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출입통제구역, 자연생태계의 보고

[조은뉴스=임윤식 객원기자]  2013년 6월 29일(토), 민통선 내에서 인삼밭을 운영하고 있는 전 직장동료의 안내로 북으로 가는 관문, 민통선에 들어갔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차로 불과 1시간 정도의 거리.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민통선과 DMZ가 위치하고 있다. 임진각을 지나 통일대교에 이르면 군부대의 삼엄한 경계와 출입통제가 이루어진다.

민통선은 휴전선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의 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이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으로부터 5∼20㎞ 밖에 민간인 통제선(民統線 : Civilian Control Line)이 설정되어 있다. 즉, 민통선에서 남방한계선까지의 지역을 일컫는 용어이다.

민통선은 휴전협정에 의하여 설정되어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고 있는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 : Demilitarized zone)와는 구분된다.

민간인통제구역은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비무장지대를 따라 띠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바다에는 설정되어 있지 않다. 설정 당시 기준 총면적은 1,528㎢(강원도 1,048㎢, 경기도 480㎢)이며, 강원도 고성·인제·화천·양구·철원, 경기도 연천·파주·김포, 인천광역시 강화 등 2도 9시·군 24읍·면 213리(민간인 미거주 지역 포함)에 걸쳐 있다.

지역 내에서는 군 작전과 보안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민간인의 영농을 위한 토지 이용이 허가되고 있다. 다만, 지역 내의 출입과 행동, 경작권을 제외한 토지 소유권의 행사 등 일부 개인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은 통제받고 있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통일대교 방향의 경우 임진각에서 안보관광버스를 타거나 민통선 내 영농인의 초청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이 있다. 안보관광버스를 타면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등 지정된 관광지 만 돌아볼 수 있다.

통일대교 검문소에 이르면 누구의 안내를 받아 왔는지 일일이 체크받고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영농인들은 관할군부대에서 출입증을 발급받아 민통선 내에서 농사를 짓는다. 주민증을 맡기고 검문소를 통과하면 바로 좌측에 위치한 통일촌휴게소에 이른다. 휴게소는 통일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통일촌농산물직판장, 장단콩마을 식당 등이 있다. 필자 일행은 이곳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민통선에서 인삼밭을 경영하고 있는 지인 민승화 씨(60)의 트럭으로 갈아타 농장으로 가기로 한다. 민승화 씨는 유명 금융기관에서 부장까지 오른 후 퇴직, 귀농으로 성공한 영농인이다.


통일촌 앞 들녘을 바라본다. 평화롭다. 어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논과 밭이다.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이라서인지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벼와 감자, 채소들은 체제가 뭔지, 전쟁이 뭔지를 모른다. 그저 키우는 대로 자랄 뿐이다.


통일촌휴게소 옆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도 보인다. '민통선 땅전문'이라고 쓰여진 간판, 민통선 내의 부동산들도 매매가 가능한 모양이다.


민승화 씨가 운영하는 인삼밭에 가기 위해 국도로 나간다. 통일대교 검문소로 이어진 길은 우리나라 국도 1번길, 바로 개성-평양으로 가는 길이다.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는 개성공단 출입자들로 적지않은 차량과 사람들이 왕래했을 터인데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도로변에는 남북출입사무소 2km, 개성 18km, 평양 205km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보인다. 시속 80km로 달릴 경우 개성은 불과 10여분, 평양까지도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이토록 좁은 한반도인데 남북으로 분단되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라니...가슴이 저려온다. 통일이 되어 이 길을 마음껏 달려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 내 살아생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필자는 2002년 5월, 우연한 계기로 평양을 5박6일 방문한 적이 있다. 평양 시내 관광지는 물론, 백두산, 묘향산까지 다녀왔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분명 우리와 같은 얼굴과 피부색, 같은 한글을 쓰는 동포들이 살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6월 30일(일요일) 오후, 이글을 쓰고 있는데 마침 KBS에서는 '만남 그리고 희망'이라는 특별 생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이산가족 찾기' 특집프로그램으로 온 국민이 기쁨과 눈물바다를 이뤘던 때로부터 벌써 30년이 됐다고 한다. 통일대교 바로 아래, 분단조국의 현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임진각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특집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송해, 조영남, 장사익, 현철, 설운도 등의 노래와 함께 30년 전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를 인순이가 부르자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눈물짓는 모습들이 화면에 클로즈업된다.


