄을 받아왔을터, 기자는 이곳 몽고족들과 흥겨워하는데 같이 온 중국 한족들은 신기한듯 쳐다본다. 같이 간 한족들은 기자에게 몽고족이라고 놀린다. 우리 일행의 저녁식사 시간을 흥겹게 하기 위해 밴드와 가수들이 왔는데 이들은 몽고국(외몽고)에서 온 일행이란다. 이들 가수중 한 여가수가 기자를 위해 아리랑을 불러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하며 부르는데 이 가수가 어찌 이 노래를 아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발음이 어찌 그리 정확한지 놀랐다. 이들이 중국어를 하지 못해 물어보지 못했다.


방문의 주요 일정은 끝을 냈으니 나를 위하여 다음날 이 부근에서 풍경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 안내를 위해 이웃 마을 촌장에게 연락을 하겠단다. 이웃 마을이 차로 2시간 거리다. 이곳이 한국이라면 서울의 이웃이 대전인 셈이다. 중간은 허허벌판의 연속인 초원이고 아주 드물게 몽고보(개리)가 1~2개 있다. 여러 명이 같이하는 여행이니 일출이나 일몰 같이 빛이 좋은 시간대에 촬영하는 것은 기대하지도 못하지만 다음날 아침 식사후 카메라배낭과 삼각대를 가지고 경치좋다는 곳으로 출발한다. 내몽고의 날씨는 예측을 불허한다. 말짱했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먹구름이 몰아오고 분명 나에게 다가오는 비구름인데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흰 겨울에 달리는 말들을 촬영하기 위해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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