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홍성룡 기자]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인 인왕산에도 겨울로 가는 준비로 분주하다. 높이 338.2m의 인왕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8코스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오르는 코스다. 벽화로 유명한 개미마을은 6.25 전쟁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전후 집을 잃고 떠돌던 실향민들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고 천막을 치고 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개미마을.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개미마을에는 70년대를 떠올리게 되는 풍경과 소박하고 정겨운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쩌면 인왕의 한 자락이 질박한 삶의 배경이 된 것은 산이 베푼 온정이 아닐까?

서울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로 나와 7번 마을버스에 올랐다. 오르고 내리는 손님들은 버스기사와 잘 아는 듯 인사하는 이가 많았고, 손님들끼리도 서로 잘 아는 냥 사는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이 피어난다. 왠지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어느 곳에선가 내 어머니가 나타나실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졌다.

인왕중학교에서 버스를 내렸다. 경사진 길을 조금 걷다보니 개미마을 약도가 그려진 게시판이 길모퉁이에서 나를 반긴다. 드려다 보니 전주, 버드나무, 동래 슈퍼라는 이름의 구멍가게가 3개나 있다. 그 외 공동작업장, 어린이공원, 노인정, 약수터, 화장실 등 2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묘사돼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집들과 풍경을 그렁저렁 감상하며 마을 꼭대기 버스 종점으로 향했다. 차 두 대가 교행하기 어려운 도로였지만, 한편으로는 미니버스가 이곳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게 고마운 마음이 다.

가쁜 숨을 내쉬며 7번 마을버스 종점에 오르자 하얀색으로 단장한 작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인왕산지킴이 초소'란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이 동네 분들의 마음이 읽혀졌다. 초소를 뒤로하자 등산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느낌의 산책로를 지나 기차바위 능선으로 향했다.

30여분 올랐을까? 기적소리를 울릴 것 같은 기차바위가 확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왕산은 거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기차바위, 치마바위, 선바위, 모자바위, 범바위 등이 대표적이다. 기차바위 능선에 오르자 인왕산 보다 4m 가량 높은 북악산과 창의문, 한양성곽 등이 내려다보인다.

기차바위 능선의 드넓은 암반 틈에 작은 소나무가 자태를 뽐낸다. 그 뒤로 희뿌연 안개에 가라앉은 경복궁, 세종로 등 도심이 펼쳐졌다. 소나무 길과 군인 초소를 좀 더 지나자 인왕산의 억센 정산이 드러난다. 최근 공사를 완료한 인왕산 구간의 한양성곽은 태조와 세조, 숙종 때 쌓은 돌들과 어우러져 신구의 조화가 이채로워 보였다. 인왕산 정상에서의 사진촬영은 군사적 이유로 일부 제한을 받는다. 사실 인왕산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다.

인왕의 정상에서 싸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며 윤동주 시인을 떠 올려 보았다. 짧은 삶을 살다간 그는 일제치하의 조국현실에 고뇌하며 주옥같은 시를 남긴 대표적 민족시인이다. 윤동주는 지난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시절 종로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 송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씨워진 시(詩)' 등 대표적인 그의 시들은 이 시기에 완성됐으며, 인왕산은 그의 사색의 장(場)이 돼주었다.



최근 창의문과 청운공원 사이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었고,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을 조망하기 좋은 이곳에는 뜨거운 삶을 살고 간 미소년 윤동주를 회상하는 많은 시민들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고 있다.



인왕의 정상을 뒤로하고 범바위를 지나 선바위를 찾았다.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가 내려다
보이는 선바위 쪽은 성곽의 바깥쪽에 자리 잡고 있다.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그 밑으로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등을 모시고 있는 국사당(國師堂)이 있다.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에 원형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선바위와 국사당 영향인지 산 아래에는 무속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러 눈에 띄었다. 선바위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하산 방향인 종로문화센터방향으로 향했다. 이 쪽 등산로는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성곽의 바깥쪽으로 걸어야 높은 성곽이 주는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4~5시간에 걸쳐 개미마을에서부터 선바위까지 인왕을 둘러본 느낌은 아기자기함이었다.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그 산을 다 알 수 없듯이 인왕의 곳곳에는 산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들의 옛 발자취와 역사의 흔적들이 이끼처럼 남아있었다. 2~3시간의 산행시간이면 족한 인왕산이 도심의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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