통일촌휴게소에서 몇분 만 가면 정면으로 JSA경비대대 정문이 보인다. 영화에서만 봤던 '공동경비구역' 바로 그곳을 경비하는 미국과 한국군 부대이다. 민통선 내에 들어온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민승화 씨가 군부대 건물 등은 사진을 찍지않는 게 좋다고 알려줬지만 공동경비구역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알고있는 구역이라서 이정도의 사진은 찍어도 될 것 같아 일단 셔터를 눌러본다.


민승화 씨가 경영하는 인삼농장은 공동경비구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총 2,000평, 그중 인삼밭 만 1,200평이라 한다. 오래 전에 사놓은 땅이다. 이런 곳에 땅을 사놓을 생각을 하다니 그런 아이디어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인삼밭 옆에는 경비초소가 있어 도둑맞을 위험은 없어 보인다.


그는 이미 6년 전에 이곳에서 인삼밭을 시작, 올 가을에는 드디어 6년근 인삼을 수확할 예정이라 한다. 총 72,000주 정도의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아무런 소득도 없이 오직 정성 하나 만으로 키워온 인삼 한 뿌리 한뿌리들. 정말 보석같이 귀하고 소중한 작물이다.

필자 역시 고향이 충남 부여라 인삼에 대해 조금은 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인삼밭을 가꾸셨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인삼밭에서 일도 조금 도와드린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이에 인삼밭에서 풀을 뽑던 기억, 풀뽑기가 싫었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나기도 한다.


6년근 인삼 열매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이 열매들이 7월이 되면 빨갛게 익는다고 한다. 가을에는 6년 근 모두를 한꺼번에 수확할 예정이다. 역사적으로도 개성지역이 인삼으로 유명한 곳이다. 토질이 인삼재배에 맞는 곳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인삼밭이 꽤 많아보인다.


민승화 씨는 밭에서 6년근 인삼 두뿌리를 선뜻 뽑는다. 아깝다. 귀한 작물인데도 방문객을 위해 기꺼이 두뿌리나 캐서 나중에 물에 씻은 후 먹으라고 내준다.


인삼밭을 둘러본 후 인삼밭 옆에 있는 농막 앞에 탁자와 파라솔을 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우리를 위해 캔 인삼 두 뿌리도 나눠먹는다. 인삼향이 싸하면서도 개운하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수삼이다.


농막 안에는 농사에 필요한 각종 농기구들이 가득하다. 8년 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인삼농사에 착안한 민승화 씨, 이제 그는 완전한 영농인이 되어 민통선에 정착한 것이다. 6년이 넘는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을 이곳 인삼밭에 쏟아부었을까? 그동안의 노력과 인내에 깊은 경의와 찬사를 아끼지않을 수 없다.


인삼밭을 둘러본 후 점심식사를 위해 통일촌으로 돌아온다. 차창 밖으로 통일촌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농촌마을이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100가구 내외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 파주지역은 장단콩이 유명하다. '장단콩마을'이라는 식당에서 콩지비와 청국장을 주문한다. 담백하고 맛있다. 이곳에서는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도 판매하고 있다. 마당 옆에는 장독이 즐지어 놓여 있다. 각 독마다 담근 연월일이 표시되어 있다. 식당 마당이 꽤 넓다. 두부만들기 체험장도 보인다. 화장실 건물도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식사 후 통일촌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 본다. 주민자체센터 건물이 제법 크다.


주민자치센터 앞에는 망향제단이 세워져 있다. 정면으로 도라산도 보인다. 도라산은 156m 밖에 안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도라산역은 이 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망향제단 옆에는 망향루도 세워져 있다.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는 곳이다.


