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선교의 중간지도자 응답, 청년부 이해영 렘넌트>

2012년 청년 평신도 선교회를 중심으로 매 달 진행되어진 강의. 그 중 박두기 장로님의 카렌선교 특강 이후 장로님과의 짧은 MMS문자를 통한 매일포럼으로 일주일간 소통했다. 8월의 어느 날‘카렌 드림팀’ 합류 제안에 드디어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
티켓팅이 완료 되었음에도 어벙벙히 마음만 조급해 하던 즈음, 서울에서의 전체 미팅을 겸한 워크샵에서 나의 명확한 포지셔닝을 응답 받고 나는 카렌선교를 향해 떠난다.
총 7명이 떠나게 된 이번 카렌캠프 선교는 이전의 카렌선교와 다른 새로운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바로 카렌선교의 세대교체. 단순 세대가 바뀌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의 카렌선교를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울 수 있는 팀이 움직인다는 요인이었다. 청년부에서 열변을 하시던 장로님의 강의가 막연함이 아닌, 좀 더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선교황금어장이 되도록 우리 7명은 10일간의 여정으로 함께 하게 된다.

카렌족은 말 그대로 나라명이 아니라 민족명이다. 지역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에 위치하며, 촌락과 같은 캠프를 구성하여 살고 있다. 이번에 들어간 선교캠프는 총 6개인데, 그 중 5개의 캠프를 두 팀으로 나누어 들어가기로 한다.
A팀은 류성종 전도사, 아트 전도사, 함수지 렘넌트와 내가 속해 있는 팀으로 미얀마에 가까운 멜라무, 멜라우 캠프 사역을 하기로 하고 중간에 멜라 캠프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B팀은 사무엘 목사님과 정도희, 서인후 렘넌트로 구성되어 지도상 좀 더 아래쪽에 있는 움평과 노포사역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 후 피스플리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서 7명이 모두 모여 그 곳 바이블 스쿨에 있는 600명의 학생들에게 렘넌트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다.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밤 9시20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드디어 시작점인 방콕으로 고!!
도착한 그 곳엔 김용범 선교사님과 얄라 목사님이 우리를 반겨주신다. 서둘러 숙소로 이동하여 아침 일찍 메솟으로 떠나게 될 B팀을 위해 긴급취침. 날이 밝으니 오롯이 A팀만 남아 카렌캠프에 들어가기 전 태국 현지 교회에 가게 된다. 김용범 선교사님이 이끄시는‘태국 임마누엘 선교 교회’이다.
현재 매홍손 카렌캠프에 들어가시는데 길 사정이 좋지 않아 자주 갈 수 없다 하셨다. 이렇게 렘넌트들이 험한 길을 마다 않고 들어가는 그 자체가, 품고 있는 마음 자체가 선교라 하시며 김 선교사님은 많은 조언과 기도를 아끼지 않으셨다.
아! 오후 3시. 캠프로 들어가는 관문인 매사리앙으로 가는 버스를 탈 시간이다. 급히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 약 10시간의 기나긴 장거리 버스 여행 시작.
두 회분의 멀미약을 먹으며, 시끄러운 태국방송을 참아내며, 저녁을 먹기 위해 그 긴 시간 단 한번 휴게소에 정차했던 요상 유쾌한 상황을 견디어 내며 드디어 도착한 매사리앙. 시골 읍내 같은 이곳에 새벽 2시에 도착했다.

9월 30일 일요일, 드디어 카렌족이 있는 첫 캠프지로 들어간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건만 캠프지로 가는 차량 안내자와 의사소통 문제로 한바탕 옥신각신한 후 겨우 멜라무 캠프로 움직인다. 현재, 우리가 이동하는 시기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이 곳 기후에서도, 우기 막바지에 속한다. 때문에 길 사정이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이제야 이렇게 편히 글을 쓰며 그 때를 회상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임을 함께한 팀만이 공유하는 절대적 감사라고 감히 말한다. 그렇게 대 여섯 시간을 온 몸을 들썩이며 도착한 멜라무 캠프.


