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조명진 기자]  80~90년대 코믹한 제스추어로 “어쩔 수가 없어”, “저러고 싶을까?!” “조상이 돌봤어” “자네는 들어는봤나?”“웃기는짬봉이야” 등의 수많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온 국민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개그맨 조정현. 그는 1999년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레 TV 브라운관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1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름다운 기업 정현탑웨딩홀 회장으로서, 또 사랑을 전하는 ‘나눔 천사’로서 제2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뇌출혈 딛고 사랑 전하는 ‘나눔 천사’로 날개 짓
아름다운 기업 ‘정현탑웨딩홀’ 회장으로 제2인생


지난 3월 26일 서울 대림동에 위치한 정현탑웨딩홀에서 만난 조정현 회장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개그맨 시절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세월의 흔적만큼 중후함이 더해진 듯 보였다. 특히 예전에는 없던 콧수염이 시선을 끌었다.

80~90년대 최고의 개그맨


“2년 전부터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나요? 다들 어울린다고 하던데….(하하)”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의 유쾌함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유머를 섞어가며 분위기를 아우르는 모습이 ‘천생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언론매체에 많은 섭외가 왔었지만 자신감 부족으로 거절을 했었는데 나에 대한 존재감이 가슴밑바닥에서 꿈틀거린 것 같았지요. 새봄도 왔고 꽃 봉우리라도 피워보고 싶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하게 돼 무척이나 떨린다” 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현재 건강과 사업 모두 많이 좋아진 상태인데, 새로운 도약을 위한 취지에서 인터뷰 자리에 나서게 됐다”고 밝히며,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을 꿈꿨다. 워낙에 남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오락부장을 도맡아 끼를 발산했다.
안양예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도 개그맨의 꿈은 변함없었는데, TBC 1기 개그콘테스트 동상을 수상하며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후 방송통폐합으로 MBC로 자리를 옮긴 그는 특유의 코믹함과 유쾌함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당대 최고의 유행어인 “어쩔 수가 없어”를 히트시키며, ‘일요일 밤의 대행진’, ‘웃으면 복이와요’ 등의 간판급 코미디언으로 성장해 나갔다.
또한 1986년부터 1995년까지 MBC 코미디언실 총무와 실장을 역임하면서 후배들의 귀감과 모범이 되기도 했다.

사업가로도 승승장구

조 회장은 개그맨으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면서도 이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미래를 대비하고자 노력했다. 인기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갔다.
당시 개그맨이 요식업에 뛰어든 사람이 없었다, 방송과 사업을 병행하기란 힘듬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도저란 별명처럼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 성공을 했다.
“1994년 9월 즈음이었어요. 방송을 마치고 차를 몰고 가는데, 우연치 않게 대림동을 지나게 됐어요. 그때 불현 듯 ‘이곳에서 장사를 해봐야겠다’ 는 필이 확 오는 거예요. 아무런 연고도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아이러니해요.”
평소 요식업과 웨딩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림동 인근에 정현뷔페를 오픈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대림역 앞에 있던 우성쇼핑센터를 인수하고, 같은 해 8월 21일 정현탑웨딩홀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정현탑웨딩홀은 선남선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서울 최고의 웨딩홀 중 한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더불어 돌잔치와 환갑, 칠순 등 가족 대소사를 치르는 가장 멋진 장소로도 손꼽힌다.
“고객 한분 한분 입맛을 맞출 수는 없지만 최대한 음식맛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주방이사가 직접 음식을 챙겨요. 그리고 최고의 음식 맛을 내기 위해 직접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하고 다듬으며, 정성껏 요리하죠. (하, 하) 정성이란 표현이 맞을 겁니다. 가공식품보다 신선하게 만든 요리에 제가 점수를 매겨주거든요.”

꾸준히 나눔과 베풂 실천

조 회장은 개그맨으로서, 또 사업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스스로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낮은 자세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섰다.
“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에요. 요한이란 세례명도 있죠. 그래서인지 젊어서부터 나누고 베푸는 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개그맨 시절에도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전파했다. 실제로 그는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 당시 자원봉사 단장에 임명돼 100일간 봉사활동을 벌였다. 또한 1995년 대구도시가스 폭발사건 때에도 자원봉사활동을 벌여 ‘대구광역시장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했을 당시에도 뉴스를 보자마자 전 직원을 데리고 달려가 구조와 자원봉사에 두 팔을 걷어붙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연예협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이 가는데로 움직였을 뿐인데 감사패를 받아 쑥쓰러웠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찾아왔다. 1999년 여름 뇌출혈로 쓰러지게 된 것. 이로 인해 다시 태어나도 코미디언이 되겠다던 그의 모든 활동은 올스톱 될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거동과 일상대화가 불편한 상태가 됐어요. 사실 처음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찾아왔는지에 대한 원망이 컸어요. 더불어 자괴감도 심해 사람들 앞에 나서질 않았죠. 혈기 왕성하고 건강에 자신만만했던 때라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방송을 하고 무대에 서야 하는데 혀는 굳어 말도 안되고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해서 주위사람들 도움 받을 때마다 죽고 싶었습니다.
TV를 보고 싶지가 않았어요. 머릿속은 개그가 뱅뱅 돌고 가슴속에서는 카메라만 찾는데 눈물만 났습니다. 한 5-6년 하느님 원망 많이 했어요 내 자신한테 화도 나고 사람들 시선을 받아드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데, 남은 인생 그들을 위해 살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그는 장애를 딛고 이전 보다 더욱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일례로 태안기름유출사건 당시 현장을 직접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며, “내가 너무 늦게 왔어요. 다음에 봉사활동 있으면 첫 번째로 갈 겁니다” 라고 말해 실의에 빠진 태안 주민들을 감동시켰다는 후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매년 정현웨딩홀에서 김흥국, 김정열, 황기순, 김상호 씨 등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 ‘효 나눔 잔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08년 9월 두 번째로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 될 터

뇌출혈 이후 조 회장의 봉사활동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봉사에 누구보다 적극 나서며,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아픔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제 조그만 도움으로 장애인 여러분들에게 힘과 희망의 촛불을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해요.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이에요.”
뇌출혈로 쓰러진지 14년이 지난 지금, 피눈물 나는 노력과 기적이 더해져 조 회장은 말을 하는데 조금 지장을 받을 뿐(장애2급) 정상인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좋아졌다. 이를 입증하듯 현재 그는 매일같이 정현탑웨딩홀에 출·퇴근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한편, 조 회장은 영원히 개그맨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가객으로서 다시 한번 팬들 앞에 서고 싶다고. 이를 위해 그는 매일 재활치료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후배 양성에 힘을 보태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 중이다.
“하루 빨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복귀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많은 일도 꾸준히 하고 싶고요. 왜냐고요? 제 남은 인생의 목표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란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님께 지면으로나마 축하드립니다.

복지정책에 많은 힘을 싣고 계셔서 우선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책이란 본시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이를 반영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복지정책과 관련해 장애인, 결손가정, 노인 등 수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님께서 보다 신경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께 나눔과 베풂을 부탁드립니다. 떡 하나 먹을 때 혼자 배부르기 보다는, 서로 나눌 때 그 만족도가 크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 나누고 베푼다면 각박한 현실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대통령님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정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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