멀리 좌우로 깃대 두개가 보인다. 우측은 남한, 좌측은 북한 깃대라고 한다. 그 중간 쯤에 DMZ와 판문점이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DMZ 안에는 남한 최북단마을인 대성리 자유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서 내려와 군내삼거리에서 도라산역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2km 정도 가면 남북출입사무소를 만난다. 신문방송에서 자주 보던 곳, 바로 개성 들어가는 관문이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니 출입사무소 역시 개점휴업이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조금 가면 도라산역. 안보관광버스로 온 관광객들이 꽤 많다. 필자 일행도 차를 세우고 구경 좀 할려고 하니 못들어가게 한다. 도라산역과 도라산 전망대, 제3땅굴 등은 안보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참 이상한 규제다. 이곳 민통선 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영농인들조차 구경을 할 수 없다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영농인이나 영농인의 초청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신분이 확인된 사람들이고 이미 통일교 검문소에서 신분증까지 맡기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민통선 내의 관광지를 볼 수 없다는 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필자 일행은 다음 여정으로 덕진산성을 방문했다. 파주군 군내면 정자리에 위치한 덕진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축산성이다. 정확히는 고구려의 보루에 덧붙여 쌓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축산성과 조선시대의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보루는 남쪽으로 연이어 있는 두 봉우리 중 북쪽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통일신라 석축산성은 두개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곡부를 감싸안으며 두축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서 잘 치석된 화강암 성돌로 층단식으로 쌓은 성벽과 치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덕진산성 아래에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동쪽으로 초평도와 임진나루 일대, 남쪽으로는 수내나루와 문산읍 장산리 일대에 대한 조망이 뛰어나다. 멀리 문산의 아파트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성 내부의 서쪽 중간부분에는 직경 15m, 깊이 5m 정도의 우물터가 있으며, 남쪽 봉우리의 정상에서는 덕진단(德津檀)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외성은 토성이며 내성은 북단에서 출발하여 동쪽 능선을 따라 강변까지 이어지도록 하여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토성은 조선시대 광해군 시기에 임진강 방어를 위하여 설치된 덕진진과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성내에서는 토기편과 기와편, 자기편 등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었는 데, 고구려 토기편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덕진산성을 돌면 멀리 통일대교도 시야에 들어온다.

덕진산성 주변에는 초평도 습지와 농경지에 많은 희귀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두루미, 힌꼬리수리, 구렁이 등 멸종위기종 1급이 8종 발견되었으며, 독수리, 물수리, 재두루미, 삵,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 2급 22종 등 법정보호종 3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희귀식물로는 두루미천남성, 쥐방울덩굴 등 6종이 관찰되고 있다. 특히 초평도 습지는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기수역 습지로 DMZ 일원의 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덕진산성에서 내려와 차로 몇 분 만 가면 해마루촌에 이른다. 마을입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해마루촌은 전에는 동파리 수복마을이라 불려졌던 곳이다. 동파리(東坡里)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진동면 진현내면 지역으로 동파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파리, 서곡리 일부와 진현내면의 정자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파리라 하였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887번지 일원에 속하며, 휴전선으로부터 남방 6.4km, 남방한계선 4.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마루촌 마을 입구에서 해마루촌휴게소를 만난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마을'이라는 설명글도 보인다. 휴게소 마당 창고 벽에는 설명글 답게 사람과 사슴이 함께 뛰어노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해마루촌은 6.25 이후 원치않는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장단군 고향 실향민 1세대 5천여 명의 한을 달래주고 원거리에서 출입하며 영농을 하고 있는 724가구, 2천 여명의 불편을 덜어주고자 진동면 동파리 887번지 일원 3만여 평 부지에 60동 입주를 목표로 1998년 12월 23일-2000년 12월 31일까지 기반조성을 완료, 2001년부터 분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마루촌은 동파리 입주민들이 동파리를 순수 우리말로 재해석하여 동(東)은 '해'를, 파(坡)는 언덕의 순수말 '마루'로 합성하여 명명하였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허준선생 묘 이정표가 보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의인 허준 선생의 묘도 이곳 민통선 내에 위치해 있다. 허준 선생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동양 최고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편찬하신 분이다. 이번에는 시간관계로 허준 선생묘를 직접 가보지는 못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싶다. (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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