도착한 그 곳은 생각 이상으로 아늑하고 좋았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멋진 곳이었다.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아 급하게 우릴 맞이했음에도 우려한 모든 상황을 불식하고 불편함 없이 보낸 듯하다. 바이블 스쿨이 있는 이곳은 멜라무 캠프 중에서도 5-8섹션이라 한다. 그 말은 이렇게 이름 지어진 한 캠프의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며 섹션별로 나뉜 만큼 그들 안에서의 체계도 꽤 명확한 듯 보였다. 이 곳 바이블 스쿨은 17~30세의 학생과 교사들이 카렌어와 영어로 진행하는 클래스로 구분되어 있었고, 수업 참여 분위기와 열의가 좋았다. 전도사님 두 분은 ‘진정한 행복’, ‘정체성’, ‘렘넌트 운동’ 등을 양일에 나누어 강의하였으며, 함수지 렘넌트는 촬영을, 나는 현장의 카렌 학생들과 끊임없는 교류작업(?)을 진행했다. 쉼 없이 눈과 귀를 열어 보고 들었던 멜라무 캠프의 카렌족들은 상당히 학구적이었다.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제한된 삶과 지역적 고립 때문에서인지 그들 대부분은 이 곳 캠프를 나가 다른 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선교 미션 속에 현지 청년들과의 팀사역 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코자 짧은 일정에 가능한 많은 바이블 스쿨 교사 및 학생들과 교류하고 이야기했다. 한정된 시간 속에 나눌 수 있는 건 적었지만 희미한 전깃불에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던 학생들과의 팀사역, 폭우로 인한 정전으로 인해 촛불 속에서 렘넌트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감격해 하던 내 또래 교사들과의 잊을 수 없는 그 밤의 팀사역이 여전히 나를 설레이게 한다.

다음날, 더 깊은 산 속 너머에 있는 멜라우 캠프로 이동한다. 멜라무 캠프에서 약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멜라우는 그 아름다운 경치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정말 이 곳이 에덴동산 이라며 연신 카메라를 허공에 들이대던 우리는 곧 말도 안 되는 더위와 사전에 연락이 제대로 취해지지 않음으로 인해 급히 숙소로 만들어진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우린 이 전에 보지 못한 진귀한 곤충 및 파충류들과 진정한 에덴인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된다.
이 곳 멜라우 캠프는 미얀마 카렌족이 다수인 멜라무 캠프에 비해 타이카렌족이 많았다. 이 말은 미얀마에서 받아드려지지 않은 미얀마 카렌족이 상업 활동과 이동 등의 규제가 심한데 반하여, 타이 카렌족은 태국에서 인정한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기에 여권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으며, 상업 활동도 규제 없이 가능하다. 그때문에, 훨씬 고산지대로 고립된 듯하나 나름의 시장이 형성되어 훨씬 더 다양한 물품과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멜라우 섹션 11B. 이 곳 역시 바이블 스쿨 중심으로 우리의 사역을 이어나갔다. 남학생들은 낮에는 엉성한 공으로 종일 공을 차고, 밤에는 기타를 들고 전기가 끊어지는 시각까지 찬양을 한다. 그리고 삥낭을 쉬지 않고 씹어 된다. 삥낭은 환각 및 각성 효과가 있는 열매라고 한다. 이가 녹을 정도로 씹어대는 이 카렌 청년들을 보며 이들에게 바른 복음이 전달되어져 세계복음화의 문이 되길 기도한다.

이번 팀사역을 통해 알게 된 사실 몇 가지. 그 중 하나는 카렌족 대부분이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원색복음이 생각보다 본의대로 전달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좁은 세계관 속에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큰 만큼, 권선징악적인 신앙관과 기복신앙이 일반화되어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통의 단절. 일단,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다. 이메일을 보내어도 대 여섯 시간을 가야 나오는 작은 마을인 메사리앙으로 나가서야 겨우 확인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되는 이 시스템으로 그들은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팀이 들어가는 상황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캠프 내의 적잖은 혼란이 야기되었던 것이다. 무려 2주 전에 벌어진 이 같은 일이 지금의 카렌족 현지의 실정이다.


이번 카렌선교를 나선 우리는 일종의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 사전답사여행) 적 요소가 큰 선교여행이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선교의 시발점이 됨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단체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선교로서의 발판을 다진 것이라 하겠다. 일단, 이후의 캠프 선교는 영어 교육과 찬양 페스티벌 등의 소통하고 교류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내년 1월부터 들어가게 될 수 개의 팀을 수배함으로 실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나의 포지셔닝. 내 개인의 정체성과도 연관된 나의 이면계약은 교역자와 렘넌트를 도울, 카렌과 나의 현장을 연결할‘중간지도자’이다. 이것이 카렌사역을 위한 청년들의 역할과 나의 헌신의 key가 됨을 의심치 않는다. 지금 내 핸드폰에 빼곡히 남겨진 현장스케치와 그 곳 바이블 스쿨의 교장 및 지도자와의 만남을 기록한 모든 메모들은 분명 이 모든 것을 막연함이 아닌 객관화·사실화 할 수 있는 자료가 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토록 베일에 감춰졌던 황금어장 카렌이 말씀운동부터 지교회가 성취되는 난민캠프로 성장되며, 미국 카렌족 현장을 살릴 렘넌트 목회자가 세워지고, 렘넌트 살릴 렘넌트 선교단이 지속되어지는 현장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임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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